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21. 04:48ㆍSports BB/스포츠잡담
평상시 같으면 도저히 눈이 떠지지 않을 금요일 새벽 3시 40분. 휴대폰의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필자의 눈은 자동적으로 떠졌다. 거실에 나와 TV를 켰지만 여전히 졸린 눈은 좀처럼 잘 떠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백색 은반 위에 자주색과 검정색이 혼합된 세련된 드레스의 여왕이 등장하는 순간 언제 졸렸냐는 듯 눈빛이 생생해지면서 TV를 주목하게 되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순간. 올림픽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애 마지막 피겨 스케이팅 무대가 펼쳐지기 직전이었다.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거칠 때마다 행여나 넘어지거나 삐긋하지는 않을런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왕은 담대했다. 자신이 계획한 모든 프로그램을 너무도 침착하게 소화해내고 마치 50분처럼 느껴진 5분간의 퍼포먼스를 마무리했다. 피겨여왕 김연아의 생애 마지막 프리 스케이팅은 찬란히 막을 내렸다.
2연속 금메달을 위해 필요한 점수는 149.68. 4년 전 밴쿠버에서 모두를 놀래켰던 150점의 마법이 간절한 순간이었다. 이미 러시아 홈 텃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평생 프리 스케이팅에서 140점을 넘어본 적이 없었던 소트니코바는 무려 149.95점을 받은 상황이었다. 도를 넘어선 텃세였다. 하지만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었는지 차마 그러기엔 낯이 간지러워서인지 주최국의 자화자찬은 그래도 영원히 전설로 남을 밴쿠버 올림픽 김연아가 얻은 150.06점의 신성함을 침범하지 못하였다.
이제 담담하게 자신의 마지막 점수를 기다리던 순간. 중계를 진행하던 캐스터의 뜨거운 함성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했다. 캐스터의 뜨거운 함성이 쏟아지려다 이내 멈추었다. 기술점수 69.95, 예술점수 74.24 합계 144.19라는 점수가 전광판에 나오는 순간. 숨죽이고 있던 러시아 홈 관중들의 광적인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흠잡을데 없는 혼신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김연아에게 홈 텃세의 장벽은 너무도 높았다. 그래도 여왕은 여전히 담대했고 납득하기 어려운 점수에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4년전 밴쿠버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완벽함으로 세계 피겨 스케이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김연아가 또 다시 소치를 향한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팬으로서 만류하고 싶었다. 이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올랐고,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 텐데 또 다시 험난한 여정을 굳이 거쳐야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었다. 4년의 과정 동안 김연아는 한 때 CF계를 석권하며 '돈연아'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달기도 했다. 밴쿠버의 뜨거운 환호성이 울려 퍼진 지 불과 2년 여후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하지만 여왕은 세상의 시기어린 시선에도 담대함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해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는 여왕의 건재함을 증명했고, 2014년 2월 21일 소치에서 자신의 피겨 인생을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인 담대함으로 마무리지었다.
아쉬운 가정법이 남는다. 김연아의 마지막 무대가 소치가 아닌 평창이었다면 과연 이런 결과가 나왔을 것인가. 아니 굳이 평창이 아니더라도 러시아의 도를 넘어선 텃세가 펼쳐질 수 없는 다른 지역에서 2014 동계 올림픽이 펼쳐졌다면 김연아는 카타리나 비트 이후 올림픽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는데 아무런 장애물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연아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금메달이 전부가 아니다. 김연아는 자신의 마지막 무대에서 후회없는 신명난 쇼를 펼쳤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준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이제 홀가분하게 자신에게 지워진 짐을 털어버리고 자유를 만끽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영원한 피겨퀸으로 남을 김연아의 마지막은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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