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7일 내 마음 깊은 곳의 추억이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신.해.철

2014. 10. 28. 08:48Entertainment BB/추억의 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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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난히도 회사 업무에 치이면서 즐겨보던 예능프로는 커녕 나름 유행한다는 프로조차 제대로 챙겨보지 못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일과 삶의 균형은 사실상 극도의 불균형 현상에 직면했고, 나름 트렌드에 관심이 많다고 자부하던 내 자신의 우뇌가 은연 중에 급격한 퇴보를 거듭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름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는 한다. 요즘 한창 예능의 대세 프로로 부각되고 있는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을 방영이 시작된지 3개월이 다되서야 보기 시작했다. 첫 회부터 보는데 어찌나 요절복통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연속해서 3회째를 보다가 초대 손님으로 반가운 그 얼굴이 등장한 것을 알게 되었다. 가수이지만 토론에서 그 어떤 전문가들보다 더 뛰어난 식견과 논리로 청중을 사로잡는 '마왕' 신해철이 나온 것이다. 오랫만에 접한 신해철은 전성기 시절의 어린 왕자의 모습과는 다소 동떨어진 40대 중년 남자의 후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폭넓은 식견에서 비롯되는 풍부한 코멘트는 여전히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았음을 입증하였다.

 

너무도 반갑게 맞이한 '마왕'의 모습. 하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그는 홀연히 모두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믿겨지지 않았다. 도대체 왜...한창 우리에게 더 많은 기쁨과 위안을 전달해줘야 할 지금 이 순간 그는 왜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고 만것일까. 슬프다 못해 눈물도 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 사는 2014년은 유난히도 상식밖의 일들이 세상을 뒤엎는듯한 느낌이다.

 

 

 

 

그를 처음 보게 된 것은 서울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온 나라가 여전히 지속되는 축제의 분위기에 한창 들떠있던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1988년 12월 24일. 당시 최고의 예능 MC 이택림과 재치 넘치는 멘트로 좌중을 휘어잡은 아나운서 김은주의 공동 사회로 진행된 MBC 대학가요제에서 신해철은 훗날 그룹 015B의 멤버로서 대한민국 가요계에 새로운 획을 그은 정석원, 조형곤 등과 함께 그룹 '무한궤도'를 결성하고 등장한다.

 

처음 눈에 띄었던 부분은 멤버들이 서울대, 서강대 등 소위 명문대학에 다닌다는 점이었다. 당시만해도 공부 잘하는 샌님들의 이미지가 강했던 명문대학에서 과연 어떤 수준의 노래를 들려줄지가 가장 큰 의문사항이었다. 처음 무한궤도를 접할 당시가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조영남, 윤형주 등 소위 명문대 출신의 끼넘치는 가수들이 이전 세대에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를 시절이었다. 편견아닌 편견으로 '무한궤도'를 접했지만 불과 1분도 안되는 시간에 '무한궤도'의 신바람나는 마력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그 이전까지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노래들을 접했었다면 가장 마지막 참가자인 '무한궤도'는 필자의 어린 마음에 '혁신' 이라는 개념을 잠재적으로 심어 놓았다.

 

대상 발표가 나기 전까지 속으로 얼마나 설레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기대대로 '무한궤도'가 대상을 받게 되는 것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불끈 쥐고 환호할 수 밖에 없었다. 이상은의 '담다디'가 출현하던 그 순간에도 이런 쾌감과 감흥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샌님같은 명문대학 재학생들의 치기어린 장난으로 여겨졌지만, 그런 편견도 잠시 그 짧은 순간 '무한궤도'가 안겨준 강렬한 포스는 평생 지나도 잊혀질 수 없는 강렬함 패기로 다가왔다.

 

한바탕 흥겹게 좌중들을 휘어잡은 '무한궤도'가 이듬 해 1989년 처음으로 내놓은 정규음반 타이틀곡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는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감수성과 가사로 필자 또래의 사춘기 청소년들의 감성을 지배하였다. 흥겨운 멜로디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고 짝사랑하는 이성에 대한 설레임을 솔직담백하게 담은 '여름 이야기', 지나간 연인을 잊지 못해 힘겨워하는 감성을 애절하게 담은 '거리에 서면' 등은 지금 들어도 손색 없는 멜로디와 감수성을 담고 있다.

 

신해철의 진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1990년 솔로로 독립하여 내놓은 정규앨범 1집 타이틀 곡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는 다시 한 번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지배했고, 동명 앨범에 수록된 댄스곡 '안녕'은 당시로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랩을 담아내어 앞서가는 뮤지션의 감성을 확실하게 선보인다.

 

이듬해 1991년 개인앨범 2집에 수록된 '재즈카페'는 속삭이는 듯한 랩과 젊은 세대의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가사, 그리고 신명나는 리듬의 멜로디로 다시 한 번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개인앨범 1,2집에 수록된 모든 곡들은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주옥같은 명곡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2장의 솔로앨범 이후 신해철은 새로운 그룹 '넥스트'를 결성하고 또 다시 대중의 감성을 휘어잡는다. 첫 정규앨범에 수록된 '도시인', '인형의 기사 Part2'는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그 해 가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서태지와 아이들'의 돌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아우라를 만천하에 드러낸다.

 

신해철의 노래는 대중들이 어느 리듬에서 그리고 어느 부분에서 흥겨워하고 신명나게 즐기려 하는 지를 집요하게 꿰어차고 있다. 그리고 누구도 쉽게 꺼내들 수 없는 천재적인 감수성을 드러내는데, 헤어진 연인과의 쿨한 이별을 암시하는 가사 ('인형의 기사 part2' 중에서 '작별인사를 할 때에 친구의 악수를 나눴지'), 어린 시절 삐뚤어진 어른들의 상술에 의해 허무하게 삶을 희생당해야 했던 - 길거리에 내던져진 수많은 병아리들을 통해 느낀 감성을 담은 노래 ('날아라 병아리') 등, 그 누구도 쉽게 담아낼 수 없는 감수성을 통해 신해철의 노래는 호소력과 때로는 성찰을 제공하고 있다.

 

흥겨운 국악리듬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코메리칸 블루스'도 개인적으로 즐겨 듣도 신명나는 노래였다. 이처럼 신해철의 노래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그의 노래 가사처럼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대중들의 마음 깊은 곳에 한결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타고난 엔터테이너였다. 한창 솔로앨범과 그룹 '넥스트' 활동으로 인기를 모으던 시절 출연했던 두 편의 광고 ('신발 브랜드 - 타이거'와 '스낵 브랜드 - 꽃게랑') 는 허무하면서도 웃음을 안겨주는 멘트로 (본인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광고 자체로는 내세울게 없지만 쉽게 잊혀질 수 없는 잔영을 제공하였다.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그는 자신의 허무개그의 위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별다른 대사 없이도 시청자의 배꼽을 쥐게 만드는 신해철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신해철의 밤의 디스크쇼'로 이종환이 물러난 '밤의 디스크쇼' 프로그램 청취율 부활을 주도하기도 했던 신해철은 2000년대 중반에는 오로지 멘트 하나로 청취자를 휘어잡는 새로운 포맷의 DJ 진행으로 대한민국 라디오 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였다.

 

엔터테이너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거침없는 직언을 쏟아냈던 그의 모습은 기성 세대들에게는 속된 말로 '싸가지 없는 젊은이'에 머무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감수성을 통해 사춘기와 청년기 시절 많은 힐링을 받았던 세대들이 사회에 진출해서는 신해철의 거침없는 직언을 통해 대신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철학을 전공한 이답게 늘 남들보다 더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어찌보면 그의 타고난 감수성과 지성의 본능에서 저절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촌철살인 같은 멘트들은 언제나 신해철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게 만드는 매개체의 하나였다.

 

이제 더 이상 그의 감수성 풍부하고 때로는 직설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신명나는 노래도, 그의 직설적인 시원한 멘트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다. 내가 자라오는 기간 동안 나의 감수성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하니 허무하고 무한대로 슬퍼진다. 그런데 슬픈데도 울 수 있는 여유(?)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이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아마도 그가 처음 등장했던 그 무대에서 느껴지던 환희와 흥분, 그리고 설레임은 두 번 다시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시대가 너무 많이 변했다. 그리고 내 자신의 우뇌와 감수성도 많이 퇴화되었고 이제는 지나간 것들에 대한 회상을 통해 설레임을 반복해서 재생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냥 슬픈데 어떻게 슬픔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도 허무하게 우리 곁을 떠난 신해철은 내 마음 깊은 곳의 추억의 한 부분이었다. 언제쯤 그와 같은 천재적 감수성을 지닌 '천상 엔터테이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혹시 나타난다 하더라도 내 자신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 같다. 이젠 그런 감수성을 찾아다니는 것조차 지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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