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과 2014년의 평행이론 - 동계올림픽 그리고 월드컵

2014. 2. 24. 02:07Sports BB/스포츠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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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 속에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은 대회 종반 결정적인 분노를 야기시키고 말았다. 잊지못할 감동이 아닌 4년 뒤 평창에서 두고보자고 벼를 만한 분노를 선사했다. 발단은 바로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가 출전한 여자 피겨 스케이팅이었다. 18년 간의 피겨 생활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무대에서 김연아는 그녀가 왜 피겨의 여왕인지를 몸소 증명해냈다. 마지막 무대라 더욱 긴장할 법도 싶은데 김연아는 전혀 흔들림 없이 자신의 무대를 신명나게 펼쳤다. 늘 언제나 그녀와 비교대상이 되었던 일생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도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연발하는 모습을 보이며 더 큰 대조를 이루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이미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다 누린 김연아는 2년여의 방황을 뒤로 하고 2014 소치 올림픽에서 유감없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며 감동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 감동은 개최국 러시아의 억지스러운 자화자찬과 세계 최고의 피겨 선수에 대한 망발로 인해 분노로 돌변하고 말았다.

 

단 한 번도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이번 대회에서도 착지 과정에서 주춤한 모습을 보인 자국의 소트니코바에게 자화자찬의 점수를 쏟아 부어준 것이다. 반면에 흠잡을데 없는 연기를 펼친 김연아에게 심사위원들은 너무도 가혹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결국 모두가 예상했던 김연아의 올림픽 2연패의 꿈은 가당치도 않은 러시아의 홈 텃세에 막히고 말았다. 김연아는 의연하게 오히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대인배다운 모습을 보이면서 오히려 위로받아야 할 입장에서 위로를 건넸다.

 

외신은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결과에 대해 비난의 폭죽을 퍼부었다. 피겨의 전설 카타리나 비트는 자국의 올림픽 관련 프로그램에서 격앙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으며, 미국의 모든 언론은 러시아의 자화자찬에 비아냥이 섞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러시아는 특유의 뻔뻔한 모습으로 일관했으며, 소트니코바는 오히려 이번 올림픽에서 반드시 김연아를 잡는 것이 목표였다면서 가당치도 않은 망언을 내뱉기도 하였다. 소트니코바는 갈라쇼에서 그녀가 금메달을 따기에는 얼마나 역부족이고, 함량미달의 불량품인지를 스스로 입증했다. 우스꽝스러운 형광색 복장에 생뚱맞은 형광깃발, 거기에 깃발에 본인의 몸이 휘감기고 스케이트가 깃발에 걸리는 등 그녀는 갈라쇼가 마치 동네 3류 서커스 무대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갈라쇼의 품위를 저질스러운 퍼포먼스와 어색한 표정연기로 떨어 뜨린 소트니코바에 비해 김연아의 마지막 갈라쇼는 '세계평화'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면서 마치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여주인공 엘사의 신비스러우면서도 강인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였다.

 

 

 

 

네티즌들은 소치 올림픽을 수치 올림픽, 푸틴 동네 운동회 등으로 평가절하하면서 주최국의 도를 넘어선 추태에 분노하고 있다. 12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2002년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펼쳐진 동계 올림픽에서 국민들은 주최국 미국의 추잡한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남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대한민국의 간판 김동성은 결승선에 1위로 선착하며 금메달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쁨을 만끽한지 5분도 지나지 않아 김동성이 들고 있던 태극기는 아이스링크에 차갑게 뒹굴고 있었다. 김동성 뒤에 들어온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명목으로 김동성은 실격 판정을 받은 것이다.

 

오노는 결승선에 들어오기 직전 김동성 뒤에서 마치 진로방해를 받은 것 같은 헐리웃 액션을 펼치면서 심판진을 감쪽하게 속였고 (속인 건지 속아준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뛰어난 연기력으로 금메달까지 거머쥐게 된다. 이 사건은 그 해 일어난 주한미군 장갑차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두 소녀 효순양과 미선양의 사건과 더불어 국민들의 반미감정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해 여름에 열린 2002 한일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미국과 예선 같은 조에 편성되었다. 양팀은 첫 경기에서 유럽의 강호인 폴란드와 포르투갈을 상대로 쾌승을 거둔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에서 맞붙었다. 2002년 6월 10일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맞붙은 양팀은 한낮의 땡볕 속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대한민국은 경기 초반 페널티킥이라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했으나 키커로 나선 이을용의 킥이 미국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면서 선취점 기회를 놓쳤다. 오히려 전반 24분 대한민국 간판 공격수 황선홍이 상대방과 헤딩 경합 도중 눈썹이 찢어지는 큰 부상을 입고 잠시 경기장 밖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고, 대한민국은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어수선한 틈을 놓치지 않고 기습공격을 통해 매티스가 선취점을 뽑게 된다.

 

예상 외의 일격에 경기장의 분위기는 더욱 격앙되었다. 히딩크 감독은 페널티킥을 실축한 이을용을 교체하지 않고 끝까지 기용하며 밀어 붙였다. 후반전에 접어 들어서도 대한민국은 고삐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미국의 골망을 노렸으나 좀처럼 열리지가 않았다. 후반 30분이 넘어서며 서서히 초조해질 무렵, 이을용의 크로스를 받은 안정환이 방향만 틀면서 상대방 골키퍼를 송장처럼 얼어붙게 만드는 기가 막힌 헤딩 동점골을 터뜨리면서 대한민국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든다.

 

그 유명한 안정환의 쇼트트랙 세리머니가 펼쳐지면서 대한민국은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의 어이 없는 오노의 헐리웃 액션에 일종의 '하이킥'을 선사했다. 만약 안정환의 동점골이 터지지 않은 채 경기가 끝났다면 당시 대한민국의 불쾌지수는 덥디 더운 날씨와 더불어 급증했을지도 모른다.

 

페널티킥을 실축한 이을용은 안정환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자신의 실수를 만회한다. 그리고 경기 종료 직전 이을용은 미국의 측면을 돌파한 후 골키퍼까지 제치는 완벽한 노마크 찬스를 최용수에게 만들어주지만 아쉽게도 최용수의 발과 이을용의 패스 타이밍이 미세한 오차를 보이면서 극적인 역전승의 기회는 허공으로 날아가게 된다. 공교롭게도 찬스를 놓친 최용수는 2002 월드컵에서 더 이상 출전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아쉽게도 미국과 1:1 무승부로 경기를 마무리했지만, 이후 신명나는 행보를 보이면서 사상 첫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쓰면서 2002년 연초에 펼쳐진 동계 올림픽의 아픔을 말끔히 씻어낸다.

 

12년 후 2014년 상황은 평행이론이란 말이 어울릴만큼 2002년의 상황과 절묘한 싱크로율을 보이고 있다. 사상 최대규모의 선수단이 참가했지만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기록한 부분이나 주최국의 어처구니 없는 편파판정으로 인해 전 국민이 분노에 휩싸이게 된 점도 너무도 비슷하다. 그리고 여름에 펼쳐질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이번 동계올림픽 개최국인 러시아와 한 조에 속해 있다. 러시아 외에도 대한민국은 벨기에, 알제리 등과 한 조에 속해 있는데,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와 공동 개최국이었던 일본이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 등과 한 조에 속해 있었다. 튀니지와 알제리가 다르지만 같은 아프리카 국가라는 점에서 이번 월드컵 조편성은 2002년과 상당히 유사한 면을 지니고 있다.

 

1986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른 이후 대한민국은 유럽 이외의 대륙에서 펼쳐진 월드컵에서 상당히 좋은 경기력으로 선전을 펼친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과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비록 조별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당시 최강팀인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86년) 스페인, 독일 (94년) 등을 상대로 선전을 펼치며 세계에 한국축구의 저력을 떨친 바 있다. 또한 2002 한일 월드컵에선 사상 첫 승과 더불어 영원히 기억에 남을 4강 신화를 일구었다. 4년 전 남아공 월드컵에선 사상 최초로 원정 16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바 있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으로서는 새로운 미션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 전은 조별 예선 첫 경기인만큼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경기인데, 이번 소치 올림픽을 통해 반드시 이겨야하는 명분이 자리잡게 되었다. 만약 이번 월드컵 러시아 전에서 대한민국이 골을 넣을 경우 이번 피겨 스케이팅을 풍자하는 세레머니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좋은 소재가 제공되고 있다.

 

자국의 어거지같은 밀어주기에 의해 금메달을 거머쥔 소트니코바의 우스꽝스런 갈라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세리머니 소재가 될 전망이다. 이미 소트니코바의 갈라쇼를 패러디한 주옥같은(?) 작품들이 인터넷과 SNS공간을 수놓고 있다.

 

최근 A매치에서 극도로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 홍명보호는 이번 브라질 월드컵 러시아 전만큼은 반드시 승리하여 그간의 부진에 대한 면죄부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비록 명장 카펠로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결코 넘어설 수 없을 상대는 아니다. 월드컵 예선 첫 경기라는 점과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을 통해 여왕 김연아에게 불경스런 죄를 지은 러시아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투쟁심으로 무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명나는 골과 세리머니를 통해 피겨 스케이팅 판정의 부당성을 널리 알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역사는 흐르지만 때론 반복되기도 한다. 이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부디 2002 한일월드컵의 그 좋았던 기운이 다시 한 번 반복되어 여러모로 지쳐 있는 국민들에게 시원한 청량제를 제공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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