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8부능선을 넘고도 스스로 하산한 두산 베어스

2013. 11. 1. 23:31Sports BB/야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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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 소심한 대응은 결국 큰 재앙을 부르고 말았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한번도 유례가 없었던 새로운 확률을 창조하고 말았다. 2013 한국시리즈에서 3승 1패로 앞서고도 결국 대역전을 허용한 두산 베어스 이야기이다.

 

넥센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 첫 2경기를 모두 내주고도 극적으로 기사회생하여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더니 플레이오프에서도 당초 체력의 열세라는 예상을 딛고 정규시즌 2위팀 LG 트윈스를 상대로 사상 유례가 없는 9회초 두 번의 홈 보살을 연출하는 기적의 행진을 펼치더니 파죽지세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두산 베어스는 한국시리즈에서 디펜딩 챔피언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도 예상을 뒤엎고 초반 2경기를 모두 쓸어 담으면서 4차전까지 3승 1패를 기록 한국시리즈 우승의 8부 능선을 넘어섰다.

 

선수들의 체력적인 소진을 감안하면 두산 베어스는 홈에서 펼쳐지는 5차전에서 올인하여 시리즈를 마감했어야 했다. 충분히 그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베어스는 스스로 굴러 들어온 기회를 걷어차고 말았다. 사상 유례가 없는 대역전 허용. 올 시즌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되기 일보직전에서 사상 유례가 없는 새드엔딩의 주인공으로 전락한 두산 베어스는 삼성 라이온즈의 사상 첫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통합 3연속 우승의 멋진 조연 역할만 해주고 말았다. 충분히 주연으로 올라설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그러기를 포기한 두산 베어스의 어리석은 패인을 하나씩 짚어보고자 한다.

 

1. 도대체 김명성은 왜 엔트리에 포함시킨 것인가

 

한국시리즈 초반 2연전을 쓸어 담으면서 우승에 한 발 더 다가섰던 베어스는 주전 내야수 이원석과 오재원이 차례로 부상으로 쓰러지면서 전력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다른 팀 대비 월등한 Depth를 보유한 야수진이 가장 큰 경쟁력이었는데, 내야진의 핵심인 이원석과 오재원의 부재는 팀 전력 붕괴의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베어스에는 김재호, 허경민, 최주환 등 충분히 주전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내야자원들이 포진하고 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당시까지 엔트리에 포함되어 좋은 활약을 펼친 최주환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말았다.

 

김진욱 감독은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투수진의 피로도가 높아졌다고 판단하고, 7전 4선승제로 진행되는 한국시리즈 일정을 감안해 최주환 대신 김명성을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김명성은 5차전 9회초에 단 한 차례 등판했고, 등판해서는 소심한 투구내용으로 시리즈 내내 타격부진에 시달리던 이승엽에게 볼넷을 내주고선 마운드를 내려간다. 고작 단 한 타자만 상대하기 위해 김명성을 엔트리에 포함시킨 것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김진욱 감독의 용병술이라 할 수 있다. 충분히 주전 내야수로 투입되어 활발한 공격옵션을 펼칠 수 있는 최주환의 빈자리가 이번 한국시리즈 내내 머릿속을 맴돌게 만들었다.

 

결국 야수진의 경쟁력으로 투수력의 불안요소까지 커버했던 베어스의 강력한 힘은 예상치 못한 주전 내야수들의 부상과 김진욱 감독의 실속없는 용병술로 소멸되고 말았다.

 

2. 왜 5차전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는가

 

6차전에서 투구수 100개가 이미 넘은 니퍼트를 고집하다가 라이온즈 박한이에게 재앙과도 같은 쐐기 3점홈런을 내준 장면을 설명하기에 앞서 대구에서 굳이 한국시리즈 6차전을 펼칠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베어스는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스스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우선 라인업의 실패를 거론할 수 있다. 이미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포스트시즌 주전포수로 자리잡은 최재훈에게 휴식을 주었는데, 베어스는 5차전에서 또 다시 양의지를 주전포수로 내세웠다. 1차전에서 호투를 펼쳤던 노경은은 초반부터 난타 당하였다. 하지만 타선의 강력한 집중력을 통해 5-5로 균형을 맞추고 경기 종반에 접어들었다. 단 한 점이면 승부가 판가름날 경기 후반부 베어스 벤치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투수들을 안정되게 리드할 수 있는 최재훈의 투입이 필요했지만 베어스 벤치는 끝까지 양의지를 고집했고, 승부가 판가름난 7회 윤명준에 이어 정재훈을 투입하는 이미 상대에게 노출된 뻔한 계투 공식을 고집하다가 뼈아픈 결승점을 내주고 말았다.

 

정재훈은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신들린 역투를 펼쳤지만 이미 상대에게 구위가 간파되었다. 그리고 당시 포수는 최재훈이었다. 5차전에서 정재훈은 다시 플레이오프 당시의 불안한 모습으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최재훈이 마스크를 쓰지도 않았다. 전략이 결여된 기계적인 투수기용은 승부의 추를 기울게 만들었다.

 

홈에서 우승의 축배를 들고 싶었던 베어스 선수단은 결국 5차전을 내주면서 심리적으로 피로감이 급격히 몰려오는 것을 극복할 수 없었다. 김진욱 감독은 4차전 승리 후 인터뷰에서 5차전에서 반드시 끝내겠다고 소감을 밝혔지만 실제로 보여준 행동은 말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3. 온갖 찬물을 다 끼얹은 손시헌

 

플레이오프 당시까지 주전으로 기용되지 못하다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주전으로 기용되어 타격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며 팀 승리에 공헌했던 손시헌은 팀의 상승세가 지속되던 3차전에서 시리즈의 흐름을 뒤바꿔놓는 결정적인 실책으로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다.

 

당시 3차전에서 흔들리던 선발투수 유희관은 제구력에 바탕을 둔 템포피칭으로 위기를 넘기고 있었다. 4회초 위기를 맞은 유희관은 의도적으로 만루작전을 썼고, 1사 만루에서 상대한 박한이의 타구는 유격수 손시헌 정면으로 향하는 완벽한 병살타성 타구였다. 하지만 손시헌은 땅볼타구를 놓치고 말았고, 후속 플레이로 이어진 2루 송구마저도 원바운드로 던지면서 커버를 들어온 2루수 오재원으로 하여금 안간힘을 써서 베이스에 발을 뻗게 만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2루심을 보던 김풍기 심판의 오심까지 겹치면서 베어스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포스트시즌 내내 안정감 넘치는 수비를 자랑하던 베어스 내야는 한국시리즈부터 주전으로 출장한 베테랑 손시헌의 어이없는 수비로 시리즈 상승세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결국 4회초에 내준 2점은 3차전 승부를 결정짓는 터닝 포인트가 되고 말았다.

 

손시헌의 찬물 끼얹는 플레이는 5차전에서도 이어졌다. 5차전 4-1로 뒤지다가 타선의 놀라운 집중력으로 동점을 이룬 베어스는 계속해서 1사 1,2루의 역전 찬스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시헌은 흔들리던 구원투수 안지만의 초구에 방망이를 갖다대어 투수 앞 병살타로 절호의 역전찬스에서 찬물을 끼얹고 만다.활화산처럼 터지던 베어스 타선의 집중력은 충분히 역전을 노릴 수 있는 상승세였지만 손시헌의 성급한 공격으로 모든 흐름에 제동이 걸리게 되면서 결국 경기 흐름을 주도하지 못하다가 5차전을 내주고 만다.

 

손시헌은 6차전에서도 1-0으로 앞서던 3회초 무사 2,3루의 대량득점 찬스에서 또 다시 초구에 성급하게 방망이를 갖다대면서 3루 주자 최준석을 홈에서 횡사시키고 아웃카운트만 늘려놓고 만다. 당시 라이온즈 구원투수 배영수가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손시헌은 좀 더 집요하게 배영수를 흔들 필요가 있었다.

 

손시헌이 공,수에서 결정적으로 찬물을 끼얹은 장면은 고스란히 경기의 승부로 직결되고 말았다. 2010년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도 결정적인 끝내기 실책으로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던 손시헌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승부의 결정적인 고비 때마다 안좋은 모습을 연출하며 큰 경기에 약한 징크스를 전혀 씻어내지 못하였다.

 

4. 내일을 봤던 베어스, 오늘만 봤던 라이온즈

 

영화 '아저씨'에서 주인공 태식으로 등장한 원빈의 명대사가 있다. "내일만 보고 사는 놈은 오늘만 보고 사는 놈한테 죽는다." 당시 영화 속 주인공의 비장함을 절묘하게 드러낸 대사였는데, 이 대사는 올 시즌 한국시리즈에 기가 막히게 적용될만 하다. 1승 3패로 벼랑 끝에 몰린 라이온즈는 5차전부터 선발, 구원 보직을 가리지 않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투수들을 총동원하는 그야말로 '오늘만 보고 사는' 용병술을 펼쳤다.

 

반면에 베어스는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들을 총동원하기 보다는 뒤에 남은 경기들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앞서가는 상황에서 몰아붙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베어스 벤치는 지나치게 남은 경기들을 의식하는 용병술을 펼쳤다. 결국 라이온즈의 절박함은 베어스의 여유(?)를 압도했고, 장기전이 되면서 베어스는 그 남은 체력마저 전부 소진하고 말았다.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은 매 경기 라인업을 교체하고 허를 찌르는 투수기용과 선발과 구원 투수의 보직이 구분 안되는 벌떼 투수 기용을 통해 상대팀 삼성 라이온즈에게 숨쉴 틈을 전혀 주지 않고 질식시키고 말았다. 당시 일부 팬들은 김성근 감독이 한국시리즈를 너무 흥미없게 만든다는 비아냥을 던지기도 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프로라면 당연히 이행해야할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치밀하게 최선의 수를 거듭한 것이었다. 두산 베어스 김진욱 감독이 2010년 김성근 감독처럼 치밀하게 상대방을 질식시키는 수를 펼쳤다면 베어스의 가을 무대는 이처럼 잔혹하게 마무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처럼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치밀한 수를 동원하는 것은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것임이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철저하게 증명되었다.

 

충분히 우승을 거머쥘 수 있는 상황에서 사상 초유의 1승 3패 뒤 역전 스윕을 당한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트라우마는 예상보다 길게 지속될 전망이다. 선수들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수습하고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해 보인다. 김진욱 감독은 자신이 복장이라 스스로 칭했지만 복은 스스로 돕는 자에게만 오는 것이다. 하지만 김진욱 감독이 우승의 8부 능선을 넘은 다음 한국시리즈 5차전 부터 보여준 용병술은 '복장'이라 불리기에도 2%가 부족해 보였다.

 

12년 만에 통쾌한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두산 베어스는 너무나도 아쉽게 가을무대를 마감하고 말았다. 베어스의 우승은 프로야구에 좀 더 통쾌한 스토리텔링을 제공할 수 있는 좋은 소재였지만, 오히려 팬들에게 절망과 한숨, 그리고 진한 아쉬움만 한가득 안겨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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