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원빈을 재구성'하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3. 6. 9. 21:02Entertainment BB/movie talk

728x90
반응형

국내 영화에서 간첩에 대한 새로운 묘사와 접근이 이루어진 영화를 꼽는다면 1999년에 개봉한 장진 감독, 유오성 주연의 영화 '간첩 리철진'이다. 험악하고 이데올로기에 휩싸인 냉혈한 이미지로 묘사된 간첩에 대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오히려 간첩 캐릭터에 대해 동정심마저 갖게 만드는 새로운 접근법은 이후 성공한 남북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적용되기 시작했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 '의형제'는 꽃미남 강동원을 엘리트 공작원으로 내세워 마치 제임스 본드를 연상하게 하는 정교한 액션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인간미까지 가미시켜 관객몰이에 성공하였다.

 

1999년 '쉬리',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 2005년 '웰컴 투 동막골', 2009년 '의형제', 그리고 올해 초 개봉한 '베를린'까지 성공한 남북소재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북한군 또는 간첩 캐릭터에 휴머니티와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 점이다.

 

이번에 새로 개봉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간첩에 대한 새로운 판타지적 재구성 및 접근법을 시도하고 있다. 바로 '꽃미남' 간첩이다. 10대부터 40대까지 고른 연령층에 걸쳐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떠오르는 대세남 김수현을 전면에 내세우고 박기웅, 이현우 등 개성이 넘치고 얼굴도 받쳐주는 조연급 캐릭터들을 모두 간첩으로 등장시킨 이 영화는 이미 원작 웹툰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기에 과연 스크린에 어떤 모습으로 옮겨질지가 관심사였다.

 

스토리나 구성은 기존에 봐왔던 남북 소재 영화들인 '의형제', '베를린' 그리고 심지어는 킬러지만 킬러같지 않게 어리버리한 킬러들을 내세운 영화 '킬러들의 수다'를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스토리나 구성은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 철저하게 인물에 초점을 맞췄고, 그 인물을 어떻게 하면 가장 매력있게 보일 수 있는가에 전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영화의 인물 포커스 전략은 현재 흥행속도로 봐선 대성공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김수현의, 김수현에 의한, 김수현을 위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물론 박기웅, 이현우, 손현주, 김성균, 박혜숙, 홍경인, 장광 등 다른 조연 캐릭터들도 영화의 중심을 잘 받쳐주고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꽃미남 간첩들에 영화의 비중이 기울어져 있다 보니 '연기 대세' 손현주의 비중이나 매력이 크게 살아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영화의 구성을 보면 손현주의 비중이 두드러질만한 요소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 할 수 있다.

 

김수현은 바보 연기서부터 냉철한 간첩 연기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영화의 몰입도를 120% 이상 살려 놓는다. 그의 바보 연기와 간첩 연기는 그의 연기 캐릭터에 멘토가 될 만한 배우 원빈을 담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영화 '마더'에서 보여준 원빈의 바보 연기와 영화 '아저씨'에서 보여준 원빈의 질펀한 액션연기가 모두 혼합되어 제곱으로 승화된 모습이다. 김수현이 없었다면 이 영화의 흥행은 불가능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영화의 마지막 엔딩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지만 한편으론 영화 '의형제'의 쿨한 엔딩으로 마감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어차피 현실과 괴리된 남파 간첩을 판타지적 요소로 끌고 갈거라면 더욱 판타지하게 더욱 쿨하게 가져가는 것도 좋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극장에 몰려든 여성 관객들의 크리넥스 꺼내는 빈도를 급격하게 높인 엔딩씬이 흥행에 더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새로운 문법이나 구조의 부재는 아쉬웠지만 간첩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접근시도가 돋보인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두 마리 토끼보다는 한 마리 토끼에 철저하게 집중해서 좋은 성과를 낳은 사례로 남을 영화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