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행을 향한 처절한 혈투의 끝, 준플레이오프 5차전

2013. 10. 15. 13:51Sports BB/야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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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혈투'라는 단어가 떠오를 수 밖에 없었던 한 판이었다. 10월 14일 목동구장에서 펼쳐진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오직 승리만이 필요했던 넥센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였고, 결국 13회 연장 끝에 두산 베어스가 8-5로 승리를 거두며, 2010년 이후 두 번째로 준플레이오프 리버스 스윕을 달성하였다.

 

히어로즈 나이트와 베어스 유희관의 선발 맞대결로 펼쳐진 5차전에서 초반 팽팽한 0의 흐름은 4회초 베어스 공격에서 3차전 결승타의 주역 이원석이 선제 3점 홈런을 터뜨리면서 깨지게 된다. 히어로즈 타선은 베어스 선발투수 유희관에게 압도 당하면서 좀처럼 반격의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유희관은 2차전 호투에 이어 5차전에서도 히어로즈 타선을 7이닝 동안 단 1개의 안타만 내주고 삼진을 무려 9개나 잡아내면서 5차전 영웅으로 등극할 준비를 마친다.

 

9회말 히어로즈 마지막 공격이 시작할 시점만 하더라도 베어스의 리버스 스윕이 사실상 확정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준플레이오프 MVP는 2경기에 등판하여 평균자책점 0.63의 경이적인 짠물투구를 선보인 유희관의 차지가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야구는 정말 모르는 경기임이 또 다시 증명되었다. 8회부터 등판하여 세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한 변진수가 연속 안타를 맞고 흔들리면서 무사 1,2루의 위기를 맞게 된다.

 

결국 베어스 김진욱 감독은 에이스 니퍼트를 마운드에 올린다. 니퍼트는 올라오자마자 상대한 장기영과 이택근을 연달아 삼진으로 잡아내며 에이스의 위용을 과시한다. 그러나 히어로즈에는 박병호가 있었다. 시리즈 내내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한 박병호는 사실상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무렵 극적인 동점홈런을 뽑아내면서 드라마 같은 승부를 연출한다.

 

시리즈 내내 반 박자 또는 한 박자 그것도 아니면 엇박자 투수교체로 매 경기를 어렵게 이끌어갔던 베어스 김진욱 감독의 투수교체 타이밍이 도마에 오를 수 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결과론적인 비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팀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일전에서 감독이라면 가장 확률높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9회말이 시작될 때 에이스 니퍼트를 마운드에 올리는게 순리였다. 하지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김진욱 감독은 변진수에게 경기 매조지를 맡긴다. 그러나 변진수는 이제 풀타임 2년차에 접어든 선수이다. 프로 무대에서 그것도 포스트 시즌에서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경기를 마무리하는 것은 어지간한 구위와 배짱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만약에 니퍼트를 마운드에 올렸다면 니퍼트의 투구수는 36개까지 늘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진욱 감독의 납득하기 어려운 투수교체는 결국 경기를 또 다시 처절한 혈투모드로 돌입하게 만들었다. 물론 경기 끝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은 히어로즈 박병호에 대해서는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이다. 이번 시즌을 통해 박병호는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거포이자 클러치 히터로 확실하게 자리매김 하였다.

 

히어로즈 마무리 손승락은 9회초에 등판하여 12회초까지 무려 4이닝을 책임지며 혼신의 64구를 뿌렸다. 손승락의 투혼은 양팀의 처절한 혈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손승락이 왜 국내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가를 확실하게 입증한 투구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히어로즈는 손승락이 마운드에 있을 동안에 경기를 끝내지 못하였다. 결국 이는 13회초 히어로즈에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손승락이 내려가고 마운드에 오른 강윤구는 애매한 스트라이크 판정에 흔들리다가 결국 대타 최준석에게 역전 홈런을 허용하게 된다. 급격히 흔들린 강윤구는 결국 이정훈과 교체되지만, 이정훈 마저 오재원에게 쐐기포를 허용하게 된다. 13회초에 무려 5점을 허용하며 승부의 추는 급격하게 기울게 된다.

 

 

 

 

하지만 베어스의 고질적인 문제인 마무리 부재는 13회말 5점차의 넉넉한 리드를 지키는 상황에서도 되풀이된다. 12회부터 등판한 윤명준은 5점차의 리드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도 연속 볼넷을 허용하며 스스로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고 만다. 윤명준의 어이없는 난조는 결국 불안한 마무리 정재훈을 호출하는 악순환(?)을 가져왔고, 정재훈은 이번 시리즈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승계 주자를 고스란히 홈으로 들어오게 만든다. 등판하여 상대한 첫 타자 오윤의 타구도 야수 정면으로 향하지 않았다면 이번 시리즈는 자칫하면 사상 초유의 6차전 시리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히어로즈는 이택근의 2점 홈런으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중력을 선보였다. 아쉽게 올 시즌을 마감했지만 히어로즈가 보여준 투혼과 선전은 박수를 받을만하다. 든든한 모기업의 지원이 없이도 히어로즈는 프로야구 판에서 자생할 수 있는 사업모델의 본보기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잠재력을 발산하지 못하던 박병호를 트레이드로 영입한 이후 3시즌 만에 리그에서 가장 두려운 타자로 육성시킨 사례는 다른 구단이 배워야만 할 것이다. 박병호 외에도 김민성, 이성열, 서동욱 등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선수들의 기량을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히어로즈는 그들만의 화수분 야구를 선보이고 있다.

 

혹자들은 히어로즈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흥행에 차질을 빚었다고 비난하는데, 염치없는 푸념에 불과한 소리라 할 수 있다. 이제 창단한지 6년 째에 접어든 히어로즈는 지금이 정착기라 할 수 있다. 향후 올 시즌과 같은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한다면 팬층은 당연히 두터워질 것이다. 그리고 다른 구단에는 없는 박병호라는 대형 거포는 앞으로 더 많은 스토리텔링을 펼쳐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늘에 가려있던 서건창, 문우람, 안태영 등과 같은 잠재력을 분출하는 선수들이 계속 탄생한다면 히어로즈는 앞으로도 리그에 신선한 돌풍을 몰고 올 것이다. 또한 신임감독 답지 않은 영민함과 과감한 작전으로 기존 감독들을 제압한 염경엽 감독의 리더십도 찬사를 받을만 하다.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순위 다툼으로 인해 심신이 지쳐 있던 양팀 선수들의 집중력 부재는 이번 준플레이오프의 가장 큰 아쉬움이었지만 5차전에서 보여준 혈투는 여전히 프로야구는 볼거리가 넘쳐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다만 올 시즌들어 유독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심판들의 자질만큼은 남은 포스트시즌 동안 개선되는 노력이라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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