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 정세균 후보의 예상된 사퇴

2021. 9. 14. 23:06Current Affair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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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9월 13일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당초 경선이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대표 등과 더불어 Big 3로 꼽히기도 했지만 막상 경선이 시작되니 이재명 경기지사, 이낙연 전 대표 등과 현격한 득표율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지난 주 주말에 시작된 국민 선거인단이 참여한 1차 슈퍼위크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마저 밀리면서 4위로 추락한 순간이다.

사실상 반등의 기회를 놓쳤고 정세균 전 국무총리로서는 사퇴 시점을 저울질하는 것만 남았다는 것이 대부분 언론에서 예상했던 부분이다.

지지 정당, 후보 여부를 떠나서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실무형 대통령으로서 충분히 매력있는 후보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에 의해 픽업되어 전북 진안, 무주, 장수 지역구에 출마, 당선하면서 정계에 데뷔한다.

정계 데뷔 전의 성장과정은 다음 기사를 인용했다.

가난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고등공민학교에 다니다 전주공업고에 진학한 그는 ‘대학에 가야 한다. 인문계 학교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전주 신흥고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즉석에서 이뤄진 모의고사 테스트를 통과한 그는 3년 동안 매점 ‘빵돌이’로 일하며 학업을 마치고 삼수 끝에 고려대 법대에 진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정치인을 꿈꿨던 정 전 총리는 1안 사법고시 합격 후 인권변호사로 정계 진출, 2안 기자가 된 후 정치인으로 등을 계획했으나 결국 수출 역군으로 국가에 이바지하는 길을 택했다. 쌍용그룹 산하 종합무역상사에 취직한 그는 1982년 미국 뉴욕 지사를 시작으로 9년 동안 미국 주재원으로 세계 경제 흐름을 배웠다.

출처 - 서울신문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2000년 16대, 2004년 17대,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내리 4선에 당선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2006년 2월~2007년 1월)하면서 행정부 경험을 쌓는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가치가 상승한 계기는 다름 아닌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바꾸면서 시작된다. 편안하게 자신이 기반을 닦은 텃밭에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좌파 성향이 우세한 민주당 내에 흔치 않은 재계 경험을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당시에는 험지나 다름 없던 종로구로 지역구를 바꾸게 된다.

당시 종로구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박진 의원이 16대부터 18대까지 내리 3선에 성공한 지역이었고, 19대 총선에서는 친박계의 핵심인 홍사덕 후보가 출마하였다. 19대 총선에서 당시 민주통합당은 정권 말기 총선에서 야권이 우세했던 과거 총선과는 달리 박근혜 대표가 사실상 재창당한 새누리당에 과반의석을 내주면서 패하게 된다.

그 와중에 정세균 당시 종로구 후보는 홍사덕 후보를 제압하고 종로구에서 1998년 노무현 의원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 소속으로 종로구 의석을 획득하게 된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의 간판의원 중의 한명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맞붙어 또 다시 의석을 지켜낸다. 민주당 의원으로서는 1988년 소선거구제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종로구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이후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문재인 정권 출범이후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하며 실무형 관리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대통령 빼고는 다 해본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71세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지만 결국 백의종군의 길을 택하게 된다.

당이 어려울 때 험지출마를 강행하여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실무형 관리자로서 안정된 이미지를 구축했던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앞으로 당의 정권 재창출에 헌신할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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