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의 세계선수권 대회 진출, '만수' 유재학 최고 감독임을 증명하다.

2013. 8. 12. 06:45Sports BB/배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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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세계 농구 선수권대회 티켓을 간절히 바랐고, 그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 보였던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팀은 8월 10일 홈팀 필리핀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남은 티켓 1장을 놓고 대만과 운명의 3,4위전을 펼치게 되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예행연습으로 참가한 존스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대만의 귀화센터 퀸시 데이비스를 제대로 막지 못해 일격을 당했다. 당시의 패배가 대표팀에게는 커다란 보약이 되었고, 유재학 감독과 이상범, 이훈재 코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상대 장신센터의 공격에 대비한 수비 전술을 마련하고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다.

 

 

 

 

이번 대회 내내 대한민국은 엔트리 모든 멤버를 고루 기용하며 상대 전방부터 압박하는 질식 수비를 효과적으로 구사했고, 그 질식수비는 최근 선보인 국제 경기들 중 가장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대만도 이번 대회에서 최강으로 꼽히던 중국을 완파하며 상승세에 올라와 있는 상황이라 쉽지 않은 승부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1,2쿼터는 대한민국의 일방적인 페이스로 흘러갔다. 1쿼터 김주성, 양동근, 윤호영, 조성민 등 고참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치면서 분위기를 잡아주더니 2쿼터에서는 필리핀과의 준결승전에서 신들린 슛감각을 보여줬던 '구비 브라이언트' 김민구의 쇼타임이 다시 펼쳐졌다. 우려했던 상대 센터 퀸시 데이비스의 예봉을 효과적으로 봉쇄하고 신바람나는 공격력을 선보인 대한민국은 50-29의 큰 점수차 리드를 유지하며 2쿼터를 마치게 된다.

 

하지만 3쿼터가 시작되자 대한민국은 상대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좀처럼 점수를 얻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대만에게 득점 기회를 번번히 허용하게 된다. 하지만 대만은 속된 말로 '줘도 못 먹는' 공격 패턴을 선보이며 점수차를 좁히는데 실패한다. 만약 대만이 얻어낸 찬스에서 3점슛이 두 번 정도 터졌다면 경기 양상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고, 대한민국으로서는 준결승전 3쿼터부터 시작된 악몽이 다시 떠올랐을 것이다.

 

교착상태가 거듭된 3쿼터 중반 이후 대한민국은 다시 특유의 질식수비에 이은 속공이 되살아나며 다시 대만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준결승전에 이어 대학생 김민구가 해결사 역할을 맡으면서 대한민구그이 공격에 숨통이 트이게 된다. 만약 이번 대회에 김민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민구는 대한민국에 구세주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였다.

 

3쿼터 막판 윤호영이 상대의 3점슛을 수비하다가 보너스 자유투까지 허용하는 바람에 점수차가 17점차로 좁혀졌지만, 대한민국은 4쿼터에서도 양동근, 김태술 등의 노련한 게임 운영에 힘입어 점수차를 시종 일관 20점 내외로 유지하며 상대의 추격의지를 서서히 꺾어놓기 시작한다. 3쿼터 한 때 상대의 역습에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지만 대한민국은 촘촘한 수비 조직력과 득점 상황에서의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며 상대의 역습을 허용하지 않는다. 남은 시간이 2분 아래로 떨어지면서 비로소 대한민국 선수단은 승리를 확신하게 되고 대만 선수들도 사실상 추격을 포기하게 된다.

 

최총 스코어 75-57. 대한민국은 16년 만에 세계 무대를 다시 밟게 되었다. 노장 김주성은 공, 수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을 발휘하며 16년 만의 세계 선수권 진출에 큰 공헌을 한다. 김주성의 노련한 수비는 상대 센터진의 예봉을 봉쇄할 수 있는 최선의 무기가 되었다. 또한 김주성은 4쿼터에는 공격에서도 적극 가담하면서 젊은 선수들의 체력이 무색할 정도의 활약을 펼친다.

 

당초 이번 대회를 앞두고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섰던 것이 사실이었다. 선수단에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아도 모자랄 판에 대한농구협회는 변변한 전력 분석원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허술함을 보여줬고, 이는 결국 필리핀과의 준결승 전에서 상대의 전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패인으로 연결되었다. 제대로 된 스파링 파트너도 만나지 못한 상황에서 유재학 감독은 선수들 개개인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구현할 수 있는 전술을 개발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선수들에게 전파한다.

 

이번 대회에서 유재학 감독은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수시로 라인업을 교체하고 이에 맞춰 경기 내내 상대를 앞선부터 압박하는 질식 수비를 전매특허로 선보인다. 포지션별로 쟁쟁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을 중복으로 선발한 유재학 감독의 치밀함이 돋보인다. 또한 김민구, 이종현, 김종규, 문성곤 등 대학생 선수들의 패기 넘친 활약도 이번 대표팀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헌신을 마다하지 않은 이들의 돌풍은 마치 1990년대 초반 연세대 문경은, 이상민, 우지원, 고려대 전희철, 김병철, 현주엽, 신기성, 그리고 중앙대 홍사붕, 김승기, 김영만, 양경민 등 기존 선수들을 능가하는 신선한 대학생 선수들의 돌풍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을 연상시키다.

 

특히 김민구는 2만명 홈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에 주눅들 법도 했던 필리핀과의 준결승에서 무려 27점을 쓸어 담으며, 대한민국의 새로운 해결사로 떠오르게 된다. 프로 입단 예정인 김민구는 김종규, 두경민 등과 더불어 빅3로 꼽히고 있는데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KT에 입단한다면 프로농구 흥행에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통신사 라이벌 SK 와의 빅매치에 대한 새로운 스토리텔링이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정규시즌을 석권한 SK에는 김선형이라는 차세대 테크니션이 버티고 있다. 186cm의 신장임에도 불구하고 탄력을 이용한 호쾌한 덩크슛을 종종 선보이기도 하는 김선형은 포인트 가드와 슈팅가드를 넘나들며 맡으며 SK를 이끌었고, 지난 시즌 정규시즌 MVP에 등극했는데, 김선형 못지 않은 테크닉을 보유한 김민구가 KT에 입단한다면, 그 동안 통신사 라이벌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별다른 흥미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양팀의 대결에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16년 만에 세계 농구 선수권대회 진출을 이끌어낸 남자농구는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도 많음을 느끼게 했는데, 우선 개인기 보완의 필요성이다. 특히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상대 가드진의 능수능란한 개인기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조직력에 의한 수비로 커버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고비에서 능수능란한 개인기로 상대 수비진영을 교란시킬 수 있는 개인기와 슈팅능력을 보유한 포워드와 슈팅가드 포지션의 선수들이 대거 양성될 필요가 있다.

 

그 동안 팬들의 외면을 받았던 남자농구는 이번 대회를 통해 팬들의 관심을 되돌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제 KBL과 대한농구협회가 농구 중흥에 대한 책임감을 실천할 때이다. KBL 한선교 총재와 대한농구협회 방열 회장은 의욕적인 청사진을 내세웠지만 정작 팬들의 마음에 와닿을만한 실천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제 팬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청사진을 내놓기보다는 실천할 때이다. 모처럼 찾아온 좋은 기회를 협회의 무능함으로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바이다. 어려움을 딛고 목표 달성에 성공한 유재학 감독, 이상범, 이훈재 코치 그리고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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