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프로야구 결산(4) - 점점 들러리가 되어가고 있는 국내 선발투수들

2013. 11. 9. 11:30Sports BB/야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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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중반 정확히 말하자면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농구대잔치의 인기는 가히 열풍에 가까웠다. 1993년 겨울 농구대잔치 당시 연세대의 돌풍에서 촉발된 농구의 인기는 연세대의 영원한 라이벌 고려대가 현주엽이라는 거물 신입생이 입학하면서 1년 선배 서장훈이 버티고 있던 연세대와 대등한 전력을 갖추게 되면서 더욱 달아오르게 되었다. 연세대와 고려대 외에도 전통의 대학강호 중앙대가 다크호스로 버티고 있어서 대학팀의 거센 돌풍이 불어닥치게 되었다.

 

농구대잔치가 펼쳐지던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의 15,000명을 넘나드는 팬들로 늘 가득 메워졌다. 문경은, 이상민, 서장훈, 우지원, 김훈, 전희철, 김병철, 현주엽, 신기성, 양희승, 김승기, 홍사붕, 양경민, 김영만, 김희선 등의 신세대 농구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촉발된 농구의 붐은 결국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하게 되는 기폭제가 되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프로농구의 인기는 금새 사그라들었다. 이젠 겨울 스포츠에서 배구에게마저 밀리는 모양새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필자 주변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1990년대 농구대잔치의 전성기를 겪었던 바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공감하는 부분은 다름 아닌 용병제도였다. 국내 선수들보다 신장도 크고 탄력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뛰어난 용병들이 가세하면서 국내 선수들의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특히 국내 선수들의 센터 포지션은 용병 선수들의 득점력 강화를 위해 볼 배급을 도와주거나 궃은 일을 전담해서 맡아주는 보조자의 역할로 축소되었다. 그나마 서장훈, 김주성 최근에 오세근, 김종규 등이 외국 선수들에 맞서 자신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센터로 인정받는 상황이다.

 

비단 센터 뿐만 아니라 슈팅 가드나 슈팅 포워드 같은 포지션도 실종되고 말았다. 과거 이충희, 김현준, 허재, 문경은, 우지원 등 시원하게 득점을 꽂아주는 전문 슈터들의 설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개인기 감소 뿐만 아니라 용병에 전적으로 득점을 의존하다 보니 슈터들이 마음놓고 슛을 던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부작용은 국제대회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시원하게 득점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사의 부재는 대한민국 농구에 가장 아쉬운 2%가 되고 말았다.

 

용병제도 도입은 국내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유도하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사실상 모든 구단을 먹여 살리기 위한 영양제가 되었고 국내 선수들은 역으로 영양실조에 걸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비단 프로농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올 시즌 프로야구를 보면 사실상 마운드는 외국인 선수들 천하가 되고 말았다. 올해 개막전부터 8개 구단 선발투수들 중 무려 6명이 외국인 선수들로 채워지면서 우려를 낳았던 올 시즌 프로야구는 시즌 내내 외국인 선발 투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도를 넘어서는 현상을 보였다.

 

 

 

 

우선 다승 순위부터 살펴보면 다승 상위 11명 중에 국내 선수는 배영수(14승), 윤성환(13승), 장원삼(13승), 송승준(12승), 류제국(12승) 등 5명에 불과하다. 평균자책점 순위로 넘어가면 상위 10명 중에 국내 선수는 이재학(2.88), 윤성환(3.27), 유희관(3.53) 등 3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선발투수에 관련된 모든 지표는 외국인 투수들이 점령한 상황이다.

 

문제는 2005년 오승환, 윤석민, 2006년 류현진, 장원삼, 한기주, 2007년 김광현, 임태훈 이후 두각을 나타내는 신진급 선발투수들이 실종된 현상이다. 여기에 2007년과 2008년에 걸쳐 김선우, 봉중근, 송승준 등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해외파 투수들이 대거 국내로 복귀할 수 있게 되면서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앞에 언급된 투수들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9년 WBC 등의 국제 대회에서 대한민국이 세계의 강호들을 제압하고 호성적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베이징 올림픽 당시 김광현, 류현진, 윤석민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4강에도 오르지 못했을 것이며, 2009년 WBC 당시 봉중근, 윤석민 등의 활약이 없었다면 결승 진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2008년 부터 기대를 모았던 대어급 신인투수들이 좀처럼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면서 국내 리그의 마운드 정체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2008년 이후 입단한 신인 투수들 가운데 대어급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형종, 정찬헌, 성영훈, 정성철, 유창식, 임찬규, 한승혁, 윤형배 등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거나 아예 마운드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아마시절 혹사 또는 점점 벌어지고 있는 프로와 아마간의 기량 차이등이 원인으로 거론될 수 있다. 여러 원인으로 인해 사실상 돌풍을 일으키는 괴물 신인투수들이 실종되면서 프로야구의 마운드는 점점 외국인 투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2009년 KIA 타이거즈가 로페즈, 구톰슨 원투펀치를 내세워 우승을 차지한 이후 각 구단들은 용병 우선순위로 투수를 선호하게 되었고, 이에 맞춰 신인투수들의 설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류현진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면서 국내 투수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 상황이다. 국내 리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선발투수의 부재는 결국 2013 WBC 1라운드 탈락이라는 현실적인 성적표로 이어지게 되었다.

 

일본 프로야구는 시즌 내내 24승 무패의 대기록을 수립한 다나카 마사히로(라쿠텐 골든이글스)가 화제를 불러 모았다. 다나카는 재팬시리즈에서 6차전 무려 160개의 공을 던지면서 완투한 이후 7차전에 다시 등판하여 팀 승리를 마무리지었다. 혹사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국내 투수들 중 다나카처럼 철완의 몸과 정신력을 겸비한 자원이 드물다는 것이다.

 

이제 프로야구는 서서히 '한계효용 체감법칙'이 적용되는 모습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력이다. 그 중에서도 마운드 위에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에이스들이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 시급하다.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이후 대가 끊긴 에이스 계보를 부활시켜야 한다. 과연 내년 시즌 리그의 판도를 뒤흔들만한 영건이 등장할 것인가. 팬들의 관심을 새롭게 이끌만한 프로야구 컨텐츠의 업데이트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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