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16. 09:21ㆍSports BB/야구라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6월 15일, 주말을 맞이하여 4개 구장에는 7만 6천여명의 관중들이 운집하였다. 오후 5시에 경기를 시작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폭풍 더위이지만 야구팬들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리그 경쟁을 직접 관전하기 위해 몸소 야구장을 찾았다.
정규리그 2위 넥센 히어로즈와 3위 LG 트윈스가 맞붙은 잠실구장에도 23,812명의 관중들이 야구장을 찾아왔다. 양팀은 각각 외국인 에이스 투수인 브랜든 나이트(넥센)와 레다메스 리즈(LG)를 선발 투수로 내세웠다. 5연패 늪에 빠진 히어로즈는 연패를 끊고 분위기 반전을 위해 나이트의 활약이 절실했고, 트윈스는 최근 7연속 위닝시리즈의 상승세 및 2위 히어로즈 추격을 위해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경기는 양팀의 절실함을 반영한 듯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양팀 투수들은 위기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정교한 코너워크로 병살타를 유도하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경기는 어느 덧 5회말 트윈스 공격에 접어 들었고 0-0 팽팽한 명품 투수전의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처럼 보였다.
LG 트윈스는 5회말 공격에서 1사 만루의 절호의 찬스를 잡게 된다. 하지만 히어로즈 선발투수 나이트는 김용의를 얕은 외야 플라이로 잡아내고 후속타자 박용택을 맞이한다. 2사 만루의 상황. 트윈스로서는 점수를 뽑지 못하면 히어로즈에게 경기 흐름을 내줄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고, 히어로즈는 위기를 넘기게 되면 반격의 흐름을 가져올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박용택의 타구는 3유간을 가를 것 같은 날카로운 안타성 타구였다. 그러나 히어로즈 3루수 김민성은 다이빙 캐치로 타구를 걷어내고 곧바로 2루로 송구하였다. 모두들 히어로즈가 긴박한 위기상황을 넘기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고, 1루측 트윈스 응원석에서는 아쉬움의 탄성이 나올 찰나였다. 그러나 모두들 아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상황에, 단 한 사람만이 세이프라 생각하고 있었다. 트윈스 응원석에 앉아있던 팬도 아니고, 트윈스 덕아웃에 있던 트윈스 선수, 코칭스태프도 아니고, 하물며 경기를 중계하던 방송국 관계자들도 아니었다. 경기의 모든 것을 판정하는 심판, 그 중에서도 2루심을 맡은 박근영 심판이었다.
박근영 심판의 양팔이 펴지는 순간, 히어로즈 야수들은 어안이 벙벙해졌고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 생각한 히어로즈 투수 나이트는 순식간에 헐크로 돌변하였다. 중계 방송 화면을 봐도 명백한 아웃이었고, 바로 앞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박근영 심판이 착시를 일으킬 만한 상황도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박근영 심판은 세이프를 선언하였다.
최근 김병현 투수의 징계로 인해 KBO 심판진과 가능하면 마찰을 일으키고 싶어하지 않았던 염경엽 감독은 더 이상 항변하지 못하고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평정심을 잃어버린 브랜든 나이트는 전혀 다른 투수가 되어 있었다. 6월 15일 잠실구장 경기는 5회말 2사 만루에서 박근영 심판의 판정 이후 사실상 종료되고 말았다. 선수들간의 치열한 수 싸움이나 허슬 플레이가 아닌 심판의 인위적인 판정에 의해 경기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경기로 변질되었고, 주말을 맞아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명품 경기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은 23,812명의 관중들은 5이닝 야구경기만 관람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후 각종 포털 사이트, KBO 게시판은 박근영 심판의 이름으로 도배되고 말았다. 이승엽의 국내 통산 홈런 신기록, 복귀한 에이스 손민한의 역투, 이병규의 만루홈런 등은 박근영 심판의 이름에 묻히고 말았다. 프로야구 31년 역사상 경기에 대한 복기 과정에서 선수들의 이름보다 심판의 이름이 압도적으로 팬들의 관심 속에 자리한 것은 2013년 6월 15일이 처음일 것이다.
심판의 권위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일까. 정답은 너무도 뻔하다. 공정한 판정과 룰 적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심판도 물론 사람이다. 하지만 오심에 대해, 특히 경기의 흐름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오심에 대해 심판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사과를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희미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한 투수의 퍼펙트 게임을 오심으로 인해 송두리째 날려버린 심판이 이후 눈물을 흘리면서 해당 투수에게 진심을 담은 사과를 했고, 이 장면은 야구팬들에게 또 다른 스토리텔링을 안겨 주었다.
과연 박근영 심판과, 심판위원회, KBO가 어떤 대응을 보여줄지 미지수이다. 프로농구의 사례를 거론해보자. 프로농구의 인기는 1990년대 중,후반 농구대잔치 시절의 영광은 온데간데 없고, 후발주자인 프로배구에게 조차 인기를 추월당하고 있다. 프로농구 인기추락의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극에 달한 심판에 대한 불신도 한 몫하고 있다. 걸핏하면 감독들과 심판의 추잡한 신경전이 반복되고 관중들의 피로감은 누적된다. 그렇다고 프로농구 심판들이 자기계발에 얼마나 정성을 다하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매년 똑같은 형태의 오심을 반복한다. '오심 트라우마'에 걸린 각 구단 감독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팀에 불이익이 간다 여겨지면 양복을 벗고 심판과 한 판 붙을 채비를 갖추고 있다.
반면 프로배구는 제한적이지만 비디오 판독을 도입해서 오심을 최소화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설령 심판의 판정이 틀린 것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심판의 권위는 그대로 유지된다. 왜냐 심판도 사람인 것을 모두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테니스에서도 4대 메이저 대회(호주, 프랑스, 윔블던, US)에서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어 오심으로 인한 폐해를 최소한 줄이기 위해 기술의 힘을 빌리고 있다.
선수들의 체격조건 및 기술이 발전하면서 배구나 테니스의 서브나 스파이크, 각종 샷들의 속도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결국 오심의 경우의 수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술의 힘을 빌려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게 되었다.
야구의 경우 배구나 테니스에 비해 오심의 경우의 수가 이전에 비해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중계기술의 발달은 이전에 현장에서 놓치기 쉬웠던 장면들을 잡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팬들의 야구를 보는 눈이 진화하고 있다. 더 이상 2만명 이상의 관중들 앞에서 심판들이 의도하지 않은(?) 거짓말로 인해 관중들과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이 상처를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오심은 한 순간이지만, 상처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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