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새로운 발견 '더 테러 라이브'

2013. 8. 4. 11:43Entertainment BB/movie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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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공간에서 풍기는 긴박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인공의 사투를 통해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던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꼽는다면 1988년 개봉했던 '다이하드' (브루스 윌리스 주연)였다. 테러범이 요구한 조건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위협 속에 주인공들이 사투를 벌이면서 스릴과 긴박감을 선사하면서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했던 헐리웃 블록버스트 영화로는 1994년에 개봉했던 '스피드'(키에누 리브스 주연)를 떠올릴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헐리웃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다이하드'의 고립되고 밀폐된 공간에서 느껴지는 공포와 스릴, 그리고 '스피드'에서 느낄 수 있었던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테러범의 위협에 맞서야 하는 긴박감을 한 번에 담은 한국영화가 새로 선보였다. 최근 들어 100억 이상 투입한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연달아 선을 보이는 가운데 두 가지 유형의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의 특징을 모두 담은 이 영화가 투입한 제작비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35억원이다.

 

불과 35억원의 제작비로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졸이게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바로 '더 테러 라이브'이다. 영화 제목에 삽입된 '테러'와 '라이브'라는 단어가 결합하며 묘한 긴장감을 풍기게 하는데 바로 영화를 보는 모두가 2001년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발생했던 9.11 테러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뉴스 전문 채널에 의해 생중계되었던 테러에 의해 뉴욕 한복판에 우뚝선 세계 무역센터가 무너지는 장면은 모두에게 경악과 공포를 심어주었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우리 주변에 있는 공간에 누군가가 테러를 자행하고 그 테러를 자행한 장본인과 생방송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하정우)간의 인터뷰 형태로 극이 전개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마포대교 테러 장면은 영화 분량의 1/3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떤 폭파장면이나 액션이 없어도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과 공포를 전달한다.

 

'더 테러 라이브'는 테러범에 맞서 직접 맞장 뜨는 대통령의 모험담(에어포스 원)을 다루는 그런 종류의 영화가 아니다. 테러범의 입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약자에 대한 외면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앵커 윤영화와 방송국 부장, 그리고 청와대는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속물근성과 이기심으로 들어차 있는 군상들, 그리고 미디어와 정치의 유착을 통해 희생양을 만들어 내는 행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영화 속에 등장한 모든 캐릭터들의 선과 악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이 영화의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이다.

 

 

 

 

영화의 런닝 타임은 1시간 37분인데 특이한 점은 영화 속의 실제 돌아가는 시간과 동일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최초 마포대교가 폭발해서 사건이 종료되는 그 순간까지를 다루고 있어 마치 영화 속에 있는 사건이 실제 현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하고 몰입하게 한다.

 

영화는 상당히 현실적으로 진행되고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과장되지 않게 현실적으로 묘사되는데, 그나마 제일 과장된 캐릭터를 꼽는다면 경찰청장이라 할 수 있다. 방송에 등장하여 테러 전담 수사관(전혜진)이 극구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테러범을 향해 자수하라고 위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테러범이 사전에 설치해 놓은 폭탄에 봉변을 당하게 된다. 경찰청장은 줄기차게 정의를 내세우지만 정작 테러범이 경찰청장의 비리혐의를 거론하자 짐짓 당황하며 머뭇거리지만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테러범을 압박하려 든다. 경찰청장 캐릭터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비리 혐의를 인정하려 들지도 않고 오히려 더욱 권위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정관계 인사들의 모습을 경찰청장 캐릭터를 위해 풍자하고 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경찰청장의 닫힌 귀를 향해 테러범은 정면으로 비수를 꽂게 된다.

 

경찰청장이 테러를 당하는 장면에서 테러범에 대한 분노보다는 오히려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게 된다. 이게 바로 '더 테러 라이브'가 전달하는 매력의 핵심이다. 이 영화의 90% 이상을 이끄는 메인 캐릭터인 앵커 윤영화(하정우)도 결코 선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한 때 국민앵커로 각광을 받았으나 불미스런 비리 혐의에 휘말리면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밀려나게 된다. 그런데 청취자를 가장한 테러범의 협박을 받게 되고, 대수롭지 않은 장난전화로 취급한 그는 테러범을 향해 조롱을 던지다가 결국 방송국 뒤편의 마포대교가 폭파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 순간 윤영화의 선택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먼저 특종을 캐치하는 것이었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상관(이경영)에게 전달하여 자신들이 출세할 수 있는 특종을 잡았노라고 꼬득였고, 윤영화는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공공의 안전보다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테러범과의 생방송 인터뷰를 감행한 윤영화의 선택은 서서히 자신의 목을 죄여오는 부메랑으로 작용하게 된다.

 

역시 자신의 출세에만 안달이 나있던 윤영화의 상관 차대은(이경영)은 윤영화의 이혼한 부인이 같은 방송국 기자가 사고 현장에 나가 있다는 사실마저 숨기고 또한 자신의 지시를 어긴 방송을 하는 윤영화의 과거 비리를 다른 방송국에 넘기는 등, 오로지 시청률 목표와 자신의 안위에만 집착하는 치졸함과 비열함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윤영화(하정우)는 생방송에서 테러범이 원하는 요구조건이 대통령의 사과를 줄기차게 요구하면서 나름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의로운 모습을 보이는 듯 하지만 실상은 그의 귀에 달려 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모하게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 것이었다.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대통령은 아수라장이 된 방송국 스튜디오의 깨진 스크린 속에 얼굴이 가려진 채 육성만 드러낸다. 우리 사회에 참다운 리더를 발견하기 어려운 우리 시대의 일그러지 자화상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인상깊은 장면 중의 하나였다.

 

97분의 러닝 타임 동안 스펙타클한 액션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 긴박감과 스릴을 전달하는 '더 테러 라이브'는 올해 한국영화의 참신한 발견으로 각광받을 만 한다. 이 영화의 90% 이상의 분량을 맡으며 홀로 영화를 이끌다시피 하는 하정우의 연기력은 그가 왜 진정한 충무로의 대세인지를 확실하게 입증시켜 준다. 이 영화를 연출한 33세의 김병우 감독은 다음 연출작이 기대되게 만드는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였다.

 

100억 이상의 요란한 제작비를 들이지 않고도 촘촘하게 짜여진 스토리와 구성, 그리고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력과 이를 잘 살려내는 연출을 통해 그 이상의 스펙터클과 긴장감을 선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 '더 테러 라이브'는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위한 해답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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