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이 자멸한 베어스, 위기에 내몰리다.

2013. 10. 9. 19:14Sports BB/야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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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태풍이 왔었냐는 듯, 23년 만에 공휴일로 재지정된 한글날의 하늘은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의 자태를 뽐냈다. 눈부신 햇살이 가득한 날씨와 더불어 준플레이오프 2차전이 펼쳐진 목동구장도 만원사례를 이루면서 비로소 축제 분위기가 풍겨지게 되었다. 낮경기로 펼쳐진 준플레이오프 2차전은 넥센 히어로즈 벤 헤켄과 두산 베어스 유희관의 맞대결로 펼쳐졌다. 두 투수 모두 강속구로 타자들을 윽박지르기 보다는 타자들의 템포를 뺏는 투구 패턴으로 승부를 거는 이른바 아웃 복싱 유형의 투수들이다.

 

두 투수들이 투구하는 모습을 보면 1990년대 중반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성준을 연상하게 한다. 130km대의 평범한 직구로도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템포 피칭의 미학으로 통산 97승을 기록한 성준은 포스트 시즌에서는 그다지 큰 재미를 보지 못하였다. 타자들의 집중력이 정규시즌 때보다 훨씬 높아지다 보니 성준의 빠르지 못한 직구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 탓이다.

 

그래서 준플레이오프 2차전은 1차전보다 양팀의 타격이 훨씬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벤 헤켄과 유희관의 '느림의 미학'은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더욱 빛을 발하였다. 두 투수는 나란히 7.1이닝을 소화했고, 벤 헤켄은 후속 투수들이 실점을 내주는 바람에 1실점이 기록 되었지만, 8회초 1사 상황까지 4피안타만 허용하고 6개의 삼진을 빼앗으며 베어스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하였다. 베어스 선발투수 유희관도 올 시즌 그의 활약이 단순한 일회성 돌풍이 아님을 확실하게 입증하였다. 비록 후속 투수들이 실점을 내주는 바람에 1실점이 기록 되었어도 7.1이닝 동안 안타 3개, 볼넷 3개를 허용하고 탈삼진 5개를 빼앗으며, 히어로즈 강타선을 압도하였다.

 

특히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로 군림하고 있는 박병호를 상대로 단 한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판정승을 거둔다. 양팀 선발투수들의 호투와는 대조적으로 구원투수들의 활약은 많은 아쉬움을 낳았다. 우선 먼저 불펜진을 가동한 히어로즈는 8회 1사 후 벤 헤켄을 구원한 강윤구가 오재원을 상대로 안타를 내주면서 아웃카운트 한 개도 잡지 못한 채 곧바로 마운드를 내려 간다. 염경엽 감독은 곧바로 마무리 손승락을 투입하는 초강수를 띄운다. 하지만 1차전에서 블론 세이브를 기록한 손승락은 정규 시즌 때와는 달리 안정감이 떨어져 보였다.

 

손승락이 등판하자 베어스 김진욱 감독은 대타 최준석을 바로 내리고 다시 좌타자 오재일을 투입한다. 오재일은 손승락의 초구를 노려치지만 유격수 강정호의 정면으로 향하면서 병살타로 연결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1루 주자 오재원이 2루로 들어가면서 교묘하게 2루수 서건창의 송구를 방해했으며, 오재일도 1루 까지 자신의 몸을 던져 전력질주하는 투혼을 보이면서 베어스는 선취 득점에 성공한다.

 

손승락을 투입하고도 선취 득점을 내준 히어로즈는 곧바로 이어진 8회말 반격에서 상대 구원 투수 홍상삼의 제구력 난조에 힘입어 동점을 이루게 된다. 8회 1사 2루에서 선발 유희관을 구원 등판한 홍상삼은 첫 타자 이택근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위기를 넘기는 듯 보였다. 하지만 박병호에 대한 두려움이 또 다시 발목을 잡았다. 박병호와 정면승부를 피하기로 결정한 베어스 배터리는 포수 양의지가 일어서서 공을 받으려고 했으나 홍상삼이 던진 공은 양의지의 키를 훌쩍 넘어가는 와일드 피치로 연결되면서 1사 3루의 위기를 자초하게 된다. 결국 양의지는 바깥 쪽에 걸터 앉아서 고의 볼넷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양의지 앞에서 홍상삼의 공이 바운드 되면서 옆으로 흘러가게 되고 3루 주자 서건창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동점 득점을 올린다.

 

홍상삼의 어이없는 폭투가 결국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게 된다. 홍상삼은 지난 시즌부터 베어스의 필승 계투조로 급성장했지만 자이언츠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마무리 프록터를 대신하여 중책을 맡았다가 연거푸 결승점을 헌납하면서 '9회 트라우마'라는 반갑지 않은 징크스가 생기게 되었다. 올 시즌에도 홍상삼은 붙박이 마무리로 기용 되었지만 사상 초유의 9회말 끝내기 홈런을 2연속으로 허용하면서 마무리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올 시즌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홍상삼은 7회 구원 등판하여 1이닝을 깔끔하게 틀어 막으면서 기대를 심어 주었다. 하지만 2차전 중요한 상황에서 홍상삼은 또 다시 트라우마를 재현하고 말았다.

 

뒷문이 불안한 것은 히어로즈도 마찬가지였다. 8회에 조기 투입된 손승락은 9회초 선두타자 이종욱을 볼넷으로 내보내며 위기를 자초한다. 베어스 김진욱 감독은 정수빈 타석에서 과감한 도루 작전을 통해 무사 2루 찬스를 만든다. 정석대로 정수빈은 보내기 번트를 시도했고, 1사 3루 상황으로 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손승락은 3루 포스 아웃을 시도하기 위해 3루를 쳐다보다가 정수빈마저 살려줄 상황에 처하게 되고, 다급한 나머지 1루로 악송구를 범하면서 역전 점수를 허용하게 된다.

 

베어스는 상대 마무리 손승락의 실책에 힘입어 역전에 성공하고 추가점을 뽑을 수 있는 찬스를 맞이한다. 3번 민병헌의 보내기 번트를 통해 베어스는 1사 3루의 추가점 찬스를 맞이한다. 4번 김현수가 외야 플라이만 쳐줘도 쐐기점을 뽑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현수는 타구를 외야로 넘기는데 실패한다. 히어로즈 1루수 박병호는 김현수의 타구를 잡자마자 바로 정확하게 홈 송구를 뿌렸고, 홈으로 들어오던 정수빈은 횡사하고 만다. 베어스의 추가점 찬스가 허무하게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2-1로 리드를 잡은 베어스는 9회에도 홍상삼을 마운드에 올린다. 하지만 좀처럼 '9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홍상삼이 과연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 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김진욱 감독은 어떻게 해서든 팀의 미래를 위해 홍상삼이 9회에 경기를 매조지할 것을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첫 타자 김민성 타석에서부터 어긋나고 말았다. 홍상삼은 투 스트라이크를 잘 잡아 놓고도 제구력 난조를 범하면서 김민성을 볼넷으로 출루시킨다. 자신도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 징크스 재현에 홍상삼은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하고 사실상 멘붕 상태로 접어든다.

 

더 이상 홍상삼으로 경기를 마무리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한 베어스 코칭스태프는 어쩔 수 없이(?) 정재훈을 마운드에 올린다. 그러나 정재훈은 1사 2루 상황에서 유한준에게 우전안타를 허용하며 위기를 증폭시킨다. 정재훈은 1차전에서도 이택근에게 끝내기 안타를 허용했는데, 유한준에게도 비슷한 형태로 안타를 내주면서 이번 시리즈에서 더 이상 접전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재훈을 구원 등판한 윤명준도 영점조절에 애를 먹으면서 대타 문우람을 볼넷으로 출루시킨다. 1차전에서도 9회에 등판했지만 제 몫을 하지 못해 강판한 윤명준은 자신의 첫 포스트시즌에서 경직된 나머지 자신의 공을 제대로 뿌리지 못하였다. 1사 만루의 위기에서 베어스 김진욱 감독의 선택은 노장 김선우였다. 올 시즌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인해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김선우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등판하며 팀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 하지만 첫 타자 서건창과 풀 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볼넷을 허용, 결국 동점을 내주게 된다.

 

계속되는 1사 만루 상황.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선우의 관록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2번 서동욱과 풀카운트까지 가는 어려운 승부에서 몸쪽 바짝 붙는 공을 던져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고, 이택근도 2루수 땅볼로 잡아내면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올 시즌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김선우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관록투를 선보인다.

 

경기는 연장에 접어들고 베어스는 10회초 1사 후 오재원이 유격수 내야안타를 치며 찬스를 잡는 듯 보였다. 그러나 1루 악송구를 확인한 오재원이 2루까지 진루하다 히어로즈 수비수들의 견고한 백업 플레이에 횡사 당하면서 베어스는 찬스를 무산시킨다. 이후 후속타자 양의지와 김재호가 연달아 볼넷으로 진루한 점을 감안하면 오재원의 과욕이 아쉽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베어스는 10회말 수비에서 김선우를 내리고 오현택을 마운드에 올린다. 김진욱 감독은 아무리 김선우가 노련하지만 김선우의 구위로는 박병호, 강정호 등의 화력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감안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현택의 경험 부족은 결국 베어스의 발목을 잡게 된다. 1사 1루 상황에서 오현택은 1루에 견제 악송구를 범하면서 1루 주자 박병호를 3루까지 보내게 된다. 아무리 염경엽 감독이 과감한 작전으로 허를 찌르는 것에 능통한다 하더라도 오현택은 상대적으로 중량감이 떨어지는 타자 김지수와의 승부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해야 했다. 그러나 오현택은 너무 주자를 묶어두는 것에 신경을 쓰다가 견제 실책을 범하고 결국 김지수에게도 끝내기 안타를 허용한다.

 

 

 

 

이틀 연속 끝내기 패배를 당한 베어스는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경기를 이틀 연속 집중력 부족으로 자멸하고 말았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김진욱 감독의 용병술에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 김현수에게 쏠리는 과중한 부담

 

김현수의 원래 포지션은 좌익수이다. 하지만 시즌 막판부터 김진욱 감독은 김현수를 1루수로 기용하고 있다. 정수빈, 민병헌 등 기동력이 좋은 외야 자원들을 활용하기 위해 발목 상태가 좋지 않은 김현수를 1루수로 기용하는 대안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김현수의 1루 수비는 부자연스럽다. 특히 10회말 견제 실책이 발생한 상황에서도 김현수가 1루 수비에 익숙했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던 송구였다. 히어로즈 1루수 박병호가 결정적인 순간에서 호수비로 팀을 구한 반면에 김현수가 버티는 베어스의 1루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이 느껴진다.

 

수비에 대한 부담이 김현수의 공격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4번 타자 중책을 맡다 보니 부담이 더욱 가중되는 듯 싶다. 역대 포스트시즌에서 김현수는 자신에 대한 부담과 견제를 극복하는데 성공 보다는 실패한 모습이 더 많았었다.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상황인만큼 김현수의 타순과 수비 포지션 조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2. 홍상삼 사용 설명서

 

비록 결정적인 순간에 어이없는 투구로 자멸했지만 홍상삼은 현재 베어스 계투진에서 가장 좋은 구위를 보유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다만 홍상삼에게 쏠리는 부담을 극복해줄 슬기로운 사용 설명서가 필요해 보인다. 계속해서 중압감 넘치는 상황에 투입되다가 치유하기 힘든 트라우마만 누적되면 홍상삼 본인 뿐만 아니라 팀으로서도 향후 10년은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계투요원을 잃게 되는 손해를 안게 된다.

 

홍상삼 사용의 가장 좋은 해답은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라 할 수 있다. 가능하면 박빙의 상황을 피해서 홍상삼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베어스 계투진은 워낙 총체적 난국이다 보니 홍상삼 사용법을 두고 고민할 겨를조차 없어 보이는 것이 문제이다.

 

3. 베테랑의 힘을 믿어보자

 

2차전에서 9회말 사실상 패배 위기에 직면해 있던 베어스는 노장 김선우가 비록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했지만 서동욱과 이택근을 연달아 잡아내며 팀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큰 경기에서 베테랑들의 관록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대의 가치와 잠재력을 지닌다. 차라리 2차전 10회말에도 김선우를 다시 기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야수진도 2년 연속 엔트리에서 제외된 '두목곰' 김동주의 빈자리가 느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중심타선의 파괴력은 홍성흔 홀로 커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최준석과 오재일 등 파괴력이 있는 타자들을 기용하고 싶어도 홍성흔이 지명타자만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제약이 커보인다. 벼랑 끝 3차전에 임해야 하는 베어스로서는 3차전마저 패하면 새로운 용병술을 써보고 싶어도 쓸 수 없는 만큼 라인업에 과감한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베테랑의 힘을 빌어서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방법은 어떨지 제안해 본다.

 

창단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히어로즈와 포스트시즌 경험이 풍부한 베어스의 모습이 마치 뒤바뀐 것처럼 느껴지는 이번 준플레이오프가 과연 3차전에서 막을 내릴 것인지 아니면 베어스의 반격으로 시리즈가 연장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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