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16. 08:44ㆍSports BB/축구라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맞아 각 지상파 방송국 간의 시청률 경쟁이 치열하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 당시는 SBS가 독점 중계권을 가져가면서 어쩔 수 없이(?) 한 방송국의 중계방송만을 접해야 했다. (수준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남아공 월드컵 이전만 하더라도 SBS의 축구 중계 수준은 당시 선두를 달리던 MBC나 전통적인 스포츠 중계 포맷을 보유한 KBS에 비하면 조악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2007 아시안컵 당시 SBS의 한 베테랑 아나운서는 중계 도중 담배를 피우는 혐의(?)가 적발되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SBS는 MBC 월드컵 중계 시청률 1위 등극의 결정적 역할을 맡았던 차범근 해설위원을 전격 영입하며 전열을 가다듬었고,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기존 아나운서들을 제치고 당시로선 스포츠 중계에서 신인이나 다름 없었던 배성재 아나운서를 발굴하는 수확을 거두었다.
2012 런던 올림픽을 통해 배성재-차범근 콤비는 축구 중계의 새로운 흥행 보증수표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8년 만에 지상파 3사 공동중계 체제로 바뀐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 3사는 시청률 선두 확보를 위해 치열한 중계진 편성 전쟁을 펼쳤다.
우선 SBS는 기존 배성재-차범근 콤비 외에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부자 중계'로 인기를 모은 차두리를 전격 영입했으며, 월드컵 개막을 바로 앞두고서는 레전드 박지성을 객원 해설위원으로 영입하여 초호화 진용을 구축하였다. 이외에 축구 전문 중계를 담당한 조민호 아나운서, 박문성, 장지현 해설위원, 그리고 김일중 아나운서와 케이블에서 야구 중계로 인기를 모은 정우영 아나운서까지 중계진에 포함시키면서 외관상으로 볼 때 가장 탄탄한 라인업을 구축하였다.
2012 런던 올림픽 당시 파업에 따른 핵심인력의 강제 보직이동 및 자격미달의 인원들을 중계진에 포함시키면서 체면을 구겼던 MBC는 자사 예능 프로그램을 부활시킨 프로그램 일밤 '아빠, 어디가'의 인기 여세를 몰아 스포츠 중계에까지 이식시키는 시도를 단행하였다. 독일 월드컵 당시 프리랜서 전향의 발판을 마련했던 김성주 아나운서를 친정으로 복귀시키고 '아빠, 어디가' 인기몰이의 주역이자 2002 월드컵 핵심멤버였던 송종국, 안정환 더블 해설 체제로 포진시키면서 이슈 몰이에 성공하였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안정환은 예상 밖의 입담을 과시하면서 일약 이번 월드컵 중계 경쟁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KBS의 경우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가장 많은 내홍을 겪어야만 했다. 시청률 경쟁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전현무 아나운서를 복귀시키려는 무리수를 두려다가 퇴사한지 2년이 지나야만 자사 프로그램으로 복귀시킬 수 있다는 내부 규정 및 사내 간부급 아나운서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그 과정에서 실력있는 중견 아나운서들이 자신의 주 보직과 관계없는 보직으로 발령되는 자중지란이 벌어졌다. 결국 전현무 영입은 수포로 돌아갔고 (전현무 본인도 고사했지만), 고민 끝에 KBS는 스마트한 센스가 돋보이는 조우종 아나운서를 메인 캐스터로 선정하였다. 해설은 박지성과 더불어 대한민국 축구를 이끌었던 또 하나의 레전드 이영표를 영입했고, MBC의 안정환의 인기몰이에 맞서 개막을 며칠 앞두고 입심 좋은 김남일을 추가로 영입하였다. 기존의 최승돈, 이재후 아나운서, 이용수, 한준희 해설위원도 중계진에 포함되면서 전열을 정비하였다.
하지만 KBS의 경우 길환영 사장 해임안을 두고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는 등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두고서도 내부 갈등으로 인해 월드컵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길환영 사장 해임안이 이사회 상정 통과 및 대통령 재가로 마무리되면서 KBS는 뒤늦게나마 월드컵 중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월드컵을 앞두고 시청률 경쟁에서 전문성이 돋보이는 SBS 중계진과 대중적인 인기를 앞세운 MBC 중계진과의 1위 다툼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 외의 결과가 펼쳐지고 있다. (이것은 필자 개인적인 주관에 근거한 것이다.) 6월 15일 일요일 오전 10시에 펼쳐진 코트디부아르와 일본의 예선 C조 예선 경기에 지상파 3사는 메인 중계진을 대거 투입하며 시청률 경쟁을 펼쳤다.
중계진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이는 다름아닌 KBS 이영표 해설위원이었다. 경기를 앞둔 승부 및 스코어 예상에서 이 날의 빅매치였던 이탈리아 - 잉글랜드 경기와 코트디부아르 - 일본 경기의 예상 승부 및 스코어를 정확하게 맞추면서 작두의 신에 등극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작두만 올라탄 것이 아니었다. 경기 전체의 흐름을 짚어내는 면에서 이영표 위원은 탁월한 촉을 발휘하였다. 특히나 후반전 15분을 앞두고 10분 이내에 코트디부아르가 골을 넣어야만 경기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고, 일본의 경우 후반 25분에서 30분 시점에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는데 이 예상은 모두 기가 막히게 적중하였다.
1-0으로 끌려다니던 코트디부아르는 후반 16분 간판 공격수 드로그바를 투입하면서 경기 흐름을 역전시켰고 후반 19분과 21분 연거푸 일본 골망을 흔들면서 역전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전반전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일본의 공격은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전반에 비해 선수들의 몸놀림이 눈에 띄게 무거워졌고, 결국 일본은 이렇다할 찬스를 잡지 못한 채 허망하게 역전패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영표 위원은 경기 흐름을 상세하게 짚어낼 뿐더러 자신의 현역시절 경험담을 구수하게 잘 활용하기도 했는데, 특히 토트넘 시절 첼시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하던 드로그바를 막기 위해 선수들이 10분을 더 추가로 미팅을 가졌던 에피소드, 드로그바와 볼 경합을 하려면 워낙 거대한 체구 탓에 드로그바의 옆구리 사이로 공의 위치를 확인해야 했던 에피소드 등. 남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드로그바라는 공격수의 위력을 더욱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각국 선수들에 대해 사전에 충분한 자료수집과 연구가 뒷받침이 된 듯, 이영표 위원은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고 명확한 톤으로 각국 선수들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고 자신의 현역시절 경험담도 곳곳에 적절하게 잘 가미시켰다. 특히나 경기의 흐름을 보는 눈은 향후 지도자로서도 충분히 대성할 가능성이 엿보임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함께 중계를 진행하는 조우종 아나운서도 일반적으로 역대 KBS 스포츠 중계진들이 풍기던 딱딱한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중간중간 이영표 위원과 함께 재치있는 멘트로 웃음을 선사하는 등 처음 맡은 메인 중계치고는 성공적으로 중계를 소화해내고 있다.
심심치 않게 이변이 속출하고 있는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간의 시청률 경쟁에서도 당초 예상을 깨고 이영표 해설위원의 약진이 돋보이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중계 전쟁이 더욱 흥미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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