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 우리 시대에 되풀이되선 안될 흑역사를 일깨워주다

2013. 12. 26. 01:28Entertainment BB/movie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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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부산, 고졸 출신에도 불구하고 사법시험을 통과하여 대전에서 짧은 판사생활을 뒤로하고 고향 부산에 내려와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다. 당시 휘몰아친 부동산 투자 열풍을 이용하여 부동산 등기, 세무 자문 등의 업무를 해결하는 아이템을 통해 목돈을 거머쥐며 재벌 변호사로 등극한다. 점점 명성이 자자해지더니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되며 전국구 변호사로 등극을 눈앞에 두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 인연을 맺게 된 단골 국밥집 주인 아주머니의 아들이 의도하지 않은 간첩단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온갖 고문에 시달리며 의도하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 쓸 운명에 처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편안한 인생이 예약된 대기업 변호사 자리 제안을 뿌리치고 변호사는 운명의 변호를 맡게 되며, 자신의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이쯤되면 어지간하면 쉽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故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에피소드는 대중들에게 꽤 잘 알려져 있는데, 서슬 퍼렇던 5공화국 초기, 정권의 통치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생, 직장인 등을 죄다 엮어서 대규모 간첩음모 조직으로 몰아 붙였던 '부림 용공사건'이 돈많고 편한 인생을 구가할뻔 했던 변호사 노무현을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탄생하였다. 비록 내용은 허구이지만 당시 서슬 퍼렇던 인권의 중요성이 경시되던 1980년대 5공화국 시절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던 장면들이 영화의 현실성을 한층 드높여준다.

 

 

 

 

영화의 배경은 비록 1980년대이지만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송강호)가 재판에서 던지는 메시지 하나하나가 영화를 보는 동안 필자의 가슴을 후벼 파고든다. 특히 목적을 위해서라면 잔인한 고문을 정말 대수롭지 않게 저지르는 악질 경감 차동영(곽도원)을 상대로 법정에서 그가 절규하듯이 내뱉는 대사는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한편으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면서 눈가에 눈물을 고이게 만든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어찌하여 2013년에 이 대사에 적극 공감하게 되고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후련하게 풀리게 되는 걸까. 바로 그 대사가 나오게 만든 극 중 차동영의 대답에 답이 있다. 법정에 서 있는 피고인들의 간첩행위 여부는 오로지 국가가 판단한다고 스스럼없이 국가를 내다파는 차동영의 답변에 양우석은 국가의 의미와 정의가 무엇이냐고 되물으면서 말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말은 지극히도 당연한 문구이고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1980년대 뿐만 아니라 2013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문구가 과연 얼마나 가슴에 와닿는지 도무지 확신할 수 없다. 1980년대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힘없는 대중들을 권력을 이용해 무자비하게 때론 비열하게 짓밟았다. 2013년의 대한민국이 1980년대 대한민국과 다른 점을 꼽는다면 권력의 중심이 군화나 군인들의 서열이 아닌 돈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돈이란 권력은 법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들고 법의 권한을 제 멋대로 넘나들고 있다.

 

전직 대통령은 시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공 체육시설을 아예 독점하다시피 사용하면서 전직 국가대표를 파트너 삼아 운동을 즐기는 호사스러움을 과시하다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대화는 실종된지 오래이고, 법과 원칙이라는 명분하에 대화는 거부된 채 공권력이 투입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불통이라는 비난에도 오히려 원칙있는 불통은 오히려 더 장려되야 한다는 자화자찬이 청와대 홍보를 담당하는 대통령의 최측근의 입에서 버젓이 나오고 있다. 한때 청와대의 입을 담당했던 인물은 대통령의 외교 순방에 동행했다가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기는 커녕 인턴직원에게 성추행으로 고발당하는 사상 초유의 국가 망신 사태를 초래하였다. 하지만 그 후 잘못을 인정했다거나 그 죄목에 대해 어떤 댓가를 치르게 된다는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대학교 대자보를 통해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단어가 대중들의 절대 공감을 사며 사회적인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이다. 얼마나 안녕하지 못하면 안녕한지 안부를 물을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극심한 취업난으로 인해 좀처럼 현실 정치에 목소리를 내지 않던 대학생들이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통해 서서히 정치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동안 돈이라는 권력에 짓눌려온 대학생들이 이제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답답한 사회적 배경이 영화 '변호인들'을 보는 내내 눈물을 글썽거리게 만들고 가슴이 무겁게 먹먹해지는 것을 느끼게 한다. 영화를 보면서 과연 내가 극 중의 송우석 변호사처럼 자신의 안녕을 포기하고 만인의 행복을 위해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계속 떠올렸다. 그리고 1980년대 그 서슬 퍼렇고 인권은 안중에도 없던 그 시절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자신들을 헌신한 이들의 노고와 피땀 어린 희생을 지금 우리는 너무도 빨리 그리고 쉽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이 땅에 민주주의다운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게 된 것은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혹자들은 군화발로 짓밟히던 그 시대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힘들게 얻은 민주주의를 너무도 당연히 여기다 못해 취한 나머지 방종에 빠져든 증세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변호인'을 빛나게 만든 주역을 꼽는다면 단연 주연 송우석 변호사를 맡은 송강호의 신들린 열연이다. 한동안 침체기에 접어들며 한물갔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이 배우는 올해 '설국열차','관상', 그리고 '변호인'을 통해 자신의 건재를 유감없이 알리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원톱영화였던 '변호인'을 통해 송강호는 살아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하였다.

 

이 외에도 김영애, 곽도원, 시완, 오달수, 조민기, 이성민 등 조연을 맡은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들고 있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결코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님을 2013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반드시 깨우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더 이상 군사정권 시대와 같은 흑역사는 결코 되풀이되서도 그 망령이 되살아나도 절대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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