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존 맥클레인, It's time to say goodbye to Die Hard.

2013. 3. 2. 13:41Entertainment BB/movie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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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기억 속에 1988년은 각별하다. 우선 중학생이 되었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민족 최대 행사인 1988 서울올림픽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부모님 보호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종로, 을지로, 충무로 일대의 영화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1988년을 가장 특별한 해로 기억에 남게 만든 것은 영화 '다이하드'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울 올림픽 최고의 하이라이트 였던 남자 육상 100m 칼 루이스와 벤 존슨의 세기의 맞대결이 펼쳐지던 1988년 9월 24일 토요일에 단성사에서 개봉한 '다이하드'는 워낙 올림픽 열기가 거세던 탓에 개봉 당시에는 소리 소문 없이 상영되었다. 필자는 친구들과 함께 10월 중간고사가 끝나고 단성사에 '다이하드'를 보러 갔다. 평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 몰려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종로 3가 지하철역에 자리 잡은 분식집에서 500원짜리 장터국수를 먹은 후 단성사에 영화를 보러 들어 갔더니 거의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단성사의 1000여석은 가득 들어찼다. 영화를 보기 전만 해도 어떤 영화인지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친구들 중의 한 명이 영화를 꽤 많이 보고 정보가 풍부했는데, 그 친구 말로는 한국에 비유하자면 코미디언 이주일이 액션 영화 한 편 찍은거라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서 액션 코미디물로 생각했다.

 

영화가 끝난 후 영화를 보면서 이토록 온몸에 전율이 돋고 흐뭇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극장 안에서 관객들의 자발적인 박수가 두 차례나 나왔다. 영화 속 주인공 형사 존 맥클레인으로 등장한 브루스 윌리스는 그 당시 봐왔던 모든 액션 영화 캐릭터의 공식을 뒤엎었다. 근엄한 표정으로 무게를 잡고 피 한방울 날 것 같지 않은 냉철함과 좀처럼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람보', '코만도'류의 액션 스타들에 익숙했던 그 당시, 브루스 윌리스의 존 맥클레인은 인간적인 캐릭터였다.

 

그도 희노애락을 분출할 줄 알고 극한 상황에서 고통을 느끼고 견뎌낸다. 하지만 생명이 위협을 당하는 순간에도 존 맥클레인은 특유의 재치와 유머감각을 놓치지 않는다. 초고층 나카토미 빌딩에 잠입한 12명의 전문 테러리스트들과 한 판 사투를 펼치는 맥클레인 형사의 무용담은 관객들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단순한 액션 뿐만 아니라 탐욕에 눈이 먼 기자에게 강펀치를 날리는 맥클레인 여사, 맥클레인 부부가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테러범에게 생명을 위협당할 순간에 놓였을 때 자신의 총기 트라우마를 이겨내면서 맥클레인 부부를 구해내는 흑인경찰의 모습 등은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전달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죽도록 고생한 맥클레인 부부가 마침내 안도의 키스를 나누는 순간 흘러나오던 그 유명한 캐럴송 'Let it snow'는 이후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되었다. '다이하드'는 이후 모든 액션영화의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었다.

 

1편의 대성공에 힘입어 '다이하드' 시리즈는 1990년 2편, 1995년 3편이 제작되면서 새로운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되었다. 2편에서는 새로운 테러 일당들과 한판 사투를 펼치고, 3편에서는 1편에서 나카토미 빌딩에서 생을 마감한 한스 그루버(알란 릭맨)의 동생 사이먼 그루버(제레미 아이언스)가 등장하여 뉴욕 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다이하드'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주인공 존 맥클레인 역할을 맡은 브루스 윌리스의 머리숱은 점점 줄어들고 배는 점점 평행선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존 맥클레인의 가정은 파탄(?)나기 시작한다. 3편에서는 존 맥클레인 부부가 서로 별거중인 것으로 처리되고 4편부터는 맥클레인의 딸, 5편에서는 맥클레인의 아들들이 등장하지만 홀리 맥클레인의 존재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1995년 3편이 개봉된 이후 무려 12년이 지난 2007년 다이하드 4편이 '다이하드 4.0' (원제 : Live Free or Die Hard)라는 제목으로 선을 보이고, 변화한 시대에 걸맞게 최첨단 하이테크 액션들이 스크린을 가득 수놓는다. 하지만 변화한 시대에 맞춘 액션을 선보이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지나치게 스케일에 치중한 나머지 현실성을 놓아버린 액션은 기존 다이하드 시리즈가 보유하고 있던 '보는 이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액션'이라는 매력을 반감시키고 말았다.

 

이후 6년이 지난 올해 다이하드 시리즈가 다시 개봉된다는 것을 지나가다가 포스터를 통해 알게 되었다. 벌써 다섯 번째 다이하드 시리즈가 나오게 된 것이다. 도대체 이번에는 어떤 내용으로 선을 보일지 궁금했는데, 아예 무대를 미국이 아닌 러시아 모스크바로 옮겨서 한판 승부를 펼치게 된 '다이하드 굿데이 투 다이'를 복기해본다.

 

 

우선 영화 보는 동안 강렬한 사운드와 마찰음이 시종 일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요란하였다. 일단 존 맥클레인이 왜 모스크바에 가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아들이 있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모스크바에서 존 맥클레인은 아들을 찾으면 되고, 사건의 중심 소재가 되는 러시아 일당들과의 맞대결을 펼치면 된다. 영화 초반 도입부부터 화끈한 차량 추격전이 펼쳐진다. 공들여 찍은 흔적이 역력했고 기존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스케일의 차량 추격전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 내용보다는 마치 차량 추격전 장면을 위해 찍은 것처럼 보여질 정도로 지루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기존의 '다이하드' 시리즈의 장점은 액션보다는 스토리 전개와 곳곳에서 배어나오는 재치와 유머가 차별화 포인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다이하드 굿데이 투 다이'는 스토리 보다는 오로지 액션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 전개되는 모습이다. 물론 영화 곳곳에 존 맥클레인 나름의 유머를 부각하려 하지만 이전의 '다이하드' 시리즈에서 봐왔던 재치나 해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케일은 커졌지만 과연 이 영화가 '다이하드' 시리즈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영화를 연출한 존 무어 감독의 이전 작품 제목 '맥스 페인(Max Payne)'을 잠시 빌려와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을 얘기하자면 지나치게 액션의 강도와 스케일에 집착한 나머지 피로로 인한 극도의 고통(Max Pain)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25년전에 느꼈던 그 짜릿함과 희열은 추억 속에 박제시켜둬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다이하드'라는 브랜드가 스케일이라는 미명 하에 망가지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존 맥클레인은 25년 간의 뉴욕경찰 생활을 청산하고 은퇴를 고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It's time to say goodbye to Die 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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