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케로니 트라우마'를 더욱 진하게 남겨준 한일전

2013. 7. 28. 23:10Sports BB/축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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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동아시안 컵 대회에서 홍명보호의 가장 큰 목적은 아마도 동아시안컵 우승보다도 일본전에서 승리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2010년 당시 동아시안컵에서 중국에 충격적인 0-3 완패를 당했던 허정무호는 마지막 일본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내주고도 이동국의 페널티킥 동점골, 이승렬의 역전골, 그리고 김재성의 그림같은 쐐기골에 힘입어 통쾌한 3-1 승리를 거두었고, 분노한 민심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었다. 반면에 의욕적으로 스페인식 축구를 표방했던 조광래 감독은 2011년 8월 삿포로에서 일본에 악몽같은 0-3 참패를 당하였고, 결국 조광래호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고 말았다.

 

그만큼 한일전의 비중은 중요하다. 비단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일본도 한일전 참패의 후유증을 겪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1997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 당시 대한민국에 도쿄대첩 패배(1-2)를 당한 가모슈 당시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이 중간에 경질된 것이다.

 

이번 동아시안컵을 앞두고 홍명보호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히 드높았다. 비록 유럽파는 배제한 국내파 위주로 구성되었지만 그 동안 대표팀에서 홍명보 감독이 보여줬던 지도력, 그리고 런던 올림픽에서 거두었던 짜릿한 성과에 대한 좋은 추억이 홍명보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키워 주었다. 이번 동아시안컵 대회 첫 경기인 호주와의 경기에서 비록 0-0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홍명보호가 보여준 경기력은 최강희호가 안겨준 실망감을 상쇄할 수 있는 충분한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중국전에서 주전 9명을 교체하는 보기 드문 실험을 구사하면서 0-0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다소 실망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한일전을 대비한 홍명보 감독의 포석으로 애써 자위하는 여론이 훨씬 지배적이었다. 마침내 7월 28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모처럼 한일전 A매치가 펼쳐졌다. 2000년 4월 한일 정기전 이후 13년 만에 펼쳐지는 잠실 주경기장 한일전이었다. 2003년 한일 정기전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은 홈에서 펼쳐진 일본과의 A매치에서 무득점 행진을 지속하고 있었다. 홍명보 감독으로서는 한일전 무득점 징크스, 대표팀 감독 데뷔 이후 첫 골 및 첫 승을 거둬야 하는 짐을 짊어지고 경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이 넘어서야 할 징크스는 또 있었다. 바로 '자케로니 트라우마'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종료된 후 오카다 감독의 뒤를 이어 일본 대표팀을 이끌게 된 이탈리아 출신의 명장 자케로니 감독은 일본 축구를 더욱 빠르고 세밀하게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대한민국 축구를 강력하게 위협하기 시작했다.

 

2011년 아시안컵 4강에서 자케로니 일본과 첫 번째 맞대결을 펼친 대한민국 대표팀은 기분좋은 페널티킥 선제골을 넣었지만 시종일관 일본의 빠른 역습과 세밀한 패스에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연장전 후반 황재원의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가져갈 수 있었으며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고배를 들고 말았다.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에는 박지성과 이영표가 모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케로니 일본을 압도하는데 실패하였다.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2010년 두 차례나 일본을 제압했던 당시와 비교해 볼때 일본축구는 무섭게 업그레이드 되었다. 자케로니 일본은 급속도로 견고해지고 있었다.

 

2010년 아시안컵 이후 7개월 만에 펼쳐진 삿포로에서의 맞대결에서 박지성과 이영표가 빠진 대한민국 대표팀은 시종 일관 일본에 끌려다니다 3-0의 굴욕적인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야심차게 스페인식 축구를 추구하던 조광래호가 결정적인 암초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었다. 삿포로 대참사 이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연일 삐그덕 거렸다. 축구협회는 조광래 감독 흔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결국 월드컵 예선전에서 레바논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이후 조광래 감독은 불명예 퇴진을 당하고 말았다.

 

축구협회의 선택은 K리그에서 전북 돌풍을 일으키던 최강희 감독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최강희 감독 본인이 국가대표 감독직에 그다지 미련이 없다는 것이었다. 최강희 감독은 본인이 월드컵 최종예선 때까지만 감독을 맡겠다는 사상 초유의 시한부 감독을 선언하면서 대표팀을 이끌었고, 대표팀의 경기 스타일은 난데 없이 스트라이커 김신욱의 머리와 이동국의 발만 줄기차게 지향하는 뻥 축구로 돌변하고 말았다. 반면에 자케로니 일본은 끊임없는 담금질을 거듭했고, 대한민국 대표팀이 중동 팀들에게 수난을 당하는 동안 일찌감치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고, 미리 겪어보는 월드컵인 컨페더레이션스 컵에 출전하여 브라질, 이탈리아, 멕시코 등 돈주고도 평가전을 치르기 어려운 A급 팀들을 상대로 월드컵 예행연습을 치루었다.

 

이번 동아시안컵을 앞두고 자케로니 감독은 J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렸다. 사실상 1.5~2군에 해당하는 전력이었다. 홍명보 감독도 K리그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렸으나 본인이 런던 올림픽 시절 발탁했던 멤버들을 대거 중용하였기 때문에 자케로니 일본보다는 조직력 면에서 더 견고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대한민국은 일본을 상대로 짧고 세밀한 패스로 줄기차게 일본 골문을 공략하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방이 부족하였다. 오히려 웅크리고 있던 일본은 순간의 역습 기회를 활용하여 선취골을 뽑아내며 대한민국을 당황시킨다. 대한민국은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전진했고 결국 전반 33분 윤일록의 그림같은 감아차기 슛으로 동점에 성공한다. 홍명보호의 첫 골이었고, 10년간 이어지던 A매치 홈경기 일본전 무득점 징크스에서 탈출하는 통쾌한 한 방이었다.

 

이후 대한민국은 줄기차게 일본을 압박했고, 일본은 좀처럼 미드필더 앞으로 전진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은 경기의 균형을 좀처럼 깨뜨리지 못하였다. 후반전에 접어들면서 대한민국은 60분이 지나면서 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모습을 노출하였고, 일본은 서서히 찬스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홍명보 감독은 김동섭과 이승기 대신 조영철과 고무열을 차례로 투입하면서 다시 공격진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후반전 막판에는 장신 김신욱을 투입하면서 골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출하였다. 하지만 인저리 타임에 일본에게 역습을 허용하면서 카키타니에게 또 다시 골을 내주고 만다. 후끈 달아오르던 잠실 주경기장이 일순간에 급랭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선수시절부터 감독 시절까지 일본에게 단 한 차례만 제외하고 승리를 내주지 않았던 홍명보 감독의 기분좋은 징크스도 자케로니 감독의 벽에 막히고 말았다. 순수 국내파 위주로 팀을 꾸린 맞대결에서도 자케로니 감독은 또 다시 한일전 승리를 챙기면서 명실상부한 한국 킬러로 자리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으로서는 '자케로니 트라우마'만 더욱 진하게 각인하게 되었다.

 

7월 28일 경기의 패배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한일 축구의 현주소를 확연하게 보여준 한판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축구가 얼마나 견고해지고 한 번 주어진 찬스는 절대 놓치지 않는 강팀 축구로 변모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2010년 이후 대한축구협회는 오만의 늪에 빠진 이후 그 후유증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웃 일본은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한민국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해외파 감독을 선택하여 그들의 축구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여전히 세계 축구와 확연한 수준차이가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대한축구협회가 보여준 처사는 실로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자케로니 못지 않은 명장을 영입하여 대한민국 축구의 기초 체력을 강화시켰다면 최근 들어 반복되고 있는 축구 A매치 스트레스도 한결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나간 일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제 홍명보 감독이 1년의 시간 동안 팀을 잘 추스러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이번 동아시안 컵 대회를 통해 대한민국 축구협회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언론들도 허무맹랑한 기대감과 환상으로 가득찬 기사로 설레발을 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동아시안컵 대회 단독 중계권을 확보한 jtbc의 형편없는 중계 기술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부담스럽게 선수들의 모습이나 감독의 모습을 클로즈업 시키면서 한시라도 더 보고 싶은 경기장면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했고, 중계하는 캐스터와 해설자들이 화면을 보면서 소리를 치지만 정작 화면은 다른 화면을 보여주고 있는 아마추어적인 모습도 빈번했다. 또한 중국전이 끝나고 홍명보 감독을 인터뷰했던 여자 아나운서는 함량 미달의 인터뷰 기술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 중계를 맡은 임경진 아나운서의 감정적인 중계진행도 상당히 거슬렸다. 생동감 넘치는 중계에다 가끔씩 위트 넘치는 유머로 보는 이들을 즐겁게 만드는 배성재 아나운서의 중계방송 노하우를 전수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jtbc는 WBC에 이어 동아시안컵 단독 중계를 통해 인지도를 단기간에 상승시키고자 하는 야망(?)을 품었을 것이다. 두 대회 모두 개최 직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과 축구 대표팀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충분히 거둘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만만한(?) 대회였고, jtbc는 재빠르게 단독 중계권을 확보하여 막대한 광고수익과 인지도 상승을 꾀하였다. 하지만 두 대회 모두 재앙과 같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처참한 결과 뿐만 아니라 매끄럽지 못한 중계방송 진행으로 인해 스트레스 지수가 더욱 상승하고 말았다.

 

앞으로는 제대로 노하우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대중들의 선택권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청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조악한 중계방송 진행과 기술을 겪어야만 하고 실망스런 결과에 더욱 속이 상하게 되었다. 스포츠 중계방송이 타 공중파 방송에서 진행한 경력이 있는 아나운서 앉혀다 놓고 몇 몇 스타 플레이어 출신 해설자들 앉혀 놓으면 만사 해결될거란 안이한 생각은 버렸으면 한다. 시청자들은 좀 더 고급스런 스포츠 중계방송을 시청할 권리가 있다. 한 종편 방송사의 약삭빠른 욕심에 의해 고품질 중계방송 시청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이 더 이상 펼쳐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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