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프로야구 결산 (2) - 체면을 구긴 레전드 출신 감독들

2013. 11. 4. 20:25Sports BB/야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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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이만수, 김시진...이름만 들어도 올드 팬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고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이름들이다. 선수시절 영,호남을 대표하는 삼성 라이온즈와 해태 타이거즈의 간판 투, 포수로 활약하면서 프로야구 1세대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침과 동시에 각종 기록들을 석권하면서 많은 야구팬들의 뇌리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프로야구 사상 최초 타격부문 3관왕 (이만수), 프로야구 최초 0점대 평균자책점 (선동열), 프로야구 최초 통산 100승 투수 (김시진) 등 프로야구 역사에 획을 그을 기록들을 남기면서 살아있는 전설로 자리하게 되었다.

 

선수시절 꾸준한 활약과 더불어 굵직한 기록들을 수립한 이들 레전드 출신 감독들은 선수시절의 활약상에 비견되면서 지도자로서도 선수 시절 못지않은 업적을 남길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선동열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부임 첫 해부터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고, 2년 연속 통합우승을 차지하며 명장으로 자리매김 한다. 라이온즈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선동열 감독은 공격 일변도의 팀 컬러를 오승환, 권오준, 권혁, 안지만, 정현욱 등의 두터운 계투진을 바탕으로 한 지키는 야구로 탈바꿈 시키는데 성공한다. 투수력 강화 뿐만 아니라 선동열 감독은 최형우, 박석민, 채태인 등 젊은 타자들을 집중적으로 조련하여 타선의 세대교체에도 성공한다. 라이온즈 시절 쌓아올린 명성을 발판 삼아 선동열 감독은 자신의 선수시절 전성기를 보냈던 KIA 타이거즈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펼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현역 은퇴 후 자비로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너리그 코치를 거쳐 한국인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코치를 역임했던 이만수 감독은 SK 와이번스 수석코치로 국내 무대에 복귀 후 김성근 감독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일본야구 특유의 세밀함과 데이터에 바탕을 둔 스몰볼을 추구하는 김성근 감독과 달리 메이저리그의 전형적인 빅볼을 추구하는 이만수 감독의 궁합은 기대보다는 우려했던 측면이 불거지면서 큰 시너지를 엮어내지는 못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김성근 감독의 뒤를 이어 와이번스 사령탑에 오른 이만수 감독은 타율보다는 자율에 바탕을 둔 메이저리그식 빅볼을 표방하였다.

 

현대 유니콘스 코치 시절 김수경, 조용준, 신철인, 오재영 등을 키우면서 현대 왕국 건설을 뒷받침했고, 투수 조련사로 명성을 떨친 김시진 감독은 2007년 현대 유니콘스 감독을 거쳐 2009년 부터 히어로즈 감독을 역임했다. 히어로즈 감독 시절 재정적으로 어려운 팀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신진급 선수들을 육성한 김시진 감독은 전력 외적인 환경이 잘 뒷받침된 팀에 가면 본인의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2012 시즌 도중 히어로즈 감독직에서 물러난 김시진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맡게 되면서 과연 팀을 4강까지 끌어 올릴 것인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하지만 올 시즌 프로 1세대 레전드 출신 스타 감독들의 성적표는 처참하기(?) 그지 없다. 시즌 초반 1위를 질주하며 4년 만에 우승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던 KIA 타이거즈는 5월 6일 그 유명한 김상현-송은범 트레이드를 기점으로 추락을 거듭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신생팀 NC 다이노스에게도 밀리면서 8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선동열 감독의 장기인 투수진 보강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 채 타이거즈는 시즌 내내 계투진과 마무리 부재에 시달려야만 했다. 계투진 강화를 위해 영입한 송은범은 시즌 내내 자신의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본의 아니게 팀 추락의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선동열 감독 부임 후 타이거즈에는 박지훈을 제외하곤 눈에 띄는 신진급 스타가 전무했던 점도 라이온즈 감독 시절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이었다.

 

2012시즌을 앞두고 부임 당시 타이거즈 팬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와 기대를 받았던 선동열 감독의 위상은 불과 2년 여만에 분노와 실망의 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KIA 타이거즈가 2013 시즌 가장 드라마틱하게 순위가 추락한 팀이었다면, SK 와이번스는 2013 시즌 가장 드라마틱하게 팀 컬러가 변질된 팀으로 꼽힐 수 있다. 김성근 감독 시절 치밀하고 집요한 플레이로 상대방을 공, 수에서 질식할 정도로 압박했던 와이번스의 무시무시한 팀 컬러는 올 시즌 완벽하게 증발되고 말았다.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타자들은 큰 스윙으로 일관하다 찬스를 그르치는 경우가 빈번했으며, 치밀한 계산에 의해 이루어지던 투수교체는 특정 투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견고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타 팀과 차원이 다른 고급 플레이를 구사하던 와이번스는 이제 모든 구단이 상대하기 편한 이미지로 바뀌었으며, 2006시즌 이후 7년 만에 와이번스는 낯선 가을을 보내야만 했다. 늘 포스트시즌 준비로 분주하던 문학구장의 가을은 텅빈 관중석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을 만한 분위기로 바뀌고 말았다.

 

전국 최고 인기구단이었던 롯데 자이언츠는 올 시즌 개막전에서 4개 구장 중 유일하게 매진에 실패하며 흥행에 적신호를 불러 일으켰다. 비단 개막전 뿐만 아니라 사직구장은 올 시즌 내내 썰렁함을 면치 못하였다. 올 시즌 매진된 경기는 6월 26일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경기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자이언츠가 '응답하라 1999'라는 이벤트를 펼치면서 1999시즌 준우승 당시 추억의 스타인 호세를 초대하여 시구를 맡기게 하면서 모처럼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날 경기의 입장료가 1,999원에 판매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공짜경기나 다름 없던 이벤트에 팬들의 발길이 몰리다 보니 매진을 기록할 수 있었다. 정상 입장료를 받은 경기에서 매진된 경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직구장의 관중 감소현상에 대해 여러가지 원인이 거론된다. 부산 지역의 불경기, 이웃 도시 마산, 창원에 연고지를 둔 NC 다이노스의 창단으로 인해 기존 마산, 창원지역 유입 팬층의 감소 등이 거론되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프런트의 안일한 대응과 뿌리 내리지 못한 팀 컬러라 할 수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FA를 선언한 홍성흔과 김주찬을 붙잡지 못하면서 이대호가 빠지면서 허전해진 타선은 더욱 빈 공간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김시진 감독은 투수력과 수비력에 중점을 둔 야구를 추구했으나 계투진은 지난 시즌에 비해 안정감이 결여되면서 역전을 허용하는 경기가 많아졌다. 타선은 지리멸렬함으로 일관하고 투수력도 상대팀 타선을 압도하지 못하면서 자이언츠 야구색깔은 로이스터 감독시절의 화끈함도, 1990년대 초,중반 당시의 짜임새와 끈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야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올 시즌 나란히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타이거즈, 와이번스, 자이언츠는 정규시즌이 끝나자마자 수석코치를 교체하면서 감독들에게 간접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타이거즈는 선동열 감독의 오랜 동반자인 이순철 수석코치를 경질하고 대신 한대화 2군 감독을 수석코치로 임명하였다. 한대화 수석코치는 이전에 라이온즈에서 선동열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지만,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선동열 감독은 임기 마지막 해 구단과 팬이 납득할 수 있는 성적을 올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더군다나 2014시즌 부터 광주에 새로운 홈구장이 개장하기 때문에 반드시 성적을 끌어올려야 하는 의무감도 지니게 되었다.

 

와이번스도 이광근 수석코치와 재계약을 포기하고 성준 투수코치를 수석코치로 임명하였다. 성준 투수코치는 이만수 감독과 선수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 온 관계라 이만수 감독에게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로 볼 수도 있지만, 와이번스 구단은 타격코치에 인천야구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경기 코치를 임명했고, 2군 감독은 올 시즌 현역에서 은퇴한 와이번스 프랜차이즈 레전드인 박경완을 임명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통해 이만수 감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자이언츠의 경우 타이거즈나 와이번스와는 달리 가장 매끄럽지 못한 방식으로 코치진 정리를 하면서 팬들의 빈축을 샀다. 김시진 감독이 부임하면서 함께 수석코치로 부임한 권영호 수석코치를 올 시즌이 끝나고 2군 감독으로 임명했다가 불과 1주일만에 일방적인 해고를 통보하면서 사전부터 계획된 인사였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또한 수석코치에 권두조 2군 감독을, 주루 작전코치에 일본인 모토니시 코치를 새로 임명했는데, 새로 부임한 코치들은 김시진 감독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 인사들로서 사실상 김시진 감독에게 올 시즌을 마지노선을 제시한 모양새이다.

 

프로야구 원년 1세대 스타출신인 선동열, 이만수, 김시진 감독은 2014시즌 결과에 따라 감독직 유지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문제는 타이거즈, 와이번스, 자이언츠의 구단 수뇌부 모두 단순히 4강으로만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 올라갈 수 있는 자리는 단 두 개 밖에 없다. 2014시즌 더욱 치열한 순위 경쟁이 예상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순위 보다도 부디 프로야구 초창기 수준향상에 기여했던 레전드 출신답게 경기내용의 질적인 향상을 꾀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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