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31. 10:24ㆍSports BB/야구라
10년의 세월 동안 단 한 차례도 가을 유광점퍼를 입어보지 못한 LG 트윈스 타자들의 헬맷은 올 시즌을 맞이하여 새롭게 맞춘 듯 반짝거리는 유광이 돋보였고, 매끈한 느낌을 안겨 주었다. 문학구장에서 펼쳐진 SK 와이번스와 LG 트윈스의 개막전 라인업에는 새로운 이름이 유난히 많이 선을 보였다. 와이번스는 선두타자와 3번 타자 자리에 이명기와 한동민이라는 신진급 선수를 배치하였고, 트윈스 또한 1루수에 문선재,좌익수에 정주현 등 그 동안 출장 기회가 적었던 신진급 선수들을 개막전 스타팅 라인업에 올렸다.
외국인 투수의 맞대결로 펼쳐진 이 날 경기에서 국내 팬들에게 첫 선을 보인 와이번스 선발 조조 레이예스는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좌완 선발투수로 활약했던 데이빗 웰스를 연상시키는 우람한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150km대의 직구가 인상적이었다. 몸은 거구였지만 타고난 유연함을 바탕으로 부드러운 투구폼을 선보였다. 또한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피칭에 트윈스 타자들은 타석에서 더 이상 루상으로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2회말 조인성의 선제 적시타로 리드를 잡은 와이번스는 레이예스의 뛰어난 호투에 힘입어 5회말이 끝나고 클리닝 타임이 시작되기 이전까지 1-0의 리드를 유지하고 있었다. 레이예스는 공격적인 피칭으로 효율적으로 투구수까지 관리하며 서서히 완봉승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주었다.
그러나 클리닝 타임 시간 동안 그라운드 정비가 잘못되었던 탓일까. 6회초 레이예스는 처음으로 트윈스 타자에게 진루를 허용한다. 트윈스 선두타자 문선재의 타구는 유격수 박진만 앞으로 흘러가는 평범한 땅볼이었지만 베테랑 유격수 박진만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것을 국내 정규시즌 마운드에 처음 올라선 이방인 동료에게 몸소 보여주고 싶었는지 바운드를 잘못 맞추는 어처구니 없는 실책으로 주자를 내보낸다.
이어 트윈스는 와이번스 배터리의 허를 찌르는 도루 작전을 감행하여 안타 없이 무사 2루 찬스를 만든다. 김기태 감독은 확실한 동점 찬스를 얻기 위해 현재윤에게 보내기 번트를 지시했고, 현재윤은 착실하게 작전을 수행한다. 이 날 경기에서 처음으로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레이예스는 미세한 흔들림을 보이기 시작한다. 후속타자 정주현은 배트를 짧게 쥐고 1루수 쪽으로 향하는 강습타구를 쳤고, 와이번스 1루수 한동민은 빠른 연결동작으로 곧바로 홈송구를 감행한다. 타이밍 상으로는 아웃이었지만 한동민의 송구가 다소 높게 가는 바람에 3루 주자 문선재의 발이 홈베이스에 먼저 닿으면서 트윈스는 안타 한 개 없이 동점을 만들어낸다.
문선재는 신인급 선수답지 않은 과감한 주루 플레이로 동점을 이끌어내면서 팀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6회초 트윈스가 문선재, 정주현 등 이른바 '김기태 키즈'들에 의해 점수를 이끌어냈다면, 6회말에서는 와이번스 '이만수 키즈'들의 반격이 이어졌다. 선두타자 이명기가 중전안타로 출루하고 이어 1사 후 3번 한동민은 자신이 노리던 공과 다른 구질의 공이 들어오면서 자세가 흐트러졌지만 기가 막힌 배트 컨트롤로 균형을 깨는 2루타를 터뜨린다. 펜스까지 흐르는 타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홈까지 여유있게 들어온 이명기의 LTE급 주루능력과 기가 막힌 배트 컨트롤로 타점을 이끌어낸 한동민의 공격력은 두산 베어스의 대표적인 '김경문 키즈'들인 이종욱과 김현수를 연상하게 하였다.
트윈스는 7회 2사 후 정의윤의 좌전안타로 다시 동점을 만들어내는 집요함을 보인다. 그러나 와이번스도 가만히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7회말 공격에서는 이만수 감독의 '신의 한 수'가 빛을 발하였다. 1사 1루 상황에서 이만수 감독은 임훈 타석에 대타로 1군 경험이 한 번도 없었던 조성우를 대타로 내세웠는데, 조성우는 트윈스 투수 이상열을 상대로 좌측 담장을 넘기는 역전 투런홈런을 작렬한다. 1군 무대 첫 타석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홈런을 터뜨린 조성우는 올 시즌 와이번스의 새로운 '이만수 키즈'로 눈도장을 확실히 찍게 된다.
그러나 와이번스는 확실히 쐐기를 박을 수 있었던 1사 만루 찬스에서 최정이 구원 등판한 유원상의 초구를 공략했으나 병살타로 물러나면서 찜찜한 뒷맛을 남기면서 공격을 마감한다. 그 찜찜한 뒷맛은 바로 이어진 8회초 트윈스 공격에서 대반전의 단초를 제공한다. 트윈스는 선두타자 현재윤이 우전안타로 출루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잡는다. 1사 2루 상황에서 와이번스 선발투수 레이예스는 오지환에게 몸에 맞는 볼을 내주면서 마운드를 내려가게 된다. 이만수 감독은 이재영을 구원으로 올려 더 이상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이재영 투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격수 자리에 박진만 대신 들어간 최윤석이 대타 이병규의 완벽한 병살 타구를 놓치면서 이닝이 마무리되어야 할 상황이 1사 만루 상황으로 돌변하였다.
감정 기복이 심한 이재영에게 최윤석의 실책은 거대한 지진과 같았다. 평정심을 잃은 이재영은 박용택을 맞이하여 제구력이 급격하게 흔들리더니 결국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한다. 벤치에서 한 번쯤은 끊어주거나 투수 교체를 해야할 상황에서 와이번스 코칭스태프는 이재영에게 신뢰를 주었다. 하지만 이재영의 평정심은 신인이었던 두산 베어스 시절이나 프로 12년차를 맞이한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흔들리던 이재영을 상대로 이전 세 타석에서 연거푸 삼진을 당했던 트윈스 4번타자 정성훈은 기다렸다는 듯 이재영의 직구를 받아쳐 좌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통렬한 역전 만루홈런을 터뜨린다. 와이번스로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등장한 최윤석의 실책과 구원투수 이재영에 대한 지나친 신뢰가 결과적으로 재앙을 자초하고 말았다.
경기 내내 코너에 몰렸던 트윈스는 한 번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집중력을 선보인다. 트윈스 김기태 감독은 8회부터 정현욱을 올려 필승조 자물쇠 가동에 들어간다. 8회 정현욱, 9회 봉중근이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마무리 해주면서 트윈스는 시즌 개막전을 기분좋은 역전승으로 장식한다. 단 4개의 안타로 7점을 뽑은 타선의 집중력도 돋보였을 뿐만 아니라 유원상, 정현욱, 봉중근으로 이어지는 필승 계투조 라인이 원하는 대로 작동되었음을 확인한 것도 소득이었다. 선발투수 리즈의 호투도 올 시즌 활약을 기대하게 할 만 하였는데, 무엇보다도 올 시즌 새롭게 팀에 합류한 포수 현재윤의 영리한 리드가 돋보였다. 김기태 감독은 삼성에서 트레이드 해온 현재윤과 손주인을 선발 포수, 2루수로 출장 시켰는데 두 선수 모두 깔끔한 플레이로 정교한 야구를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트윈스 내야진을 한층 안정시키는데 공헌하였다.
비록 와이번스는 패했지만 선발 투수 레이예스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무엇보다도 '이만수 키즈'들인 이명기, 한동민, 조성우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는 것이 큰 소득이었다.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이렇다할 유망주 발굴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던 이만수 감독은 개막전부터 신진급 선수들을 중용하면서 감독 2년차를 맞이한 올해 본격적인 자기 야구 색깔을 보여줄 것임을 암시했다.
한 번의 찬스를 놓치지 않은 LG 트윈스의 집중력과 '이만수 키즈'로 대표되는 와이번스 영건들의 활약이 돋보였던 문학구장 개막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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