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 영화 '숨바꼭질'

2013. 8. 29. 05:39Entertainment BB/movie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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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공포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엑소시스트', '캐리' 등과 같이 헐리웃 걸작 공포영화에 꼽힐만한 영화 들과 1998년 국내 극장가를 강타했던 '여고괴담' 등과 같은 공포물은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보곤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쓸데없는 잔인함' 때문이다. 사람의 몸을 어떻게 하면 가학적으로 학대할 수 있는지 연구하는 사람들마냥 2000년대 들어 해마다 단골손님처럼 찾아왔던 한국 슬래셔 공포영화 들은 말만 들어도 불쾌함을 안겨주었던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들이 거슬려서 아예 포스터조차 보기 싫었던 기억이 난다.

 

헐리웃 공포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가장 불쾌감을 안겨주는 시리즈물로는 포스터부터 어느 정도 잔인해볼까 하고 관객들과 내기를 거는 듯한 거슬리는 포스터의 '쏘우'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개인적인 취향과 그다지 코드가 맞지 않는 공포물은 늘 여름 시즌만 되면 단골손님처럼 찾아왔지만 영화 관람 필수 목록 리스트에서는 언제나 열외였다. 그런데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어떤 한국영화 소개를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이라이트를 보는 동안 뼛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묘한 공포감과 흥미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혹시라도 가혹하리만치 잔인한 장면이 나오더라도 눈 질끈 감고 극장에서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바로 영화 '숨바꼭질'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는 바로 차별화된 소재이다. 가장 안전한 곳으로 여겨졌던 내 집에 누군가가 몰래 들어와 살고 있다는 오싹한 설정. 그리고 몰래 들어와 살고 있는 장본인은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까지 모두 훤히 꿰뚫고 있다는 설정은 마음 속 깊이 자리한 안전함의 마지노선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어릴 적 입양되었지만 부모님의 모든 유산을 물려 받을 수 있었던 중산층 가장 성수(손현주)는 일산의 반듯하게 지어진 아파트에서 와이프 민지(전미선)와 아들 호세, 딸 수아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멀쩡해 보이는 듯한 가장 성수에게는 결벽증이 트라우마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자신이 운영하는 커피숍에 놓여진 컵의 정렬 상태서부터 집안에서 어린 자녀들이 철없이 식탁 위에 쏟아놓는 반찬들을 보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은 성수의 과거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그의 결벽증이 비롯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성수가 입양된 집에 함께 살았던 형의 존재였다. 어려서부터 얼굴에 괴이한 피부질환을 앓고 있던 형의 존재가 자신에게 늘 걸림돌처럼 여겨졌던 성수의 과거가 한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영화의 전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형의 실종사실을 듣게 되고 찾아갔던 집은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였던 허름하고 철거가 임박해 있는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를 찾아간 성수네 가족은 우연히 만난 주희(문정희)와 그의 딸 평화를 만나게 된다. 주희는 성수의 형 이야기를 듣는 순간 기겁을 하면서 자신의 집에 잠시 초대했던 성수네 가족을 밖으로 쫓아낸다.

 

그 후부터 성수의 집에는 누군가가 계속해서 넘보려 들고 성수의 결벽증세와 어릴 적 트라우마의 악몽은 성수의 숨통을 죄여온다.

 

영화의 전개는 상당히 스릴감이 넘친다. 물론 보면서 이해가 안갈 정도로 안전 불감증세를 보이는 성수의 가족들의 대응자세가 답답함(?)을 안겨준다. 대낮에 헬멧을 쓰고 다니는 이상한 사내(? - 영화를 보면 그 정체를 알게 될 것임)가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는 데도 좀처럼 임기응변을 발휘하지 못하는 민지(전미선)와 딸은 천연덕스럽게 정체불명의 헬멧괴한에게 자신의 집이 어디인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딸의 보안 불감증은 도어락 비밀번호까지 고스란히 괴한에게 알려주는 촌극을 연출한다.

 

영화의 전개상 허점이 드러나는데도 영화 '숨바꼭질'은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위층에 숨어 있다가 성수의 집으로 괴한이 진입을 시도하는 장면은 소름을 돋게 한다. 이번 작품을 통해 데뷔한 허정 감독의 연출력이 상당히 돋보이는데 허점이 노출되는 이야기 전개 구조를 스릴감 넘치는 분위기 조성과 장면 연출을 통해 커버한다.

 

주연배우 손현주, 전미선, 문정희의 뛰어난 연기력도 영화를 더욱 탄탄하게 받쳐준다. 특히 문정희의 소름 돋는 연기는 압권이다.

 

대한민국에서 집이 갖는 비중과 존재감은 마치 신분계급을 규정짓는 요소로까지 비약된다. 내 집에 대한 처절한 집착이 숨바꼭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데, 점점 치솟는 집값으로 인해 좀처럼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가 점점 버거워지는 대한민국의 씁쓸한 현실이 영화 '숨바꼭질'을 통해 투영된다.

 

이 영화를 배급한 NEW는 그야말로 '진격의 2013년'을 보내고 있다. '7번방의 선물'(1281만명), '신세계'(468만명), '몽타주'(209만명) 등을 통해 상반기 대박을 터뜨린데 이어 블록버스터들이 득세한 여름 시즌에도 '감시자들'(550만명), '숨바꼭질'(444만명) 등의 독특한 소재를 지닌 영화 등을 앞세워 연일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우선 NEW가 올해 배급한 영화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독특한 소재 또는 탄탄한 연출력이 뒷받침한 영화들이란 것이다. 그리고 예고편을 통해 관객들의 관심을 건드리는데 가장 탁월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사실 올 여름 흥행시장에서 주목 받았던 한국 영화는 '미스터 고'와 '설국열차'라는 거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들이었는데 그 틈바구니 속에서 독특한 소재와 충실한 기획으로 무장한 '감시자들', '숨바꼭질' 등을 통해 NEW는 올 여름 흥행전쟁에서 사실상 승자로 등극하고 있다.

 

앞으로 영화사 NEW의 진격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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