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즈는 어찌하여 우승후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했는가

2013. 9. 18. 23:43Sports BB/야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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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프로야구 정규시즌 판도의 가장 큰 특징은 2008시즌 부터 사실상 고착화되어 있던 4강 구도가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4강 단골 손님이었던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는 사실상 4강권에서 밀려난 느낌이다. 이제 4강에 어느 팀이 올라가느냐 보다는 과연 어느 팀이 정규시즌 1위 자리에 오를 것인지가 더 큰 관심사로 자리하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서울 연고 3팀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즈)이 동시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지하철 시리즈가 펼쳐질 가능성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이변은 올 시즌 시작 전만 하더라도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KIA 타이거즈의 몰락이다. 조범현 감독 시절 2009년, 2011년 등 홀수해마다 빠짐 없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던 타이거즈의 기분좋은 '홀수해 징크스'는 올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별탈없이 적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타이거즈는 동계 훈련 기간 동안 마치 4월, 5월에만 대비하여 준비하고 나온 팀 마냥 5월 이후부터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였다.

 

시즌 초반 가공할 화력으로 리그를 평정할 기세로 질주하던 타이거즈의 몰락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여러가지 요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올 시즌 타이거즈의 운명을 좌우한 두 가지 터닝 포인트를 언급하고자 한다.

 

1. 2009년 4월 19일 vs 2013년 5월 6일

 

2009년 4월 19일 KIA 타이거즈는 투수 강철민을 LG 트윈스에 보내고 대신 내야수 김상현과 박기남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당시만 해도 지명도가 높지 않았던 선수들의 트레이드 였기 때문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해 보이던 이 트레이드는 2009시즌 판도를 뒤흔드는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만년 기대주에 머무른채 좀처럼 자신의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하던 김상현은 고향팀 타이거즈로 이적한 후 신들린 방망이 쇼를 펼치면서 3번 최희섭과 더불어 리그 최강의 중심타선인 CK포를 구축하였다.

 

프로 입단 이후 처음으로 30홈런 100타점을 넘어선 (36홈런, 127타점) 김상현은 시즌 도중에 트레이드 된 선수로는 처음으로 리그 MVP를 거머쥐는 영광을 얻게 된다. 김상현의 신들린 활약과 더불어 팀도 고공행진을 펼쳤고, 결국 타이거즈는 1997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시리즈 패권을 거머쥐게 된다.

 

트레이드 이후 가장 최대의 반전을 일으킨 김상현은 대한민국 프로야구 트레이드 역사상 최고의 반전 드라마로 자리하게 되었다.

 

4년 후 2013년 5월 6일 17승 1무 8패로 리그 순위표 맨 꼭대기에 우뚝 서 있던 KIA 타이거즈는 SK 와이번스와 전격 트레이드를 발표하는데 트레이드 주인공의 이름이 언론에 노출되는 순간 야구팬들과 관계자들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KIA 타이거즈 김상현, 진해수와 SK 와이번스 송은범, 신승현이 서로 유니폼을 맞바꿔 입게 되었는데, 팬들을 놀래킨 그 이름은 바로 김상현과 송은범이었다.

 

양팀의 간판 선수라 할 수 있는 김상현과 송은범은 속된 말로 각각 소속팀에 뼈를 묻을 것처럼만 보이던 선수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친정팀으로 돌아와서 정규시즌 MVP까지 거머쥔 김상현이 타이거즈 유니폼을 벗을 줄은, 2003년 와이번스 1차 지명으로 입단 이후 선발과 계투,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꿋꿋한 활약을 펼치면서 와이번스 마운드를 굳건히 지킨 우완 에이스 송은범이 와이번스 유니폼을 벗을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그만큼 두 선수가 양팀에서 갖는 비중은 상당했는데 팬들과 야구 관계자들이 허를 찌른 이 트레이드를 두고 대부분의 평가는 선발과 마무리 모두 가능한 송은범이라는 대형 투수를 얻게 된 타이거즈가 상승세에 날개를 달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비록 김상현이라는 거포를 내줬지만 당시 타이거즈 중심타선은 이범호, 최희섭, 나지완 등이 연일 맹타를 터뜨리고 있었고, 외야에는 FA를 통해 영입하여 연일 맹활약을 펼치던 김주찬이 갑작스런 부상으로 빠진 자리는 신종길이 모처럼 자신의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중심타선과 외야에 김상현이 좀처럼 비집을 틈이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마무리 앤서니 앞에서 1-2이닝을 버텨줄 수 있는 필승 계투요원의 부재는 타이거즈 전력의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그런데 그 빈자리를 리그 최고의 에이스급 요원이라 할 수 있는 송은범이 들어왔기 때문에 타이거즈 선두 질주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장미빛 기대는 송은범이 팀에 합류한 순간부터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활화산 같던 타선은 트레이드가 일어난 직후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뼈아픈 점은 필승 계투조에서 자신의 몫을 해줘야 할 송은범이 전혀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빈번했다는 것이다. 구위가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박빙의 상황에 투입되고 그리고 경기를 지켜내지 못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송은범은 점점 자신감과 밸런스를 잃기 시작했다.

 

중심타선도 시즌 초반 30홈런은 거뜬히 넘길 것 같은 페이스를 보이던 최희섭이 부진의 늪에 빠져들면서 중심타선의 무게감도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5월 5일까지 홈런 9개를 기록하며 홈런왕 등극의 가능성을 보이던 최희섭은 이후 고작 2개의 홈런을 추가하는데 그치면서 팀과 함께 추락하였다. 이범호가 21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파워를 뽐냈지만 정작 중요한 찬스에서는 번번히 범타로 물러나면서 해결사다운 모습을 확실하게 심어주지 못하였다.

 

송은범의 영입 이후 거짓말처럼 추락을 거듭한 팀의 모습은 4년 전 김상현 영입 이후 극적인 반전을 이룬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타이거즈는 우승 후보라는 전망을 무색하게 만드는 급추락을 거듭하였다.

 

2. 5월 12일

 

 

 

 

5월 12일 포항구장에서 펼쳐진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는 올 시즌 타이거즈의 급속한 추락을 부채질한 터닝 포인트가 된 동시에, 당시 선동열 감독이 보여준 투수 기용은 올 시즌 선 감독이 얼마나 우승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줬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경기라 할 수 있다.

 

5월 6일 대형 트레이드 이후 홈 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에게 2경기 연속 무기력한 경기로 일관하며 패한 타이거즈는 라이온즈와의 포항 원정에서도 2경기 연속 패하면서 4연패로 내몰리고 있었다. 타이거즈는 선발 투수 서재응이 라이온즈 타선을 효과적으로 봉쇄하면서 5회 1사까지 1실점만 내주고 있었다. 비록 2-1 박빙의 리드 상황이었지만 서재응은 투구수가 70개에 불과한 상황이라 최소 6회까지는 충분히 라이온즈 타선을 봉쇄할 힘이 있었다.

 

하지만 4연패 탈출이 시급했던 선동열 감독은 승리투수 요건까지 불과 아웃카운트 두 개만을 남겨놓은 서재응을 과감히 마운드에서 내리고 윤석민을 조기 투입한다. 마치 포스트시즌을 방불케하는 투수 운용이었는데, 서재응이 충분히 라이온즈 타선을 막을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었고, 서재응이 투수조 최고참의 위치에 있었던 만큼 팀 케미스트리를 위해서라도 서재응의 기를 더 살려주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재활 후 복귀한 윤석민은 강력한 구위를 뽐내면서 라이온즈 타선을 봉쇄하였고, 타이거즈는 7회초 차일목의 2타점 적시타로 승부에 쐐기를 박는 듯한 분위기였다. 8회말 라이온즈 공격 이전까지 타이거즈는 4-1 리드를 지키면서 4연패 탈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윤석민은 8회에도 등판하여 첫 타자 정형식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쾌조의 컨디션을 과시하였다. 하지만 투구수가 50개에 육박하자 선동열 감독은 윤석민 대신 송은범을 마운드에 올린다. 송은범 영입을 통해 선동열 감독이 그리려 한 청사진이 그대로 실행에 옮겨지는 장면이었다. 서재응, 윤석민, 송은범 등 선발급 투수 3명을 한꺼번에 투입한 선동열 감독의 과감한 승부수는 시즌 초반 선두권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강한 의지를 적나라하게 표출한 것이었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의 청사진과 승부수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믿었던 송은범이 올라오자마자 연속 안타를 허용하면서 아웃 카운트 한 개를 잡는 동안 무려 4점을 허용하며 순식간에 4-5로 역전을 허용한 것이다. 타구도 대부분 장타로 연결되는 등 송은범의 구위는 라이온즈 타선을 압도할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비슷한 유형의 윤석민 바로 다음에 등판하여 라이온즈 타자들에게 별다른 차별감을 심어주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송은범의 구위가 타자들의 배트를 누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송은범의 구위를 믿었지만 결국 애써 다잡은 경기를 그르칠 위기에 놓인 선동열 감독은 뒤늦게 마무리 앤서니까지 투입했지만 8회 이전까지 공들였던 모든 초강수가 허사로 돌아가면서 충격의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후 타이거즈는 시즌 내내 고비에서 라이온즈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일방적인 열세에 밀렸고, 결국 시즌 내내 타이거즈의 발목을 잡는 주요 요인이 되고 말았다.

 

무조건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힌 선동열 감독이 직접 구단에 요청하여 영입한 송은범의 가치를 입증시키기 위해 선발투수 서재응에 에이스 윤석민까지 투입시키는 무리수를 둔 5월 12일 포항경기는 타이거즈에게 쓰디쓴 트라우마를 안겨줬고, 이후 타이거즈의 속절없는 추락을 가져온 BAD 터닝 포인트가 되고 말았다.

 

3. 과연 케미스트리에 문제는 없는가

 

시즌 초반 타이거즈 타선은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이를 두고 새로 영입한 김용달 신임 타격코치의 지도력이 빛을 발했다고 하여 '용달매직'이라는 찬사가 붙기도 하였다. 그러나 5월 이후 타이거즈 타선은 지난 시즌의 무기력한 모드로 되돌아왔다. 시즌 초반 '용달매직'이란 찬사를 받던 김용달 타격코치는 시즌 중반 분위기 쇄신차원에서 코치진 변경을 단행할 때 2군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고 결국 올 시즌이 마감할 때까지 더 이상 1군으로 콜업 받기는 힘들 전망이다.

 

김용달 코치의 꾸준한 지도를 받던 타자들이 갑자기 김용달 코치에게 항명이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김용달 코치의 지도력이 마음대로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선수들의 배우려는 의지가 없던 것일까. 올 시즌 타이거즈의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 일부 선수들은 지나친 압박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일부 선수들은 집중력과 승부욕이 상당히 결여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선수단 전체에 과연 코칭스태프들의 승리에 대한 의지가 깊숙하게 전파되었는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시즌 내내 타이거즈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은 응집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선수시절은 물론 지도자로서도 좀처럼 실패를 겪어보지 않았던 선동열 감독은 정작 친정팀에 복귀해서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좌절이라는 쓴맛을 봐야 했다. 팀을 4강에 올려놓고도 해임된 조범현 감독보다 더 나은 성적을 가져다 줄 것이라 기대를 받은 선동열 감독은 올 시즌 누구보다 험난한 시즌을 겪어야만 했고, 자신에게 우호적인 연고팬들의 민심마저 대부분 잃고 말았다.

 

선동열 감독과 함께 수석코치로 부임한 이순철 코치는 2004년 LG 트윈스 감독 부임 이후 단 한 차례도 소속팀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는 쓴맛을 봐야 했다. (2004~2006 LG 트윈스 감독, 2008 우리 히어로즈 수석코치, 2012~2013 KIA 타이거즈 수석코치)

 

구단으로서는 비록 만족할만한 성적을 못냈지만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선동열 감독과 이순철 수석코치를 쉽게 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10구단 KT 위즈가 출범하면서 리그 전반적으로 코칭스태프 인력 구인난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마땅한 대안이 보이지도 않는 상황이다.

 

내년 시즌 타이거즈는 프랜차이즈 역사상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예정이다. 기존 광주 무등야구장 바로 옆에 초현대식 메이저리그 구장급의 시설을 갖춘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가 개장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신식구장에서 시즌을 치르게 될 타이거즈는 이왕이면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의 선동열-이순철 체체에서 포스트 시즌까지 치르는 청사진이 구현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타이거즈가 처한 상황은 오히려 내년 시즌 전력 업그레이드보다는 누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FA 자격을 얻게 될 톱타자 이용규,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윤석민 등 투, 타의 핵심 전력을 반드시 잡아야 할 상황이다. 또한 중심타선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친 나지완이 군에 입대할 예정이다. 기존 중심타자들인 최희섭, 이범호로는 도저히 풀타임 시즌을 치르기 버겁다는 것을 확실히 입증한 상황인만큼 선동열 감독으로서는 새로운 중심타선의 밑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이다.

 

올 시즌 프로야구 정규시즌 최대의 이변의 대상이 된 KIA 타이거즈가 과연 2014년에는 명예회복에 성공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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