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WBC, 스마트한 투수운용 전략이 필요하다

2013. 3. 2. 01:47Sports BB/야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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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시드니 올림픽 3,4위전, 바로 전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연장 접전 끝에 아쉽게 미국에 결승 티켓을 내준 대한민국 선수단의 피로도는 결승 진출에 실패한 허탈감과 더불어 더 가중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메달을 놓고 맞붙어야 하는 상대는 다름아닌 숙적 일본이었기에 허탈함과 피로를 느끼는 것조차도 사치로 여겨질 수 밖에 없었다. 김응용 감독은 주로 계투 요원으로 활약하던 좌완 구대성을 깜짝 선발투수로 올리는 승부수를 띄운다. 

 

일본은 이미 한국과의 동메달 결정전을 예상하여 에이스 마쓰자카를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김응용 감독은 초반에 일본과의 기싸움에서 밀리면 경기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구대성이라는 강력한 승부수를 던졌다. 구대성은 9회까지 무려 153개의 공을 던지면서 홀로 대한민국의 마운드를 지켰고, 대한민국은 8회말 이승엽의 결정적인 2타점 2루타와 김동주의 적시타를 묶어 3득점, 결국 3-1로 승리를 거머쥐면서 올림픽 야구에서 사상 첫 동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룬다.

 

구대성의 153구 투혼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사상 첫 야구 동메달도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고, 당시 호주전이 끝난 이후 일부 선수들의 카지노 출입을 두고 대표팀의 정신상태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터라 대표팀은 귀국해서도 큰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구대성은 시드니 올림픽을 계기로 이선희, 김기범에 이어 좌완 일본킬러 계보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구대성은 2006 WBC 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마운드에 올라 일본 강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으면서 4강 진출에 큰 공헌을 세운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새로운 좌완 에이스 김광현과 류현진의 활약이 눈부셨다. 김광현은 일본과의 예선전과 4강전에 모두 선발투수로 올라서 쟁쟁한 내공을 자랑하는 일본 타자들을 완벽하게 틀어 막는다. 김광현이 일본전 '맞춤형 킬러'였다면 류현진은 '인터내셔널 킬러'로 명성을 떨쳤다. 캐나다와의 예선전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1-0의 살얼음판 리드를 끝까지 지켜내면서 예선전 최대의 고비를 넘기는데 공헌했고,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는 9회 1사까지 가공할 쿠바 타선을 단 2실점으로 막아내는 호투를 펼치면서 사상 첫 야구 금메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2009 WBC에서는 봉중근이 새로운 좌완 킬러로 부상하게 된다. 일본과의 예선 1차전에서 믿었던 에이스 김광현이 초반에 난타당하면서 무너지는 바람에 대한민국 대표팀의 힘겨운 행보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일본과의 1라운드 최종전에서 선발로 등판한 봉중근이 일본타선을 무실점으로 완벽히 틀어 막으면서 1-0의 짜릿한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봉중근은 일본과의 결정적인 진검승부 때마다 마운드에 올라 일본 타선을 완벽히 요리하면서 2009 WBC 대한민국 최고 스타로 발돋움하고, '봉열사', '봉의사'라는 새로운 애칭도 얻게 된다.

 

 

이처럼 국제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좌완 투수들의 맹활약 덕분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고, 일본, 쿠바, 미국 등 세계 강국과 겨뤄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2006년 이후 혜성처럼 등장한 류현진과 김광현, 그리고 2007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복귀한 봉중근 등은 대한민국 마운드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야구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선전을 통해 대한민국 야구에 대한 세계의 인식도 바뀌었다. 이번 시즌 종료 후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에 참가한 류현진이 역대 4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받고 메이저리그 LA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년에 개최될 2013 WBC를 앞두고 대한민국 마운드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마운드 'Big 3' 라 할 수 있는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이 나란히 불참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봉중근은 이미 어깨 부상으로 불참이 확정되서 같은 좌완투수인 장원준(경찰청)으로 대체되었고, 김광현은 어깨 재활로, 류현진은 새로 메이저리그에 입단하면서 적응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참가가 어려워 보인다.

 

2006, 2009 WBC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인식 감독은 예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과 한국야구의 차이를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가장 쉬운 사례를 들면서 명확한 대답을 해주었다. 일본의 경우 이치로, 마쓰자카, 다르빗슈 등과 같은 A클래스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을 3개에서 4개까지 더 구성할 수 있는 반면, 한국은 A클래스 선수들로 1개 정도의 대표팀을 힘겹게 꾸릴 수 있는 것이 차이라는 것이다. 결국 선수저변의 차이인데, 이번 WBC를 앞두고 일본은 이치로를 비롯해 다르빗슈, 이와쿠마, 구로다, 우에하라 등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대거 불참을 선언하여, 일찌감치 국내파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렸다.

 

하지만 순수 국내파로 구성된 일본 대표팀의 마운드 구성을 보면 여전히 중압감이 느껴지는 수준이다. 대한민국에 전통적으로 강한 면모를 보였던 츠기우치(요미우리)를 비롯, 일본 최고의 에이스로 부상한 다나카 마사히로(라쿠텐), 셋츠 타다시(소프트뱅크), 마에다 켄타(히로시마) 등 여전히 국내 타자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수준급의 에이스들이 자리하고 있다.

 

반면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이 빠져 있는 대한민국 마운드는 다소 허전해 보인다. 그나마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투수들을 꼽는다면 윤석민, 장원삼, 오승환, 정대현 정도이다. 물론 올 시즌을 통해 새롭게 도약한 김진우, 노경은, 박희수, 홍상삼, 유원상 등의 투수들이 그 동안 전력분석에 노출되지 않은 점을 통해 활약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요행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이 없는 상태로 가정하여 전력을 꾸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봉중근의 대체 선수로 장원준을 뽑은 대한민국은 류현진, 김광현의 대체 선수로 차우찬, 권혁 등의 좌완투수들을 고려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가장 아쉬움이 드는 선수는 지난 시즌부터 밸런스가 급격히 무너진 양현종(KIA)이다. 양현종이 2009년 우승 당시의 구위와 제구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대표팀 마운드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차우찬도 지난 시즌까지 2년 연속 두 자리수 승수를 거두면서 신형 좌완에이스로 기대를 모았지만 올 시즌 다소 주춤한 모습이다. 하지만 자신의 구위만 회복한다면 차우찬은 대체 후보 0순위로 고려할 수 있는 기량을 지니고 있다.

 

류중일 감독은 WBC 대회 투구수 한계 규정을 활용하여 스마트한 투수운용 전략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지난 해 한국시리즈에서 활용해서 재미를 보았던 1+1 전략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6회에서 7회 정도까지 선발급 투수 2명으로 마운드를 꾸리고 후반부는 계투요원들을 풀가동하는 전략이다. 어떻게 보면 포스트 류현진, 김광현을 발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야구 열기가 급격히 높아지게 된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2000년대 후반 각종 국제대회에서 선전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WBC에서 4강 진출에 실패한다면 대한민국 야구 열기에 큰 치명상이 될 수도 있다. 2013 WBC는 대한민국 야구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번 아시아시리즈 같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한다면 모처럼 쌓아놓은 야구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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