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잭 라이언 - 코드 네임 쉐도우', 더 흥미로울 뻔 했는데 스스로 한계를 그어버리다

2014. 1. 19. 14:34Entertainment BB/movie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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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붉은 10월' (1990년, 숀 코너리, 알렉 볼드윈 주연), '패트리어트 게임' (1992년, 해리슨 포드 주연), '긴급명령' (1994년, 해리슨 포드 주연), '썸 오브 올 피어스' (2002년, 벤 에플렉, 모건 프리만 주연). 이들 영화들의 공통점은?

 

정확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는데, 만약 이들 영화에 등장한 주인공의 이름만 기억해도 거의 정답에 다다랐다고 볼 수 있다. '잭 라이언'. 얼마전 타계한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톰 클랜시의 첩보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이다. 그리고 위에 언급된 영화들은 톰 클랜시의 동명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들이다. 군사 관련 기술과 전략 등에 해박한 지식을 소설에 쏟아 부은 톰 클랜시의 첩보소설의 주인공인 잭 라이언은 액션과 여자의 유혹에 상당히 깊은 취향을 지닌 제임스 본드와는 달리 작가의 성향 답게 지적인 매력이 물씬 풍겨나는 캐릭터이다.

 

톰 클랜시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들 영화들은 3천만불~6천만불 정도의 중급 제작비를 투입하고도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 않은 흥행성적들을 거두었다. 국내 팬들에게 가장 인상깊게 남아 있는 잭 라이언 캐릭터와 영화는 아무래도 국내 팬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해리슨 포드가 주연을 맡은 '패트리어트 게임'과 '긴급명령' 두 편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알렉 볼드원, 해리슨 포드에 이어 벤 에플렉이 3대 잭 라이언 역할을 맡은 영화 '썸 오브 올 피어스' 이후 잭 라이언 영화는 좀처럼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해리슨 포드의 잭 라이언 시리즈가 성공한 이후 헐리웃에는 1996년 부터 '미션 임파서블'시리즈, 1995년 부터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007 시리즈, 그리고 2002년 부터 본 시리즈가 선을 보이면서 첩보영화의 캐릭터와 구성이 한층 다양해졌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 캐릭터는 격투기, 몸을 사리지 않는 아크로바틱 액션, 그리고 첨단 장비를 활용한 세련된 첩보 능력 등 머하나 떨어지는 것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첩보요원 캐릭터를 선보인다. 맷 데이먼이 분한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은 온 몸이 치명적인 무기가 되는 박력있는 격투 액션을 통해 헐리웃 첩보요원의 새로운 유형을 창출한다. 한 동안 고리타분한 구성으로 팬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하던 007시리즈는 1995년 피어스 브로스넌이 새로운 본드로 합류한 이후 시리즈 자체를 트렌디하게 구성하면서 떠났던 팬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이전의 영광을 회복하던 007시리즈는 내공이 만만치 않은 감독 샘 멘더스가 메가폰을 잡고 대니얼 크레그가 새로운 본드 역할을 맡은 이후 세 번째 출연작인 '스카이폴'을 통해 역대 시리즈 사상 최고 흥행 수익을 거두게 된다.

 

이처럼 새로운 첩보영화 캐릭터들이 지속적으로 탄생하면서 12년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이게 된 '잭 라이언' 시리즈는 포지셔닝에 고민을 거듭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특유의 지적인 캐릭터를 잘 살려내면서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시원한 한 방이 절실했다.

 

결국 제작진의 선택은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였다. 잭 라이언은 '제이슨 본'처럼 싸움의 신도 아니며, 이단 헌트처럼 최첨단 장비를 쓰지도 않고 고층 빌딩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지도 않는다. (아니 못한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다.) 그렇다고 제임스 본드 처럼 온갖 폼을 잡고 다니면서 여자 꼬시는 것에 목 매달지도 않는다. (물론 대니얼 크레이그의 본드는 변했지만, 전통적으로 제임스 본드에 덧쓰워진 이미지에서 첨단 무기와 여자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가장 현실적으로 납득이 갈 수 있는 행동 구현이 바로 잭 라이언 시리즈의 첫 번째 미션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제목에 '잭 라이언' 이 표기된 것도 시리즈 사상 처음있는 사례이다. 일단 영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앞서 영화의 제목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국내에 개봉된 제목을 보면 '잭 라이언 : 코드 네임 쉐도우'라고 되어 있어서 쉐도우라는 코드 네임이 극중 첩보전 진행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는 해독코드 정도로 오해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원제는 'Jack Ryan - Shadow Recruit' (잭 라이언 : 쉐도우 리쿠르트) 이다. 갑자기 벼룩시장, 알바몬도 아닌 것 같은데, 혹시 그들과 제휴 마케팅을 위해 영화 제목에 'Recruit'라는 단어를 넣기라도 한 것일까 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벼룩시장, 알바몬 등은 본 영화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국내에서 만약 원제목 그대로 사용했다면 벼룩시장, 알바몬 등이 연관 검색어로 떠올랐을 것이다.

 

영화 제목 그대로 내용을 보면 CIA 테러방지국에 근무하는 잭 라이언이 러시아와 연계된 금융조작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월 스트리트에 일종의 잠복 근무(?)를 시작한다. 아무도 모르게 암암리에 월 스트리트에 채용되서 국가를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 줄거리이고, 그래서 'Shadow recruit' 라는 문구가 붙게 된 것이다.

 

일단 영화 캐릭터 뿐만 아니라 관심을 끄는 것은 호화 캐스팅이다. 4대 잭 라이언을 맡은 '스타트렉'의 캡틴 크리스 파인, 앙상한 외모에서 묘한 매력이 풍겨나오는 키이라 나이틀리, 한때 헐리웃 박스오피스를 석권했다가 기나긴 수렁의 터널을 뚫고 서서히 조연으로 여전한 무게감을 보이는 케빈 코스트너, 그리고 연출에 악역까지 맡은 케네스 브래너 등 캐스팅에서 블록버스터의 아우라가 풍겨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비는 기존 잭 라이언 시리즈와 비슷한 6천만불이다. 최근에 등장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한 수준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이 영화가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은 긴박감이 넘치는 구성에 기반한 긴장감과 스릴을 제공하는 것이다. 일단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 구도가 팽팽한 긴장감을 심어줄 수 있고, 자칫하면 타이타닉호를 새로 지을 만한 막대한 스케일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일단 영화 속에서 러시아 정부의 고위 관리는 금융 재벌 빅터 체레빈(케네스 브래너)에게 체레빈이 꾸미는 음모는 러시아 정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미리 발을 빼고, 영화 스케일에 대한 교통정리를 실시한다.

 

엄청난 보안 시스템을 갖춘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을 보유한 금융 재벌 체레빈이 그가 보유한 고급정보를 유출당하는 과정은 너무도 허술하고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나마 믿을만한 보안요원이라는 인물도 잭 라이언에게 뒤통수를 맞은 체레빈에게 주제 넘은 충고를 건네다가 체레빈에게 즉결 처형을 당하고 만다.

 

막대한 재벌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고용하는 보안요원은 손가락 셀 정도로 미미한 수준의 보안 경계 수준을 지닌 체레빈의 음모는 잭 라이언의 일당백 투혼에 좌절되고 만다. 잭 라이언은 캐릭터 답게 특유의 뛰어난 추리력과 분석력으로 지휘 통제실에서 체레빈 일가의 숨은 음모를 너무도 수월하게 파헤치는데 성공한다. 반면 베테랑 요원임에도 불구하고 후배의 뛰어난 통제력에 할말을 잃은 하퍼 대령(케빈 코스트너)은 단 한마디로 자신의 존재감을 잠시 드러내주고 입을 벌린 채 자신의 약혼자가 쉴새없이 온갖 지시를 쏟아 붓는 모습만 지켜보던 캐시 라이언(키이라 나이틀리)은 뛰어난 소셜 미디어 훑어보기 능력을 통해 남편에게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준다.

 

스토리 라인이나 구성은 상당히 흥미롭게 시작되었는데 의외로 사건의 해결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영화 '잭 라이언 : 코드 네임 쉐도우'는 최근에 선을 보인 메가 히트 블록버스터 첩보 영화들에 비하자면 2% 아쉬운 구석이 느껴진다. 제작비를 막대하게 들이지 않거나 액션 장면에 공을 들이지 않을 거라면 내용의 얼개와 사건 해결 스토리 라인에 좀 더 치밀함이 필요해 보였는데 너무 쉽게 모든 것이 해결되서 다소 김이 빠진 느낌이었다.

 

최근에 선보인 미국 영화 답지 않게 1980년대 자주 선보이던 미국 우월주의까지 은연 중에 드러내는 이 영화는 주인공은 젊어졌지만 이야기 전개방식이나 표현방법 등은 마치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었다. 요즘 과거 회귀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데 비단 우리나라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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