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도쿄올림픽 야구 대표팀 엔트리에 대한 뒤늦은 가정법

2021. 8. 8. 19:22Sports BB/야구라

728x90
반응형

이미 지난 일을 돌이켜본들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올 수 없다. 하지만 지난 일에 대한 성찰과 복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한 발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금메달의 환희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2020 도쿄올림픽 야구대표팀의 경기들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움을 안겨준 선수를 꼽으라면 누구나 다 이 선수를 꼽을 것이다.

 

본업은 마무리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호출되면서 무려 146개의 공을 던진 조상우(키움, 27세)이다. 조상우는 속된 말로 어깨가 갈리도록 이를 악물고 던졌다. 위기 때면 김경문 감독은 어김없이 조상우를 호출하였다. 대표팀이 이번 대회에서 그나마 타선이 활발하게 터졌던 이스라엘과의 녹아웃 스테이지 경기에서 큰 점수차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상우는 마운드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3점차의 리드를 지키기 위해 믿고 내보낼만한 투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상우의 혹사는 대회 내내 논란이 되었다. 애당초 엔트리를 뽑을 때부터 전략의 방향성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현재 KBO리그에 믿고 내보낼만한 선발투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지하는 사실이다. 김경문 감독도 이 점을 인지하고 투수진을 다양하게 호출하는 전략을 쓰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벌떼 투수진 운용이 아닌 선발투수들을 오히려 더 많이 뽑아서 활용하는 전략을 택하였다. 이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즐겨 사용하여 재미를 봤던 선발투수 요원 2명을 한 경기에 동시 투입하는 1+1 전략이 기본 프레임이었다.

 

하지만 1+1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선발투수진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2010년대 라이온즈 왕조 구축 당시 삼성에는 장원삼, 차우찬, 윤성환 등 리그를 주름잡는 강력한 선발요원들이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1+1 전략이 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경문 감독은 물량작전을 선택했는데 구원 전문 요원들을 더 뽑은 것이 아니라 선발 요원들을 더 뽑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도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윤석민의 성공에 대한 기억을 염두에 둔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윤석민은 스윙맨으로 등판하여 가장 고비가 된 일본과의 조별리그 예선과 준결승 전에서 상대 타선을 봉쇄하면서 승리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런데 윤석민은 당시 선발 뿐만 아니라 구원으로도 많은 경험을 쌓은 상황이었다.

 

그런 혹사가 결국 그의 선수 생명을 빨리 갉아먹는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당시 윤석민은 전천후로 투입될 수 있는 리듬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표팀에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의 윤석민같은 위력적인 구위를 보유한 선발투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김경문 감독은 선발투수들을 최소 3이닝씩 돌리고 나머지 3이닝은 구원 투수들에게 맡기는 전략을 구상하였다.

 

실제 대회가 개막하니 첫 경기 이스라엘 전을 제외하고는 미국 전부터 구원으로 등판한 선발투수 효과가 전혀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다. 최원준, 원태인 등은 선발로만 등판하다가 갑자기 구원으로 등판하면서부터 투구 리듬을 상실하였다. 리듬을 찾지 못하다보니 자신감마저 떨어지는 역효과가 일어났다.

 

결국 구원투수 진으로 과부하가 걸리게 되었고, 조상우의 혹사가 너무도 당연한 일과처럼 일어났다. 심지어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선발투수 김민우가 0.1이닝만 버티고 강판 당하면서 고우석이 2회부터 조기 투입될 수 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KBO리그 국내 투수의 경쟁력은 선발투수보다는 그나마 구원투수 쪽이 양호한 편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현실을 직시하여 대표팀 투수운용 방향을 단기전인만큼 불펜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벌떼 작전으로 구상하고 그만큼 구원 전문 투수들의 비중을 엔트리에서 높이는게 맞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예비엔트리를 시즌 개막 이전인 3월에 발표하는 바람에 정작 올 시즌 개막 후 돌풍을 일으킨 선수들을 선발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올 시즌들어 팀의 주축 계투요원으로 성장한 김대유(LG), 홍건희(두산) 같은 투수들은 아예 대표팀에 발탁할 수 있는 길이 막혔다.

 

만약 예비엔트리를 5월 중순에 발표했다면 가용자원의 폭이 더 넓어지고 가장 최근에 컨디션이 좋은 선수들을 선발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게 된다.

 

예비엔트리 선발을 5월에 했다는 가정하에 대표팀 투수 엔트리를 다음과 같이 구성했다면 어땠을까.

 

한화이글스 강재민

 

1. 도쿄올림픽 실제 엔트리

 

 

2. 도쿄올림픽 가상 엔트리 (구원투수 비중 확대)

 

선발요원은 원태인, 고영표, 김민우, 이의리로 고정하고 기존 최원준, 박세웅, 차우찬, 김진욱 대신에 김대유, 홍건희, 정우영, 강재민 등을 포함시켰다면 가용자원이 훨씬 풍성해졌을 것이다.

 

조상우는 1이닝 마무리로 고정시키고 그 앞에 김대유, 홍건희, 정우영, 고우석(또는 오승환), 강재민 등을 투입하는 전략을 택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 

물론 위에 언급된 선수들이 실제 올림픽에서 잘했으리란 보장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도쿄올림픽 야구 투수 운용을 봤을 때 선발요원들 보다는 당연히 구원 전문 투수들의 비중을 높이는게 훨씬 효율적인 투수진 운영이 가능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템파베이처럼 오프너 선발 전략도 운용 가능했을 것이고 다양한 투수진 투입 시나리오가 가능했을텐데 이번 에 오히려 스스로 가용자원을 제한함으로써 상대에게 수를 너무 쉽게 읽힌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지난 일이다. 그런데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마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부재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이 필요할 것 같다. 앞으로 국제 대회에서 엔트리를 구성할 때 주어진 현실을 냉철히 분석 후 명확한 운영 방향성부터 수립하고 그에 맞춰 선수들을 선발하는 프로세스가 갖춰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더 이상의 참사를 막을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