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11. 01:02ㆍSports BB/배구라
사실 16년 만의 세계 농구 선수권 대회 진출을 확정짓고 난 후의 환희와 기쁨을 누리며 이 포스팅을 작성할 것이라 굳게 믿었었다. 하지만 2만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홈코트의 필리핀은 결코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만수' 유재학 감독도 가장 어려운 상대로 여긴 필리핀 선수들의 개인기량은 예상했던 것보다 수비하기 훨씬 버거웠고, 한 번 흐름을 타기 시작한 필리핀 선수들의 사기를 제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너무 진하게 남는 한 판 승부였다.
대한민국과 필리핀의 아시아 남자농구 선수권대회 준결승전을 복기해 본다. 대한민국은 특유의 질식수비에 이은 빠른 속공을 내세워 1쿼터 한 때 7점차로 리드를 잡으면서 경기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하지만 필리핀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가드진의 다양한 개인기와 빠른 스피드를 앞세워 대한민국 수비진의 전면을 교란시키며 추격을 시작한다.
2쿼터에서 대한민국은 1점차까지 쫓겼지만 이종현의 과감한 골밑 공격을 앞세워 3점차의 리드를 잡으면서 2쿼터를 마감한다. 39-36으로 앞선 상황에서 시작한 3쿼터에서 대한민국은 단 한 점도 뽑지 못한 채 윌리암, 테노리오, 알라파그 등의 필리핀 가드진의 개인기에 의한 공격과 3점슛을 연달아 허용하면서 역전을 허용하고 3쿼터를 56-65로 역전을 허용한채 마감한다. 좀처럼 점수차를 좁히지 못한 대한민국은 4쿼터에 접어들면서 경희대학교 재학중인 슈팅 가드 김민구가 신들린 듯한 3점슛을 연달아 꽂으면서 구세주 역할을 도맡는다. 김민구는 정확한 3점슛을 연달아 꽂더니 심지어는 3점슛을 성공시키면서 동시에 반칙을 얻어내는 '4점 플레이'를 통해 코트를 가득 메운 2만여명의 필리핀 홈관중들을 침묵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다.
대한민국은 당황한 필리핀 공격진을 압박하더니 결국 속공에 이은 이승준의 덩크슛으로 마침내 74-73 역전에 성공한다. 이후 대한민국은 이승준이 자유투를 얻어내며 1점을 더 추가 75-73으로 달아난다. 그러나 필리핀은 또 다시 3점슛으로 역전에 성공하고, 이후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계속 리드를 잡으며 점수차를 다시 벌리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으로서는 81-79로 뒤진 상황에서 필리핀에게 3점슛을 허용한 것이 뼈아팠다. 84-79로 뒤진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이 날 경기에서 해결사 역할을 맡았던 김민구가 3점슛을 시도했지만 상대의 블록슛에 걸리며 기회를 놓치고 만다. 결국 최종 스코어는 86-79, 필리핀의 승리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대한민국은 당초 경기 전 경계 대상 1호로 지목되었던 귀화센터 마커스 다우잇을 완벽하게 봉쇄하는데 성공하지만 앞선의 스피드와 개인기량이 뛰어난 단신가드들을 봉쇄하는데 실패하며 특유의 질식수비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한다. 대학생 김민구가 양팀 최다인 27점을 올리면서 맹활약을 펼쳤지만, 조성민, 윤호영, 김선형 등이 득점에 가세하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만약 조성민이나 윤호영이 외곽슛 또는 미들슛을 활발하게 터뜨렸다면 대한민국은 훨씬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 나갔을 것이다.
반면 필리핀은 골밑 공격보다는 가드진의 기민한 개인기에 의한 돌파 또는 외곽슛을 통해 찬스를 만들어 나가며 대한민국 수비진을 허무는데 성공했다. 특히 대한민국이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세컨 리바운드를 번번이 상대에게 내주며 허무하게 점수를 내준 장면들이 너무 많이 속출했다는 것이다.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유재학 감독이 보여준 전술은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전력을 극대화 시키는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였다. 12명의 모든 선수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술을 통해 코트에 투입된 선수들이 최대한 스피드와 체력을 활용한 압박 수비를 펼칠 수 있었고, 앞선에서 상대를 봉쇄하는 수비를 통한 속공은 근래 들어 접한 대한민국 농구 경기들 중 이번 대회 경기들을 가장 짜릿하고 박진감이 넘치게 만들었다.
또한 대학생 선수들인 김민구, 이종현, 김종규 등은 자신감이 넘치는 플레이로 선배들 못지 않은 경기력을 선보이며 향후 프로무대에서의 돌풍을 예고하였다. 특히 탁훨한 테크닉을 보유하여 NBA 최고 스타인 코비 브라이언트의 이름과 본인의 이름을 합친 '구비 브라이언트'라는 애칭을 얻고 있는 김민구는 필리핀과의 4강전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는 신들린 플레이로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하였다.
비록 아시아 선수권 우승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번 대회 참가의 가장 큰 목적인 2014년 세계 선수권 대회 진출권 티켓은 반드시 따낼 필요가 있다. 3,4위전 상대인 대만과 이번 대회를 앞두고 펼쳐진 존스컵에서 맞붙어 패했지만, 당시 대만은 홈 코트 관중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번 3,4위전은 중립 코트에서 펼쳐지는 만큼 대한민국 선수들이 주눅들 우려는 전혀 없다.
16년 만에 세계 선수권 대회 출전권을 따낼 절호의 기회를 대한민국 선수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번 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 농구 선수단이 보여준 경기력은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이후 가장 역동적이고 그 동안 실망스런 경기력에 상처 받은 농구팬들에게 모처럼 안구정화를 선사하는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부디 마지막 남은 한 경기에 모든 총력을 기울여서 16년 만의 숙원을 풀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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