[도쿄올림픽 시청후기] 중계방송 징크스

2021. 7. 30. 10:52Sports BB/스포츠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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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도쿄올림픽 야구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는 이전에 비하면 많이 낮은 편입니다. 사상 최초 금메달을 획득했던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주축 투수로 활약했던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봉중근, 정대현 등의 뒤를 이을 만한 투수들이 보이지 않으면서 경쟁력이 많이 떨어진 것이 큰 원인입니다.

 

KBO리그가 10개 구단 체제로 바뀌면서 리그의 외연 확대보다는 리그의 전반적인 경기 수준 저하가 더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리그 개막전이나 포스트시즌 첫 경기에는 국내 투수보다는 외국인 투수들이 선발로 나오는 것이 당연시 되었구요.

 

그리고 경기 외적으로 일부 선수들의 일탈은 팬들에게 더 큰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3년 전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불거진 일부 선수들에 대한 병역특혜 의혹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러다보니 점점 팬들이 야구에 대해 등돌리고 기대치를 낮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오랜만에 야구가 선을 보이면서 아무리 미운 자식이라 하더라도 옛정은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중계를 보면서 예전처럼 열렬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대표팀의 플레이와 일거수 일투족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7월 29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도쿄올림픽 야구 예선 첫 경기 이스라엘 전은 끝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접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4년 전 WBC 첫 경기에서 대한민국에게 불의의 일격을 가했던 팀입니다. 예상치도 못한 패배에 대표팀은 휘청거렸고 결국 다음 경기 네덜란드 전에서도 무기력하게 패하면서 WBC 출전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광탈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스라엘과 네덜란드는 국제 대회에서 다시 꼭 맞붙었으면 하는 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직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합류한 이스라엘은 국적만 이스라엘이지 사실상 미국B팀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래서 쉽지 않은 승부의 연속이었습니다.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다 보면 다들 자신만의 징크스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안그런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가령 내가 응원하는 팀 경기 직관가면 무조건 승리 또는 패배한다거나, 특정 방송의 중계방송을 봐야 이긴다는 등 다양한 징크스가 있습니다.

 

저는 일단 어제 야구 경기를 중계한 지상파 3사 방송 중 MBC 중계를 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선우 해설위원의 해설을 워낙 좋아해서요. 허구연 위원이야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미가 돋보이는 해설이라 늘 편안하게 들을 수 있구요. 김선우 위원의 경우 선수 출신 해설위원 중 가장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해박한 야구지식과 메이저리그와 KBO리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상황 별 명쾌한 해석이 돋보입니다.

 

그리고 경기 전에 상당한 준비를 했구나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김선우 위원의 해설은 마치 족집게 강사의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3사 중 유일하게 현장 생중계여서 그나마 더 생생하게 현장 기운을 느낄 수 있구나라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김나진 아나운서의 박력있는 진행도 늘 돋보이구요.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서 유독 MBC가 비난의 뭇매를 맞고 있습니다. 개막식부터 자료화면 및 자막의 부적절함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급기야는 MBC 박성제 사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제 MBC가 올림픽 야구 중계방송에서 또 사고를 쳤습니다..

 

 

2-2로 팽팽한 접전이 펼쳐지던 6회초 이스라엘이 2점 홈런을 터뜨리며 4-2로 도망가기 시작한 순간 화면 자막에 느닷없이 경기종료라는 문구가 표시되었습니다. 가뜩이나 리드를 허용해서 불편한 마당에 부주의한 자막 사고는 팬들의 신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김나진 아나운서가 6회초 종료 후 몇 번이고 사과 멘트를 올렸지만, 더 이상 채널을 고정하고 싶지 않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KBS2와 SBS 중 어느 채널로 갈아탈까 고민하다가 SBS로 채널을 옮겼습니다.

 

KBS2 TV의 경우 스포츠 중계방송 달인 이광용 아나운서는 참 좋아하지만 해설에 박찬호 위원을 단독 초빙한 점이 아쉬움이었습니다. 박찬호 위원이 예능에서 투 머치 토커로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예능과 야구해설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죠. 선수들과 현장 스태프 못지 않게 경기에 집중하면서 순간순간 맥을 짚어줘야 하는 야구해설은 고도의 집중력과 순발력이 요구됩니다. 예능과는 또 다른 감(感)과 attitude를 요구하게 됩니다.

 

차라리 KBS에 훌륭한 야구해설 위원들이 많은데 가령 박찬호 위원과 동갑내기(73년생, 92학번)인 장정석 위원과 더블 해설 체제를 하거나 달변 해설이 돋보이는 장성호 위원과의 조합, 아니면 MLB도 경험했고 대표팀에서도 한솥밥을 먹은 바 있는 봉중근 위원과의 조합으로 중계를 했더라면 박찬호 위원도 부담감을 훨씬 덜었을 거고 보다 풍성한 중계 해설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노련한 이순철 해설위원과 국민타자 이승엽 해설위원, 그리고 야구 중계의 달인 정우영 캐스터가 중계하는 SBS로 갈아탔습니다. 한편으론 국가대표 시절 수많은 클러치를 날려준 이승엽 위원의 좋은 기운을 받으면 대표팀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또한 2015 프리미어12 당시 일본과의 4강전에서 거짓말같은 대역전극을 중계했던 곳이 SBS여서 기분 좋은 징크스를 기대했습니다.

 

돌리자마자 7회말 대표팀 타선이 거짓말처럼 폭발하더니 기어코 게임을 뒤집었습니다. 비록 9회에 아쉽게 동점을 허용했지만 맏형 오승환은 경기를 끝까지 책임졌고, 10회말 2사에서 극적인 밀어내기 몸에 맞는 볼로 승리를 가져오게 됩니다.

 

중계방송을 갈아타서가 아니라 선수들이 최선을 다한 덕분이었죠. 아무튼 야구중계의 기본좋은 징크스는 어제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MBC의 최근 실수들을 보면 아쉬움이 많이 듭니다. 90년대만 하더라도 MBC는 드라마, 예능, 스포츠 가릴 것 없이 항상 선도하는 이미지가 넘쳤습니다. 항상 새로운 시도로 시청자들을 사로 잡았었던 MBC는 최근 10년 간의 파업, 인원 교체 등의 부침을 겪으면서 많이 흔들리는 듯한 모습입니다.

 

 

물론 그 사이에 케이블 전문 채널, 종편 등이 생기면서 유능한 인력들이 많이 유출되고 방송 환경이 많이 바뀐 부분도 간과할 수 없지만 최근에 뉴스를 보니 MBC가 올해 비용 절감을 위해 스포츠국 인력을 상당 수 감원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여파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실수들로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2012 런던 올림픽 당시에도 MBC는 장기간 파업으로 인해 우수한 인력들이 중계에 투입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검증되지 못한 인원을 개막식 중계에 내세웠다가 뜻하지 않은 말 실수로 비난을 받기도 했었죠.

 

MBC의 위상이 예전같지는 않은데 그나마 가지고 있었던 스포츠 중계의 기발함과 장점마저 희석되는 것 같아 이래저래 아쉬운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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