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5. 22:34ㆍSports BB/야구라
도쿄올림픽 야구 미국과의 패자준결승을 앞두고 김경문 감독은 라인업을 대폭 수정하였다. 타격감을 회복하지 못한 양의지와 오재일 대신 강민호(삼성)를 선발 포수로, 김현수(LG)를 1루로 기용하였다. 그리고 2루에 황재균(kt)대신 김혜성(키움)을 우익수에는 박건우(두산)를 선발 라인업에 올렸다.
라인업 변경의 결과가 과연 경기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선발투수 이의리(KIA)가 어느 정도 버텨줄 것인지가 패자 준결승의 변수였다. 도쿄올림픽 미국과의 패자 준결승 주요 장면들을 복기해본다.
1회~5회: 막내 이의리의 호투에 응답 못한 고구마 타선
대한민국 선발투수 이의리는 자신의 어깨에 팀의 결승 진출 여부가 걸린 부담스러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공을 과감하게 뿌린다. 경기 초반에는 체인지업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았는데 주력하던 이의리는 2회 부터는 몸쪽에 붙이는 145~146km의 직구까지 곁들이고 타자 시선 바로 앞에서 떨어지는 낙차 큰 체인지업으로 탈삼진을 9개나 획득한다. 호투하면서 안정을 찾던 4회 초 2사후 제이미 웨스트브룩에게 초구 홈런을 허용한 것이 유일한 옥의 티였다.
호투하던 이의리는 5회 2사 후 연속안타를 허용하며 2사 1,2루 위기를 허용한다. 강타자 카사스와의 맞대결이 경기 중반 중요한 승부처가 되었고 카사스는 1,2루간 깊은 안타성 타구를 쳤으나 김혜성의 호수비와 이의리의 정확한 베이스 커버가 맞물리면서 대한민국은 위기를 벗어난다. 자칫 전날 준결승에서 고우석의 베이스커버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잠시 감돌았지만 이의리는 침착한 베이스 커버로 스스로 위기를 탈출한다.
이의리는 5이닝 동안 88개의 공을 던지면서 5안타 2실점, 탈삼진 9개의 호투로 자신의 몫을 충분히 완수한다.
4회까지 미국 선발투수 조 라이언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은 5회초 1사 후 허경민(두산)의 몸에 맞는 볼 이후 오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한 김혜성(키움)이 우전안타로 1사 1,3루의 절호의 찬스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신들린 타격감을 선보이고 있는 박해민(삼성)이 좌전안타로 마침내 추격 점수를 획득한다. 미국 벤치는 발빠르게 구원투수 라이더 라이언을 투입한다. 기세를 올릴 수 있는 상황에서 2번 강백호(kt)는 병살타로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아쉬운 장면을 연출한다.
5회초에서도 대한민국 타선은 바뀐 투수 라이언 라이더의 공에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중심타선의 타자들이 삼자범퇴로 맥없이 물러난다. 막내 이의리의 호투에 타자들이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고구마같은 흐름이 계속 이어졌다.
6회~7회: 급격히 기울어진 흐름
6회말부터 대한민국은 사이드암 최원준(두산)을 투입한다. 최원준은 첫 상대한 토드 프레이저와 12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볼넷을 내주면서 무사 1루 위기를 맞는다. 대한민국 벤치는 더 이상 추가점을 내주면 경기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최원준을 차우찬(LG)으로 바로 교체하는 승부수를 띄운다. 차우찬은 에릭 필리아를 삼진으로 잡으면서 원 포인트 구원투수로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다.
차우찬에 이어 원태인(삼성)을 투입했지만 원태인은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웨스트브룩에게 우전안타를 허용하면서 무사 1,3루 위기를 맞이한다. 벤치의 기대와 달리 원태인은 콜로즈배리에게 좌전 적시타를 허용하며 추가점을 내준다. 다시 3-1로 점수차는 2점차로 벌어지고 1사 1,2루 위기 상황이 지속되었다.
후속타자 닉 앨런을 상대하면서도 원태인은 좀처럼 제구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볼넷을 허용하면서 1사 만루의 대량실점 위기가 들이닥치게 된다. 김경문 감독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믿었던 선발요원 최원준, 원태인이 자신의 몫을 전혀 하지 못하면서 결국 구위가 가장 좋은 조상우(키움)를 올릴 수 밖에 없었다.
믿고 내보낼만한 투수가 조상우 밖에 없는 대한민국 야구의 서글픈 현 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연투를 거듭한 조상우도 1사 만루의 상황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초구 체인지업이 상대 타자 잭 로페즈에게 읽히면서 경기는 1-4로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후속 타자 에디 알바레즈의 1루 강습타구를 김현수가 어렵게 막아내면서 타자를 아웃시키고 미국의 리드는 4점차로 벌어지게 된다.
후속타자 타일러 오스틴과 풀 카운트 승부를 펼치면서 고전한 조상우는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내주면서 1-7, 6점차 리드를 허용한다. 경기의 흐름이 6회말에서 급격히 기울어지게 된다. 유일한 믿을맨이었던 조상우도 결국 연투의 후유증을 극복할 수 없었다. 김경문 감독은 김진욱(롯데)을 마운드에 올리고 차세대 유망주의 패기에 조금이나마 남은 기적을 바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김진욱은 첫 상대한 타자 카사스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길고 긴 6회말 수비를 마무리한다.
7회초 대한민국은 바뀐 투수 스캇 맥고우프를 상대로 박건우의 우전안타, 오지환의 중월 2루타로 한 점을 따라 붙는다. 무사 2루의 계속된 찬스에서 허경민은 삼진으로 물러나며 찬스를 살리는데 실패한다. 그러나 좋은 타격감을 선보인 김혜성이 유격수 깊은 쪽 내야안타로 출루하면서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린다.
미국의 마이크 소시아 감독도 과감하게 투수교체를 단행한다. 맥고우프를 내리고 좌완 앤써니 고스를 올린다. 이번 올림픽에서 3.2이닝 무실점 투구를 기록한 고스를 상대로 대한민국 타선은 박해민, 강백호가 연달아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찬스를 그대로 무산시킨다. 6회 2사에 나온 김진욱은 세 명의 타자를 상대하여 삼진 1개 포함, 깔끔하게 범타로 처리하면서 자신의 몫을 해냈다.
7회말 수비에서 2루수 김혜성은 깊숙한 까다로운 타구 2개를 특유의 빠른 스피드를 활용하여 범타 처리하면서 공,수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다.
8회~9회: 기적을 원했지만
8회초 대한민국은 선두 타자 이정후가 볼넷으로 출루하며 마지막 불씨를 되살린다. 그러나 4번 김현수가 병살타로 물러나며 찬스는 무산되었다. 초구를 공략한 강민호의 타구는 3루수 파울 플라이에 그치면서 기대를 모았던 클린업 트리오의 불꽃은 점화되지 않았다.
9회초 마지막 공격, 대한민국은 대타 최주환, 오재일, 양의지를 연달아 투입하면서 마지막 반전을 노렸다. 그러나 최주환과 오재일 모두 삼진으로 허망하게 물러났고 양의지는 투수 앞 직선타로 물러났다.
조별리그 예선에서 미국에 당한 패배를 설욕하는데 실패한 대한민국은 도미니카공화국과 동메달 결정전을 치르게 되었다. 베이징올림픽 영광의 재현을 기대했지만 미국은 이전 대회와 달리 대한민국 전력을 철저히 분석했고, 좀처럼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선발 이의리가 제 몫을 다했지만 기대했던 타선이 전혀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국내파 에이스로 기대를 모은 원태인과 최원준 등이 자기 몫을 하지 못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하였다.
이번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 대표팀의 전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유일한 소득이라면 차세대 에이스로 기대를 모으는 이의리(KIA)와 김진욱(롯데)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그리고 공격진에서는 이정후(키움), 박해민(삼성), 김혜성(키움) 등이 쾌조의 컨디션을 보인 점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대신에 거포 역할을 해줘야 할 강백호, 양의지, 오재일 등은 전혀 자기 몫을 해내지 못하였다.
이정후, 박해민, 김혜성은 전형적인 호타준족 스타일의 플레이어다. 바로 대한민국 야구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유형의 선수들이다. 하지만 KBO리그에서 이런 유형의 야수들은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도루 시도를 꺼려하고 일발 장타로 경기를 풀어가려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세밀한 플레이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찬스에서 클러치 능력을 발휘하는 선수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김현수 정도만이 자기 몫을 해줬을 뿐 이승엽, 이대호, 김동주 등과 같은 클러치 히터는 이번 대표팀에서 자취를 감췄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로 시계를 되돌려보면 결정적인 순간 공격에서 경기 흐름의 반전을 마련했던 선수들은 이종욱(두산), 정근우(SK), 고영민(두산), 이진영(SK) 등과 같은 호타준족 유형이었다. 이번 도쿄올림픽을 통해 대한민국 야구 전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개선의 시도가 필요함이 입증되었다. 물이 서서히 끓어오르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개구리처럼 대한민국 야구는 많이 병들어 있다. 반드시 체질을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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