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에 너무 치중하다 스토리를 잃어버린 영화 '미스터 고'

2013. 7. 27. 00:15Entertainment BB/movie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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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데뷔작부터 흥행 제조기로 명성을 떨친 감독들을 꼽는다면 지난 해 '도둑들'로 대한민국 박스오피스 역사를 새롭게 쓴 최동훈 감독과 단 세 편의 영화로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줄 아는 흔치 않은 감독으로 자신을 각인시킨 김용화 감독이 있다.

 

2003년 '오 브라더스', 2006년 '미녀는 괴로워', 2009년 '국가대표' 등으로 흥행 3연타석 홈런을 날린 김용화 감독은 독특한 소재를 차용하면서도 그 이면에 감춰진 마이너들의 애환을 감칠맛나게 유머를 곁들여 포장하고 가슴 저린 감동까지 전달하는 장기를 선보였다.

 

또한 김용화 감독은 독특한 소재 만큼이나 볼거리도 제공하여 화제를 일으켰는데, 2006년 '미녀는 괴로워'에서는 김아중에게 뚱녀 분장을 시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시키는가 하면, 2009년 '국가대표'에서는 스키점프 장면을 마치 실제 경기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실감나게 연출하면서 영화의 몰입도와 흥미를 높여 주었다.

 

하지만 이 두 작품들의 가장 큰 매력은 독특한 볼거리보다는 차별과 설움 속에 살아야 했던 마이너들(뚱보, 어느 국적에도 소속될 수 없는 입양아, 비인기 종목의 설움 등)의 애환을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그려내면서 웃음과 공감, 그리고 감동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특히 2009년 개봉했던 '국가대표'는 당시 지명도가 A급 배우에 속하지 않았던 하정우, 김지석, 김동욱, 성동일 등의 배우를 기용하여 전국 관객 800만명을 넘기는 기염을 토하였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 '해운대'는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 등 올스타 캐스팅을 자랑했는데 초호화 캐스팅의 '해운대'와 더불어 '국가대표'는 2009년 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었다.

 

'국가대표'이후 4년 만에 김용화 감독이 들고나온 신작은 기존의 작품들이 차용했던 독특한 소재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훨씬 더 강도높은(?)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바로 '야구하는 고릴라'에 대한 이야기 '미스터 고'이다. 1980년대 중반 만화 전문잡지 '보물섬'에 연재되었던 허영만의 만화 '제7구단'에서 모티브를 따온 '미스터 고'는 개봉 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바로 영화의 중심소재이자 주인공인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을 순수 국산 기술에 의해 연출한 것이다. 해외 업체에 의뢰해 링링을 제작하려 했으나 높은 비용 부담으로 인해 포기하고, 아예 김용화 감독이 덱스터 필름이라는 특수효과 전문 제작회사를 차리고 순수 국산 기술로 링링을 구현하게 된다.

 

국내에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이 당찬 시도는 김용화 감독에 의해 새로운 진일보를 맞게 된다. 순수 국산 기술로 구현된 고릴라 링링은 털 한올한올이 마치 실제 살아있는 느낌을 전달한다. 헐리우드 피터 잭슨 감독이 연출한 킹콩에 전혀 뒤쳐지지 않는 완벽한 구현이었다.

 

야구장을 자연스럽게 누비는 고릴라의 모습이 마치 실제 야구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하지만 이 실감나는 특수효과 및 연출은 거기까지이다. 가뜩이나 현실감이 떨어지는 소재에 개연성이 떨어지는 스토리는 영화의 몰입을 철처히 차단한다.

 

고릴라가 야구한다는 설정부터가 황당하지만 더욱 황당한 것은 그라운드에서 멀쩡하게 야구해야 할 야구 선수들마저 마치 고릴라가 외줄타기 하듯 황당한 재주넘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병살타를 처리하는 과정을 마치 야수들이 서커스에서 재주넘기를 하는 듯 보여주는 장면은 아무리 중국, 동남아 등 해외를 겨냥한 영화라고 하지만 지나칠 정도의 비약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고릴라 링링과 그를 조련하는 웨이웨이(서교)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지나치게 작위적인 행동으로 일관하여 영화에 몰입을 아예 앞장서서 막는 느낌이다. 한창 어려 보이는 구단 단장(김강우)하고 거의 친구처럼 지내는 전혀 품격이 느껴지지 않는 KBO 총재(김응수) 캐릭터라든지, 라이벌 구단에 고릴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무릎까지 꿇는 일본 야구단 구단주의 모습은 어이없는 탄식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중국 영화사에서 일정 비용을 투자한 영화이다 보니 일본인 캐릭터들을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려고 한 것인지는 몰라도 어처구니 없는 설정은 가뜩이나 비현실적인 영화를 더욱 비현실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다.

 

 

 

야구하는 고릴라를 소재로 다루고 있어 화제를 모으는데 성공했지만 정작 쓸 이야기는 상당히 부족해 보이는 느낌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었다. 웨이웨이(서교)와 성충수(성동일)의 감정 변화도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고 이전 김용화 감독의 영화에서 봐왔던 훈훈한 감동은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 국내 영화 사상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기 위한 김용화 감독의 용기에 성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하지만 김용화 감독은 국내 관객의 보는 눈을 너무 경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중국이나 동남아 관객들의 정서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후 택한 전략이라면 그나마 납득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관객들의 정서에 영화 '미스터 고'는 한참 비껴나 있다. 관객들의 보는 눈은 냉정하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게 되었다. "김용화 감독은 굳이 왜 고릴라를 선택해야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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