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를린'이 웰메이드 블록버스터인 이유, '마이웨이'와의 비교

2013. 3. 2. 13:35Entertainment BB/movie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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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극장가에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블록버스터 대작 '베를린'은 1월 30일 개봉 이후 7일 만에 관객 300만명을 돌파하면서 1,000만 관객 고지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이 영화를 배급한 CJ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해 10월 '광해 - 왕이 된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지난 해 연말에 개봉한 '타워'도 500만명을 넘어서는 선전을 보였다. 그리고 '베를린'도 설 연휴 기간 동안 흥행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 배급사들 중 가장 많은 수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선보이는 CJ는 지난 해 이맘 때는 야심차게 내밀었던 블록버스터 대작이 흥행에서 참패를 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마이더스의 손'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장동건, 오다기리 죠, 판빙빙 등 한,중,일 올스타 출연진을 자랑했던 전쟁 대서사시 '마이웨이'가 기대와는 달리 200만명을 겨우 넘어서는 관객을 동원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긴 것이다. 강제규 감독과 장동건이라는 크레딧이 무색하리 만치 '마이웨이'의 성적표는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1,000만명이 모여야 손익 분기점에 도달할 거라던 '마이웨이'는 관객들의 처절한 외면을 받았다.

 

반면에 올해 개봉한 '베를린'은 류승완 감독의 연출력이 한층 원숙해지고, 주연배우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 등의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으면서 흥행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같은 배급사가 제공하고 막강한 크레딧과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 '마이웨이'와 '베를린'의 차이점을 살펴본다.

 

 

1. 개연성

 

영화 '마이웨이'는 2005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서 방영된 주목 받은 조선인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한 연합군에 의해 포로로 잡힌 독일군 병사들 속에서 발견된 조선인은 조선, 몽골, 소련, 독일을 거쳐 노르망디까지 끌려오게 된 믿을 수 없는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접한 강제규 감독은 영화 속에 갖가지 살을 붙여 영화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막대한 스케일의 블록버스터를 감당할 만한 스토리의 개연성이 터무니없이 부족하였다.

 

일단 주인공이 강제로 징집되기 직전 조선인 마라토너로서 일제 치하 식민지의 설움을 안고 살던 모든 조선인들의 우상이었다는 설정 자체가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더 황당했던 것은 라이벌로 함께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일본인 마라토너 또한 2차 대전에 장교로 참전한다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역사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일제 치하 속에서의 조선인 마라토너는 손기정옹이다. 머릿 속에 남아 있는 역사에 비추어 볼때 영화 '마이웨이' 속의 조선인 마라토너 김준식의 캐릭터는 아예 시작부터가 이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개연성의 허점은 마치 부실공사로 여기저기 구멍이 송송 뚫린 집을 연상케 한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중국 여배우 판빙빙의 캐릭터는 도대체 왜 나왔는지 납득이 안되고, 언제부터 김준식에게 정이 들었는지, 김준식이 폭격기의 포격 세례를 뚫고 특유의 뜀박질을 발휘하는 와중에 등장하여 김준식을 대신해 장렬하게 전사한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비약은 영화 종반부에 일어난다. 평생 원수처럼 지낼 것 같이 보이던 일본인 장교(오다기리 죠)와 김준식(장동건)이 마침내 우정을 격렬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우정을 느낄 만한 사건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촬영장에서 죽도록 고생을 하면서 두 사람은 영화 밖에서 우정을 쌓았을 것이다. 장대한 마무리와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감동의 여지를 제공하기 위해 강제규 감독은 서둘러서 두 사람의 진한 우정을 보여준다. 전혀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마치 육상선수 칼 루이스의 멀리뛰기 실력이 연상되는 비약이었다. 오히려 김준식 보다는 러시아 장교 안톤으로 변신하는 종대(김인권)의 캐릭터가 훨씬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영화 '베를린'은 북한의 김정일 사후 북한 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 및 음모를 주된 갈등의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상당히 시의적절한 소재 선택이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북한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고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게 만드는 소재이다. 그럴 싸한 소재와 그럴 싸한 인물들, 그럴 싸한 갈등들이 한데 엮어 '베를린'의 오감을 자극시키는 첩보액션 스릴이 탄생하였다.

 

또한 남한 국정원 요원으로 등장하는 정진수의 존재도 의미 심장하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80년대의 남북관계에 비해 경직된 부분이 많이 풀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진수는 여전히 북한 첩보원들을 세상에서 가장 경멸스런 '빨갱이'로 여기고 있으며, 운전할 때조차 좌회전 하는 것을 거부할 만큼 북한에 대한 강렬한 반감을 지니고 있다. 정진수의 그러한 외골수 기질은 결국 남한 정보기관 내부에서조차 그의 출세를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현실성이 넘치는 캐릭터들의 등장은 영화의 개연성을 한층 높여주고, 긴장감을 선사한다.

 

2. 감독의 고집

 

영화 '마이웨이'를 연출한 강제규 감독과 '베를린'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 모두 뚜렷한 연출관과 표현양식을 지니고 있다. 1996년 '은행나무 침대', 1999년 '쉬리', 20004년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한 단계 진화시킨 강제규 감독은 '마이웨이'에서도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고집한다.

 

방대한 스케일의 전쟁장면은 공들여 촬영한 흔적이 역력히 드러난다. 하지만 문제는 강제규 감독의 전장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방대한 스케일의 처절함이 느껴지는 전쟁장면을 관객들이 이미 접했다는 것이다. 마치 2차 대전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박력있고 현실감 넘치는 전쟁 장면은 돋보이지만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관객들은 피로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영화 '베를린'에서도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 콤비 특유의 질펀한 액션장면이 등장한다.하지만 류승완 감독의 전작들과는 차별화된 격투씬과 와이어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긴박감 넘치는 액션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한눈을 팔 여지를 주지 않는다. '베를린'의 액션을 두고 헐리웃 블록버스터 '본' 시리즈와 비교하는 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본' 시리즈의 답습을 넘어 자신의 색깔이 최대한 반영된 진화된 액션씬을 창조하였다.

 

두 작품 모두 감독의 성향과 고집이 반영된 공들인 액션장면이 키 포인트로 작용한다. 하지만 답습과 진화 여기에서 '마이웨이'와 '베를린'의 차별화가 드러난다.

 

3. 캐릭터 몰입도

 

영화 '마이웨이'의 중심축이 되는 조선인 김준식(장동건)과 일본인 타츠오(오다기리 조)는 참혹한 전쟁을 겪으면서도 좀처럼 외모의 팽팽함을 잃지 않는 '모태 꽃미남' 들이었다. 조선에서 시작하여 소련, 독일, 노르망디를 거치면서도 그들의 모습은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겪다 온 모습이라기 보다는 이제 막 헬스클럽에서 화끈하게 운동하고 샤워를 하고 나온 듯한 느낌이 더 강하게 풍겼다. 특히 노르망디 전투를 앞두고 축구를 하는 모습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강제규 감독은 장동건과 원빈을 전면에 내세운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두 배우를 철저하게 전쟁의 광기에 몰입시키게 한다. 워낙에 잘 생긴 외모의 배우들이 망가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극 중 배역에 철저하게 몰입하다 보니 관객들의 심금을 더 자극시킬 수 밖에 없었고, 두 배우의 꽃미남 외모가 전혀 거슬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이웨이'에서는 좀처럼 배우들이 캐릭터에 동화되지 못하고 겉돌면서 보는 내내 영화와 배우들의 캐릭터가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영화 '베를린'에서는 배우들의 북한 사투리 논란이 다소 일기도 했지만 배우들 모두 자신이 맡은 배역에 완전히 몰입된 모습이었다. 특히 극중에서 북한 고스트 첩보요원 표종성(하정우)의 아내이자 북한 대사관 통역원인 연정희 역할을 맡은 전지현은 당을 위해 자신을 내던져야 하는 수모를 겪고, 스파이로 의심받는 위기에 처하지만 끝까지 내적인 강인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화장을 전혀하지 않고 머리를 넘긴 수수한 모습이 오히려 더 강한 세련미를 풍기고 연정희라는 캐릭터를 좀 더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북한 첩보요원 표종성 역할을 맡은 하정우는 '베를린'에서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아크로바틱 액션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자신의 아내 연정희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못내 드러내지 못하는 무뚝뚝한 연기는 표종성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남한 국정원 요원 정진수 역할을 맡은 한석규 또한 조직 내에서 한물 간 퇴물로 취급받지만 끝까지 자신의 일을 위해 목숨을 마다하지 않는 위험에 뛰어드는 모습을 통해 요즘 시대의 위기의 중년남성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영화 '베를린'은 근래에 선을 보인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선보이고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긴박감을 던져주고 냉정한 현실 속에서 살아 남으려는 개인의 처절한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날씨가 입춘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드문 혹한 현상을 보이다보니 관객들이 따뜻한 유머와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를 찾는 모습을 보이는 듯 싶다. 하지만 '베를린'은 국내 블록버스터 영화의 수준을 한단계 높여준 수작임이 분명하고, 기존 남북을 소재로 한 영화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의미깊은 영화이다.

 

캐릭터들의 동선과 감정의 변화, 그리고 헐리웃 블록버스터를 능가하는 액션씬의 완성도에 초점을 맞추고 본다면 '베를린'은 한 번 더 보고 싶어지는 매력이 넘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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