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 02:04ㆍSports BB/야구라
2013 WBC 개막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표팀 구성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가장 큰 우려를 표시하는 부분은 역시 투수진이다.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마운드의 중심을 구축했던 좌완 3인방 류현진(LA 다저스), 김광현(SK 와이번스), 봉중근(LG 트윈스) 이 모두 빠졌기 때문이다. 2000년대 역대 야구 대표팀의 도전사를 보면 좌완 투수들의 활약 덕분에 결정적인 순간에 값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은 개최국 호주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상태에서 '숙명의 라이벌' 일본에게마저 패했다면 예선리그 탈락이 확정되는 최악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경기 초반 선취점을 뽑고도 대한민국은 선발 투수 정민태가 강습타구에 발목을 맞고 강판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 순간 김응용 감독은 구대성을 마운드에 올렸고, 구대성은 대량 실점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 구대성의 진가는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올림픽 내내 구원으로만 투입되던 구대성은 동메달 결정전에 전격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9이닝을 혼자 책임지면서 무려 153개의 공을 던졌고, 일본 타선을 1실점으로 막아내면서 대한민국 야구에 올림픽 사상 첫 동메달의 감격을 선사한다. 구대성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야구의 사상 첫 동메달은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마운드는 성공적인 세대교체의 서막을 열게 된다. 그 중심에는 류현진과 김광현이 자리하고 있었다. 2006년과 2007년에 프로에 입단한 류현진과 김광현은 마치 프로 10년차 이상의 노련한 투수들을 연상케 하는 경기운영과 강력한 구위를 앞세워 쿠바, 일본 등의 야구 강국의 콧대를 완벽하게 제압하였다. 류현진과 김광현 좌완 원투펀치가 가장 찬란하게 빛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야구는 9전 전승 금메달의 신화를 일구게 된다.
2009 WBC에서는 대회 초반 대한민국은 속된 말로 '멘붕' 상태에 빠졌었다. 일본과의 1라운드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일본킬러로 명성을 떨치던 김광현을 선발로 내세웠으나 이미 일본 전력분석원에게 철저히 간파된 김광현은 경기 초반 무너졌고, 그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14-2 콜드게임의 수모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이틀 뒤에 다시 승자결승전에서 일본과 만난 대한민국은 1-0의 짜릿한 설욕승을 거둔다. 그 중심에는 봉중근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전에 선발 등판한 봉중근은 5.1이닝 동안 일본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하면서 승리의 발판을 놓는다. 이후 봉중근은 미국에서 펼쳐진 2라운드에서 또 다시 일본 타선을 무실점으로 봉쇄하면서 새로운 일본킬러로 등극했고, 안중근 의사와 이름이 같은 덕분에 '봉의사', '봉열사'라는 새로운 애칭을 얻게 된다. 봉중근은 2009 WBC에서 류현진, 김광현을 넘어서서 새로운 에이스로 등극하게 되는데 대회 개막 전만 하더라도 아무도 예상치 못한 대활약이었다. 바로 직전에 펼쳐진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봉중근은 대만전 선발로 등판했지만 기대 만큼의 구위를 선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2009 WBC에서 그가 보여준 활약은 '유쾌한 반전'이었다.
이처럼 역대 대한민국 대표팀의 도전사에서 좌완투수들의 활약은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했고, 대표팀 경쟁력의 핵심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 대표팀에 승선한 좌완 선발투수들의 경쟁력이 과연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등에 맞먹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WBC가 터닝 포인트의 장이 될 수도 있다. 4년전 봉중근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 WBC 좌완 선발투수진은 장원삼(삼성 라이온즈)과 장원준(경찰청)이 맡을 전망이다. 이 두 명의 투수들은 어찌보면 동 시대에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등과 같은 특급 좌완 투수들과 함께 활약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빛이 가려진 측면도 있다.
경성대를 졸업하고 2006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 장원삼은 데뷔 첫 해 183.1이닝 12승 10패 평균자책점 2.85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신인왕을 타도 전혀 손색없는 훌륭한 성적이었지만, 그 해 마운드에는 류현진이라는 괴물 신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데뷔 첫 해 사상 최초로 신인왕과 MVP를 거머쥔 류현진의 활약으로 인해 장원삼은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에서 비껴나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장원삼은 2009시즌 잠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2010시즌 삼성으로 이적한 이후 다시 제 기량을 회복했고, 2011 아시아시리즈에서 일본 소프트뱅크와의 결승전에서 위력적인 구위를 선보이면서 활약을 예고했고, 2012시즌 생애 처음으로 다승왕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거둔 승수(17승)에 비해 평균자책점(3.55)이나 투구이닝(155이닝)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고, 이로 인해 그가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승팀 프리미엄이라는 비아냥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이번 WBC는 장원삼이 리그 최고의 좌완투수임을 입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미 2009 WBC와 2011 아시아시리즈를 통해 일본 타자들을 상대한 경험이 있는 만큼 컨디션만 최상을 유지한다면 충분히 활약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생애 처음으로 WBC 대표팀에 승선한 장원준(경찰청)은 봉중근이 부상으로 제외되면서 극적으로 대표팀에 합류한 케이스이다. 하지만 2008시즌이후 경찰청에 입대하기 이전까지 매년 꾸준하게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장원준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거둔 승수는 52승이다. 같은 기간 동안 장원준보다 더 많은 승수를 올린 투수는 한화 이글스의 류현진(54승)밖에 없다. 김광현(SK, 49승)도 윤석민(KIA, 46승)도 장원준보다 많이 승리를 쌓지 못하였다. 이 사실을 아는 팬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장원준은 꾸준함이 돋보인 반면에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심지어는 2009년과 2010년에 새로운 좌완 영건으로 급부상한 양현종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던져주는 임팩트가 부족하여 지명도가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꾸준히 자기 몫을 해주던 좌완 에이스 장원삼과 장원준은 이번 대회를 앞둔 직전 시즌에서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경기운영이나 구위가 절정에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이 없는 대표팀 좌완 마운드에 새로운 희망봉으로 등극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이들의 활약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만년 2인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칭호를 얻게 될 것인가. 3월 20일이 지나면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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