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에게 필요한 것은 '치유의 리더십'

2014. 10. 26. 21:19Sports BB/야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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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일주일 사이에 프로야구 사상 유례가 없는 일들이 KIA 타이거즈에 두 차례나 일어났다. 첫 번째는 3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감독에게 재계약을 선사한 것, 두 번째는 재계약에 성공하고도 감독이 결국 스스로 물러난 사건이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발생한 뉴스들은 포스트시즌이 한창인 프로야구에 가장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큰 화제와 더불어 KIA 타이거즈는 팬들에게 신뢰도 잃고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 레전드도 잃게 되었다. 선동열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 중의 한 명이었고, 타이거즈 프랜차이즈에서는 전설적인 존재였다. 구단 입장에서는 어떻게해서든 선동열 감독에게 명예회복의 기회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선수 관리에서 구단과 선동열 감독은 치명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발단은 아시안게임 대표 선수 발탁 당시 시즌 내내 맹활약을 펼치고도 기회를 얻지 못한 팀 간판 내야수 안치홍이 경찰청 입대를 지원한 것이었다.

 

이미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아시안게임 내내 같은 소속의 나지완을 둘러싼 병역혜택 논란은 궁긍적으로 안치홍의 심신을 지치게 만들었다. 차라리 더 빠른 시기에 군입대를 해서 홀가분하게 군 복무의무를 해결하고 야구선수로서 전환점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구단과 선동열 감독은 안치홍이 빠질 경우 팀 전력의 약화는 불 보듯이 뻔하기 때문에 이를 만류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선동열 감독이 안치홍에게 '임의탈퇴'를 거론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가뜩이나 좋지 않던 여론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결국 여론의 악화에 심적으로 큰 부담을 느낀 선동열 감독은 스스로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 2012 시즌을 앞두고 팀을 맡게 될 당시 팬들이 보여줬던 최고의 기대감은 불과 세 시즌만에 최악의 실망감과 분노로 급변하였다.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두 차례나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며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고 팀을 투수왕국으로 일궈낸 선동열 감독의 추락은 쉽게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번 실패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더 크게 안게 된 선동열 감독의 재기가 늦어진다면 이는 한국 야구 전체적으로도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선동열 감독이 키워낸 오승환, 안지만, 권혁, 정현욱, 권오준 등의 투수들은 한국 야구 최고 간판 계투요원으로 활약했거나 활약하고 있는 투수들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선동열 감독은 당분간 야구와 거리를 두고 지낼 가능성이 높다.

 

선동열 감독 뿐만 아니라 타이거즈 구단과 선수단도 어수선하고 심적으로 크게 동요되어 있을 것이다. 전력도 불안정한데 선수들의 심적상태도 자연스레 해이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지금의 타이거즈 상황을 보면 1994시즌 당시의 OB 베어스를 연상시킨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윤동균 감독의 강압적인 지도방식에 반발한 박철순, 김형석, 김상호, 장호연, 강영수 등의 고참 선수들 주도로 주축 선수들이 숙소를 이탈하는 항명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결국 구단은 윤동균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하고 주축 선수들도 징계를 받고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연속경기 출장 기록을 이어가던 김형석도 더 이상 기록행진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프로야구 원년 세대로서는 처음으로 감독을 맡으며 하위권에 머물던 팀을 1993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지도력을 인정받았던 베어스 프랜차이즈 출신 윤동균 감독은 이 사건으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팀을 떠나게 되었다. 팀의 분위기가 극도로 어수선해진 베어스는 과연 구단 운영이 제대로 지속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던 최악의 분위기에 쳐해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1995년 베어스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1982년 원년 이후 13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1995시즌부터 팀의 지휘봉을 잡은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처받은 팀을 빠른 시간에 치유시키고 기존 노장 선수들의 잠재력도 새롭게 일깨우고 (김상호는 프로 생활 최초로 홈런왕과 정규시즌 MVP에 등극하며 인생시즌을 보냈고, 박철순은 3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9승을 거두면서 팀 투수진의 주축으로 활약하는 한편 13년만에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고 우승을 다시 경험하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얻게 되었다.) 또한 진필중, 심정수, 정수근 등 신인선수들을 과감하게 중용하여 향후 이들이 베어스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김인식 감독은 2003시즌까지 베어스 감독으로 부임하는 동안 1995년, 2001년 두 차례나 팀을 정상에 올려 놓았고 중고참 선수들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신인 선수들을 발탁하고 중용하는 부분에서 탁월한 촉을 발휘했다. 그리고 2005시즌부터 2009시즌까지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재임하는 동안,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시즌 연속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고, 2006년에는 팀을 한국시리즈에까지 올려 놓았다. 그리고 류현진이라는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만한 투수를 키워냈다. 용도 폐기 직전에 처하던 문동환을 부활시켜 류현진과 원투펀치로 활약하게 팀 전력을 일구기도 했다. 물론 이글스 감독 재임기간 동안 지나치게 중고참 선수 재활용에 치중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이글스는 신인 지명에서도 가장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제대로 된 2군 전용 훈련장조차 없었던 팜 시스템의 암흑기였다. 서산 2군 전용 훈련장이 지난 해에서야 개관한 상황에서 당시 신인 육성에 부진한 것을 두고 김인식 감독에게 모든 비난을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제 타이거즈 구단 수뇌부들도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타이거즈의 전통과 영광을 어떤 방향으로 부활시킬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단순히 프랜차이즈 스타들에게 의존하는 방법이 아닌 어떤 리더십으로 접근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 전성기 시절과 지금 야구와 선수들의 문화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이다. 단순하게 억압이 지배하는 수직구조의 문화로는 모든 것이 커버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다만 적당한 긴장감이 늘 존재할 수 있는 문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의 타이거즈는 소통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투지에서도 긴장감이 결여되어 보인다.

 

팀을 12년 만에 우승으로 이끈 조범현 감독은 정통 타이거즈 맨이 아니었다. 하지만 재임기간 동안 선수 육성 측면에서 탁월한 성과를 일구어냈다. 선수 육성과 치유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감독이 지금 타이거즈에게 필요하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김인식 감독은 타이거즈에게 가장 적합한 지도자이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해태 타이거즈 수석코치를 역임하면서 타이거즈 전성기를 경험했었고 숱한 지도자 생활을 통해 전력을 일구어낸 풍부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선수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스타일인 그는 덕장의 이미지가 강하다.

 

현재 통산 980승을 기록한 김인식 감독은 현역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늘 표명하였다. 강한 동기부여가 되어 있는 김인식 감독에게 지금의 타이거즈는 최선의 궁합을 일구어낼 기회가 많다. 팀의 사기와 질서를 동시에 구축할 수 있는, 노련함과 치유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김인식 감독은 지금 타이거즈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옵션이라 여겨진다. 타이거즈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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