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 B의 부재가 낳은 동부산성 잔혹사

2014. 1. 31. 20:30Sports BB/배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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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경기에서 한 시즌에 연승을 지속하는 것 못지 않게 연패를 지속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갓 리그에 뛰어든 신생팀도 아니고 거의 매 시즌 상위권을 유지하던 팀이 급작스럽게 추락을 거듭하는 것은 결국 팀 선수층의 문제와 전략의 부재 아니면 팀 케미스트리의 문제에서 기인할 수 있다.

 

프로농구 원주 동부가 몰락을 거듭하고 있다. 프로 농구 원년 원주 나래 블루버드로 리그에 참가한 이후 원년 준우승, 그리고 원주 TG 및 동부 시절을 포함하여 역대 통합 우승 3회, 정규리그 우승 4회, 그리고 역대 최다인 정규리그 16연승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전통의 강팀인 원주 동부가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 더욱 참혹한 모습으로 몰락하고 있다.

 

2005-2006 시즌 부터 원주 동부로 구단명을 바꾼 이후 이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던 적은 2006-2007시즌과 그리고 2012-2013 시즌 단 두 번에 불과하다. 원주 동부의 가장 강력한 팀 컬러는 국내 최고 센터 계보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김주성을 중심으로 윤호영과 용병 센터가 주축이 된 높이를 앞세운 촘촘한 수비로 상대방을 질식시키는 이른바 '동부산성'이다.

 

2011-2012 시즌 정규리그 역대 최다 승수 (44승)의 대기록을 수립하며 챔피언 결정전까지 순항하며 진출했으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괴물 센터 오세근과 박찬희, 양희종, 김태술, 이정현 등 떠오르는 신진 호화멤버를 앞세운 패기의 KGC 인삼공사에게 일격을 당한 이후 팀 분위기는 올 시즌까지 급속히 추락하는 모습이다.

 

그 과정에서 전임 강동희 감독이 승부 조작 혐의에 연루되면서 팀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고 말았다. 윤호영이 상무에 입대한 이후 윤호영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영입한 이승준은 좀처럼 동부산성에 융화되지 못하면서 파열음을 내다가 결국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김주성도 이제 어느 덧 30대 중반을 넘어서서 불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몸의 노쇠화가 일어날 시기이다.

 

전임 강동희 감독이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팀을 떠난 이후 위기에 처한 팀을 구하기 위해 구단이 선택한 카드는 다름 아닌 이충희 감독이었다. 이충희라는 이름은 1980년대 유년기만 겪었어도 누구나 다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다. 야구에 최동원이 있었다면 농구에 이충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선수시절 슈퍼스타로서 명성을 떨쳤었다. 국내에서 현역 은퇴 후 대만으로 건너가 소속팀 홍궈에서 선수 및 지도자를 거치면서 다시 한 번 진가를 발휘한 이충희 감독은 1997-1998 시즌을 앞두고 리그에 새로 참여하게 된 LG 세이커스의 창단 감독을 맡게 된다.

 

부임 첫 해 이충희 감독은 특유의 압박 수비농구와 물샐틈 없는 조직력을 내세워 특출한 국내 스타가 없던 팀을 정규시즌 2위에 올려놓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당시 신문에 한 팬이 당시 LG농구에 대한 소감을 기고한 내용이 올라와 있다.

 

 

 

 

 

이 팬의 소감처럼 당시 LG는 박재헌, 박규현, 김태진 등 대학 시절 크게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킨 조직력의 농구로 호평을 받았었다. 또한 버나드 블런트라는 득점력이 출중한 용병 덕을 같이 입으면서 LG는 정규시즌 진입 첫 해 돌풍을 일으켰고, 그 돌풍의 중심에는 이충희 감독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이충의 감독의 행보는 아쉬움으로 점철되면서 그의 감독 커리어 중에서 LG 감독을 맡을 당시의 리즈 시절은 점점 추억 속의 한 켠으로 밀려나고 있다. 2000년 LG 감독을 물러난 이후 2007-2008 시즌 대구 오리온스 감독을 맡았으나 4승 22패의 처참한 성적을 남기고 중도 퇴진하고 말았다. 당시 오리온스는 전임 김진 감독이 부임하고 있던 동안 단 한 번도 6강 문턱에서 탈락해 본 적이 없었던 꾸준한 강호였기에 충격은 더하였다.

 

이후 모교인 고려대학교 지휘봉을 잡기도 했으나 코트 외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이 겹치면서 제대로 지도력을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이충희 감독은 해설위원 활동을 통해 코트 야인으로서 농구와 지속적인 끈을 이어갔다. 그리고 올 시즌을 앞두고 전통의 강호 원주 동부 감독직을 맡으면서 그는 어쩌면 그의 감독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원주 동부에서 명예회복을 벼르게 되었다.

 

LG감독 시절 수비농구로 돌풍을 일으켰던 이충희 감독과 수비농구로 리그를 평정하고 있었던 동부의 팀 컬러와 조화가 잘 될 것 같은 기대감도 자리하고 있었다. 시즌 초반 5경기 동안 동부는 4승 1패로 고공질주를 거듭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전력의 핵심인 김주성이 부상으로 이탈한 이후 동부는 대책없는 연패를 거듭하였다. 이전까지 팀 최다연패가 9였던 동부는 무려 12연패를 기록하며 구단 프랜차이즈 사상 역대 최다연패 기록을 세우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부상에서 복귀한 김주성은 또 다시 경기 도중 부상을 입으면서 시즌 도중 무려 2차례나 부상으로 팀 전력에서 이탈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그 와중에 팀은 12연패에 이어 2014년 들어서 펼쳐진 경기에서 단 한 차례도 승리를 가져가지 못한 채 13연패를 기록하며, 한 시즌 동안에 연패기록을 갈아 치우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연패 과정에서 김주성, 이승준 등 핵심 선수들의 부상이 이어지면서 불운이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주성, 이승준의 부상은 운 적인 요소도 작용했겠지만 어찌보면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다름 아닌 '플랜B'의 부재이다. 김주성, 이승준은 이미 35세를 넘어선 노장급 선수들이다. 그리고 오프 시즌 동안 아시아 남자 농구 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면서 체력이 상당히 고갈된 상황이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도 전에 정규리그를 맞이하게 되면서 쉼없는 질주를 지속하다가 결국 부상으로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김주성과 이승준은 20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못지 않은 피지컬과 운동능력을 발휘하는 저력을 보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출장시간 조절이었다. 출장시간 조절이 전혀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결국 피로가 누적된 두 명의 노장 선수들에게 부상이라는 '불운'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

 

1순위로 용병을 선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선택(허버트 힐 지명)으로 인해 시즌 내내 골머리를 앓던 동부는 결국 시즌 도중 대체 용병으로 크리스 모스를 영입했다. 정통 센터인 모스는 인터뷰에서도 자신보다는 팀을 우선시하는 마인드를 보여 기대를 받았는데, 모스 마저 시즌 도중 사상 초유의 퇴출 용병 트레이드(원주 동부의 힐과 서울 삼성의 더니간 맞교환)로 인해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방출되고 말았다.

 

원칙과 명분이 결여되어 보이는 선수 영입과 기용은 실전에서도 종종 드러나고 있다. 시즌 초반 팀에 가세한 이후 특유의 패기와 지칠 줄 모르는 투혼으로 팀에 활력소를 불어넣던 신인 가드 두경민은 최근 들어서는 출장기회도 줄어들 뿐더러 무엇인가에 눌려 있는 듯한 위축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존 박지현, 이광재에 신인 두경민 그리고 군에서 제대하는 안재욱까지 동부의 가드진은 풍성해졌다. 하지만 시즌 개막을 앞두고 백업 센터요원 김명훈을 삼성으로 내보내고 또 다른 가드요원 박병우를 영입하면서 김주성의 백업층을 스스로 줄어들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올 시즌 동부의 플레이는 김주성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팀으로 이미지가 굳어져가고 있다. 그나마 김주성이 복귀한 이후에도 팀의 조직력은 좀처럼 갈피를 찾지 못하고 있다. 좋은 자원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좀처럼 자원들을 극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동부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제 이승준도 부상으로 이탈해있고 김주성도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몸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 군에서 북귀한 윤호영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전망인데, 의존을 넘어 집착으로 변질될까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윤호영은 복귀 후 첫 경기인 1월 31일 고양 오리온스와의 원정경기에서 팀내에서 가장 많은 31분 49초를 뛰었다. 김주성이나 이승준에 비해 젊은 윤호영이지만 지나친 무게중심 이동은 윤호영에게 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사상 유례가 없는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더니건도 좀처럼 활용해법을 찾지 못한 모습이다. 여전히 어설픈 렌들맨에게 더 의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렌들맨은 시즌 초에 비해 기량이 한층 안정된 모습이지만 경기를 책임질만한 카리스마는 한없이 부족해 보인다. 그 역할을 더니건에게 맡기기 위해 무리수에 가까운 트레이드를 단행했는데, 오히려 렌들맨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지고 있다.

 

지금 동부의 무기력한 상황을 100% 이충희 감독에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구단 프런트들이 과연 어떤 비전으로 이충희 감독을 영입했는가에 대해부터 깊이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장감각이 한창 무뎌져 있는 감독을 영입한 것과 그로 인해 빚어진 결과에 대해서는 영입을 단행한 프런트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간의 케미스트리가 과연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진단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무기력한 상황이 지속되다가는 동부라는 구단이 그 동안 쌓아놓은 성과물들마저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새롭게 쾌적한 시설의 홈구장에서 시즌을 맞이한 원주 동부는 홈 팬들에게 더 이상 상처 주는 일이 없도록 내부적으로 강도높은 진단과 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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