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10. 21:07ㆍSports BB/배구라
요즘 KBL의 상황을 보면서 사자성어들을 떠올리면 '설상가상','사면초가','풍전등화' 등 속된 말로 콩가루 일보직전이라 할 수 있다. 1983년 점보시리즈로 시작하여 1990년대 초, 중반 최고의 겨울 스포츠이자 국민 스포츠로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농구대잔치 황금세대들의 인기를 지속시키기 위해 1997년 출범한 KBL은 올 시즌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흥미가 떨어지는 경기내용, 세계 수준을 따라잡기는 커녕 아시아에서조차 3류 신세로 내몰리게 된 선수들의 경기력, 여전히 팽배해 있는 심판들에 대한 불신 및 심판들의 자질논란, 그리고 내년 시즌 대어급 신인들을 드래프트에서 건지기 위해 의도적으로 전력을 다하지 않는 일부구단들의 무성의한 플레이 등이 겹치면서 올 시즌 프로농구는 역대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주 동부의 강동희 감독이 승부조작 혐의에 연루되면서 사전 구속 영장이 신청되는 프로농구의 존폐마저 위협할 수 있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모 오락 프로그램에서 강동원은 알아도 강동희는 누군지 모르겠다고 우스갯 소리를 던지던데, 사실 1980년대와 19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들에게 강동희는 농구의 달인으로 칭송받던 대한민국 최고의 포인트 가드였다. 화려한 드리블과 패싱감각, 그리고 긴팔을 이용한 예상치 못한 리바운드 및 골밑공격 가담, 또한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 허재와 최고의 센터 김유택과 환상의 콤비를 이루면서 농구대잔치 시절 소속팀 기아자동차를 무적으로 이끈 장본인이었다.
강동희 감독은 현역 은퇴이후 LG 코치, 원주 동부 코치를 거쳐 2010년부터 전창진 감독의 후임으로 원주 동부를 이끌고 있다. 그는 감독으로서도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지난 시즌 원주 동부는 정규리그에서 역대 KBL 정규리그 사상 시즌 최다승 기록을 수립하는 위업을 이루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지도자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강동희는 그런 고정관념과는 무관하게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최고의 자리를 향해 승승장구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그가, 농구계에서 어지간한 인맥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본인이 최악의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평생 농구판에서 밥벌이를 할 수 있었던 그가 도대체 왜 몇 천만원 때문에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다만 예전 그가 동부 코치시절 도박장을 출입하여 물의를 빚었었고, 얼마 전 유명한 조직폭력배로 사회에 잘 알려진 김태촌의 장례식 때 그의 이름이 새겨진 화환이 보내졌다는 이유로 그는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런 전례로 비추어 볼 때 언론에 알려진 것 이상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사연이 자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 농구계에 획을 그을 만한 업적을 남긴 슈퍼스타 강동희가 승부조작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프로야구 현역감독에 비유하자면 선동열 감독이나 류중일 감독이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 이상의 충격파라 할 수 있다.
강동희 감독에 관련된 뉴스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프로농구 경기장은 점점 빈 좌석이 늘어나고 있다. 겨울 스포츠의 맹주 자리는 이미 배구에게 넘겨주었고, 이젠 중계방송조차 배정되는 것이 힘겨워졌을 정도이다. 사실 프로농구 경기장이 썰렁해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좀처럼 평균관중 5,000명을 넘어서기가 버거운 형편이 되었다. 그나마 선두를 질주하는 서울 SK 나이츠만이 홈 구장 관중동원에서 호성적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어찌하여 이런 총체적 난국이 빚어진 것일까. 문득 필자는 프로농구를 주관하고 있는 KBL의 수장인 한선교 총재가 2011년 9월 취임했을 당시 취임사를 복기해 보고 싶어졌다. 전임 전육 총재의 뒤를 이어 KBL의 새로운 수장이 되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프로농구 중흥에 상당한 의욕을 표출했던 한선교 총재였다. 하지만 현재 프로농구 상황은 전임 총재 시절만도 못한 기나긴 암흑의 터널에 한창 접어든 상황이 되었다. 과연 한선교 총재는 2년 전 취임사에서 어떤 포부를 밝혔을까. 한 번 복기해 본다.
안녕하십니까? KBL 제7대 총재로 취임하는 한선교입니다. 먼저, 지난 3년간 KBL을 이끌어주신 전육 총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6월 3일 KBL 제7대 신임 총재로 선출된 이래 약 2개월 남짓 흘렀습니다. 당시 선출 직후, 저는 바로 이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KBL의 제7대 총재로서 앞으로의 3년, 무한한 책임감을 느낍니다.”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리고 2개월 여 동안 많은 농구 관계자분들을 만나 뵈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KBL의 변화와 발전, 그리고 한국 농구의 중흥을 주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부터 KBL은 제2의 도약을 위해 새로운 출발선 상에 섰습니다. 농구팬들과, 구단들, 그리고 농구인 여러분들의 기대에 반드시 부흥하겠습니다. 아울러 총재 선출 당시 여러분들께 약속드린 것처럼 언론과의 스킨쉽 강화도 오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프로농구가 국민들에게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가는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저는 오늘, 화려한 취임식 대신 언론과 함께하는 취임 기자회견을 택했습니다.
대신 'KBL의 이름'으로 취임식에 드는 비용을 축구선수 김병지가 자라고 성장한 소년의 집에 '조그만 기부'를 하고자 합니다.
그곳의 소외된 아이들이 소가족을 이루고 자라며 가슴 속 깊이 자신의 소중한 꿈을 가지고 농구를 통해 레이업슛을 할 때처럼,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그리고 또한, 시작은 미미하지만 훗날 큰 산을 이룰 수 있도록 조그마한 '농구인 기금화 사업' 의 뿌리를 내리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농구인들이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가지고 현역을 떠나서도 한국 농구의 발전과 KBL의 성장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모두가 원로가 되었을 때에도 한국 농구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는 곧 KBL이 추구하는 '건전한 사회분위기 조성'에 이바지하고 'KBL의 따뜻한 이미지'를 전국민들에게 더욱 더 알려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KBL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난 KBL 총재 경선에 나서면서부터 그리고 오늘 취임식에 임하면서 KBL의 재도약과 한국 농구의 발전을 위해 저는 다음 사항들에 주력하고자합니다.
첫째, 농구전용체육관 문제입니다. 장기적으로는 KBL 주도하에 파주 NFC 처럼 농구전용체육관이 건설되어야하지만, 지금 당장에 이를 해결하기에는 재정문제 뿐 아니라, 부지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대신 전국 지방자치단체별로 경쟁적으로 건설한 이후, 휴관 상태에 있거나 이용하지 않는 체육시설 인프라를 장기 임차하여 농구전용체육관 및 시설인프라로 전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유소년 대표에서부터 국가대표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수 외 각 구단들의 코칭스태프, KBL 및 아마 심판진 교육, 각종 아마대회 개최 장소로도 활용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농구전용체육관 및 시설 인프라는 유소년 농구의 육성과 저변 확대는 물론 한국 농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반드시 일조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않습니다.
아울러 현재 각 구단에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임차하여 사용하고 있는 체육관들의 시설 인프라 개선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다음시즌부터 '컵대회 신설'을 통해 대학팀과의 경기교류 등 리그운영 개선, 대학선수들의 드래프트 이후 리그 참여, 그리고 남북관계가 지금보다 한층 성숙되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북한팀의 초청에 이르기까지 KBL과 한국 농구가 재도약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셋째, KBL 총재의 기존 급여를 모두 한국 프로농구 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조성하겠습니다.이를 유망주 발굴, 국제교류 확대 지원, 농구저변 확대 등 프로농구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업에 쓰이도록 하겠습니다.
넷째, KBL 리그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무엇보다도 현행 용병 선발 및 운영제도의 발전적 개선을 위해 중지를 모으겠습니다. 그리고 팬들로부터 선수들로부터 구단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한국 프로농구를 한층 더 성숙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심판들의 역량 강화에 힘쓰겠습니다. 연수 및 선발 프로그램을 다양화, 체계화하고 처우 개선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다섯째, KBL의 수익을 극대화하겠습니다. 방송중계권료 수입 증대, 타이틀 스폰서를 비롯한 각종 후원 및 광고 등의 수익 다변화, 자산운용 수익 증대, 마케팅 수익 증대 등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일하겠습니다.
여섯째,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국제경쟁력은 국제대회 유치 외에도 우수한 국제대회 성적에서 좌우됩니다. 다가오는 2012 런던 올림픽대회 출전권 확보가 최우선이지만,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할 것입니다.
일곱째, KBL 총재 임기를 2개월 단축시켜 현행 KBL의 사업년도와 일치시키겠습니다. 현행 KBL의 사업년도는 당해년 7월1일부터 다음해 6월30일까지입니다. 그리고 다음해 7월1일부터는 새로운 사업기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현행 KBL의 총재 임기는 8월 말로 만약 새로운 총재가 취임할 경우 정작 새로운 사업기에 시작되는 시즌 준비는 전혀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행정 절차상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저부터 제7대 총재의 임기를 2014년 6월 30일까지로 하여 저의 임기를 2개월 단축시키겠습니다. 향후에라도 저와 같은 또다른 신임 총재가 취임할 경우 KBL의 새로운 사업기에 맞춰 원할한 인수인계는 물론 새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함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데서 신뢰가 쌓이고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KBL 총재로서 다시 한번 약속드립니다. 팬들과의 스킨쉽을 강화하고 구단과의 화합을 바탕으로 언론과의 협력을 통해 KBL의 성공,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농구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한국 프로농구 발전을 위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지켜봐주십시오! 구단과 함께 열정적으로 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취임사 전문에서 전반적으로 풍겨나오는 분위기는 침체에 빠진 KBL을 부활시켜 보겠다는 강한 의욕이 자연스레 느껴진다. 이중에서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를 꼽는다면 올 시즌부터 시즌 도중에 신설된 프로와 아마가 함께 참여한 컵대회가 신설된 것이었다. 과거 농구대잔치의 추억을 되살려 보겠다는 의도로 신설된 대회였지만, 대회의 존립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대부분의 구단들은 주전급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는 시간으로 컵 대회를 인식하였다. 당연히 흥행에서도 참패를 면치 못하였다.
심판들은 여전히 불신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모 심판은 선수에게 욕설을 했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심판의 권위는 바닥으로 내쳐져도 너무 내쳐진 상황이다. 한선교 총재는 농구의 부활을 손수 이끌어보겠다는 신념 하에 대한농구협회장에도 출마했지만 결과는 농구인들의 외면이었다. 과연 한선교 총재가 취임했을 당시의 초심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잘 성찰해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비롯되었는지 도대체 농구라는 컨텐츠가 아무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이동준, 이승준 형제가 홍대 앞을 다녀도 시비를 거는 주한미군 정도로 인식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곰곰히 되짚어봐야 한다.
문제는 간단하다. 국내 선수들의 캐릭터가 너무 평범하다.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만 하더라도 기아의 허동택(허재, 강동희, 김유택) 트리오에 고목나무 같은 센터 한기범, 현대의 슛도사 이충희, 여우같은 플레이의 이원우, 골밑에서 거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던 혼혈센터 김성욱, 삼성의 전자슈터 김현준, 민완가드 김진, 188cm의 키에도 불구하고 골밑을 휘저었던 터프한 센터 임정명, 한국은행의 3점슈터 오동근, 기업은행의 슛쟁이 최철권, 민완센터 이민형, 산업은행의 3점슈터 정인교 등 각 팀마다 개성이 뚜렷한 간판 선수들이 자신의 장기를 극대화한 플레이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그리고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재근, 오성식, 문경은, 이상범, 이상민, 김재훈, 우지원, 김훈, 석주일, 서장훈, 김택훈, 구본근 등의 오빠부대를 거느린 연세대, 그리고 연세대의 최고의 사학 라이벌이자 전희철, 김병철, 현주엽, 이지승, 양희승, 신기성 등의 만만치 않은 오빠부대를 거느린 고려대, 1980년대 대학최강의 지위를 누리다가 연고대의 돌풍에 잠시 밀렸지만 그래도 홍사붕, 김승기, 양경민, 김영만, 조동기, 김희선 등 알짜배기 선수들을 내세워 돌풍에 한 몫 거들었던 중앙대, 그리고 김성철, 윤영필 등 호시탐탐 넘버 1을 노리던 넘버 2와 넘버 3들이 포진했던 경희대, 다람쥐 슈터 조성원과 똘똘한 가드 조성훈이 이끌었던 명지대 등 일단 볼거리가 넘쳐났다.
하지만 요즘 농구를 보면 국내 선수들은 가드에서 센터 할 것 없이 사실상 용병 선수들의 볼 배달 및 스크린 전담 역할에서 더 이상 뻗어나지 못하고 있다. 드리블로 골밑을 휘젓는 모습은 농구대잔치의 추억이고, 3점슛으로 그물망을 시원하게 가르는 쾌감도 좀처럼 전달되지 않는다. NBA 라는 최고의 콘텐츠에 맞서 스피드와 아기자기함으로 개성있는 콘텐츠를 일구어냈던 한국 농구는 어느 순간 부터 어설프게 NBA를 모방하려다가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모양새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부터라도 아마 농구부터 선수들의 지도 방식을 창의성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과거 강동희, 신기성, 김승현 등 창의적인 플레이가 돋보이는 가드들을 키워낸 송도고의 전규삼 감독 같은 지도자들이 배출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행 용병제도에 대해 과연 진정으로 한국 농구 발전에 도움이 되는 지의 여부에 대해 냉정하고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각 팀 지도자들도 천편일률적인 수비 지향적인 플레이에서 껍질을 깨야만 한다.
올 시즌 프로농구에서 그나마 가장 재미있는 경기를 선보이는 SK 나이츠 문경은 감독의 지도철학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선수들이 가장 잘 하는 부분을 극대화 시켜주는 지도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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