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통해 시대를 이야기하다. 영화 '관상'

2013. 9. 17. 23:13Entertainment BB/movie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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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박스오피스에서 '미스터 고'를 통해 최강자 등극을 노렸지만 체면을 단단히 구겼던 쇼박스가 올 추석 극장가에서는 '미스터 고'의 아쉬움을 한껏 달랠 수 있는 파죽지세를 구가하고 있다.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그리고 김혜수까지 이름만 들어도 설렘 한가득 느낄 수 있는 그리고 2인 1조로 각각 묶으면 세 편의 영화를 탄생시킬 만한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관상'은 지난 해 가을 극장가를 석권했던 '광해'에 이어 또 다시 사극 영화 붐을 일으킬 기세이다.

 

'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 등의 영화를 통해 잔잔하지만 할 얘기 다할 줄 아는 연출력으로 각광받은 한재림 감독이 사극에 처음 도전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0년 영화 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대상을 받은 원작 시나리오는 '관상'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역사 실화 속에 대입시킨 기발한 팩션 설정이 돋보여서 호화 캐스팅 못지 않게 컨텐츠 또한 기대를 안겨 주었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 속에 가상의 사건을 대입시킨 팩션 사극은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 새로운 대세로 자리하고 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공주의 남자', '해를 품은 달', 그리고 영화 '광해'에 이르기까지 최근 들어 대중의 호응을 받은 팩션 사극은 탄탄한 구성으로 이미 일어난 역사이지만 실제 그 이상의 흥미와 쾌감을 선사한다.

 

 

 

 

한재림 감독의 '관상'은 도입부부터 '광해'를 의식한 듯 싶다. 오프닝 도입부 음악도 지난 해 '광해'에 삽입된 OST를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영화음악의 귀재 이병우가 모처럼 맡은 오프닝 음악은 예전에 그의 작품에서 느꼈던 귀를 감는 전율에 2% 부족한 느낌이었다. 사실 '광해'를 볼 때도 귀를 감는 오프닝 음악 덕분에 한층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탁월한 관상 보는 능력을 지닌 김내경 역으로 등장한 송강호는 마운드 위에서 능수 능란한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요리하는 노련한 투수처럼 극의 흐름을 안정감 있게 이끈다. 그의 눈빛 하나하나는 마치 객석에 앉은 필자의 관상을 보는 듯한 눈썰미를 느끼게 한다.

 

송강호의 처남 팽헌 역을 맡은 조정석은 송강호와 콤비를 이뤄 영화의 유머의 대부분을 담당하는데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력은 밋밋해질 수 있는 영화에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리고 김내경의 아들 진형 역을 맡은 '대세남' 이종석도 지조 있는 성격으로 역적의 후손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강인한 내면이 돋보이는 진형 캐릭터를 듬직하게 소화한다.

 

김종서 역할을 맡은 백윤식과 수양대군 역할을 맡은 이정재의 카리스마는 영화의 극적인 긴장감을 살리는 일등공신 역할을 한다. 백윤식의 카리스마 넘치는 중저음이 풍기는 중후함과 대비되는 악랄하면서 표독함을 숨기지 않는 수양대군 역할을 맡은 이정재의 연기는 영화 '신세계'에 이어 그의 존재감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기게 된다.

 

화려한 캐스팅을 과시하지만 영화 '도둑들'처럼 주연 배우들의 매력과 개성을 짜임새 있게 살려내지 못한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재림 감독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절제된 연출력으로 팽팽한 재미를 살려낸다.

 

영화 '관상'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얼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종이 일궈 놓은 찬란한 조선 시대의 통치와 문화가 수양대군과 희대의 간신배 한명회에 의해 얼룩진 가슴 아픈 역사는 결국 후대에도 통치하지 말았어야 할 이들이 무력을 통해 피로 얼룩진 역사를 일궈내는 또 다른 비극을 낳게 된다. 통치하지 말았어야 할 이들의 말로는 수양대군처럼 불행함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큰 비극은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남겨놓은 그릇된 유산들이 지금도 대한민국에 잔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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