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20. 07:18ㆍEntertainment BB/movie talk
형사들이 하는 일이라곤 해마다 열리는 마을 소싸움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준비하는 것외에는 별다른 할일이 없는 아주 한가한 마을에 세상을 들었다 놓았던 무시무시한 탈주범이 나타난다. 형사 10명이 덤벼도 도무지 제압할 수 없는 이 무시무시한 탈주범에게 자신이 따낸 소싸움 판돈과 새끼손가락을 잃고 궁지에 몰린 형사가 기어이 자신의 손으로 탈주범을 잡겠노라고 맹세하고 모두가 말리는 무모한 대결에 뛰어든다. 영화 내용으로만 봐서 삭막하고 살벌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같은 소재라도 충분히 밝고 유머스러운 분위기로 이끌어낼 수 있다. 바로 캐릭터의 힘을 이용해서 말이다.
2009년에 개봉했던 영화 '거북이 달린다'는 캐릭터의 힘을 통해 살벌한 상황을 익살스러운 분위기로까지 승화시키는데 성공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김윤석은 당시 바로 1년 전 영화 '추적자'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충무로의 새로운 대세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다시 누군가를 뒤쫓는 형사 역을 맡아서 혹자들은 '거북이 달린다'를 '추적자'의 코미디 버전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는 그다지 직접 가서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추적자'의 잔영이 너무 짙게 남아서였을까. 큰 기대가 들지 않았던 탓에 극장 관람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이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처음 보려고 한 이유는 다름 아닌 조연을 맡은 배우 신정근 때문이었다.
여름에 영화 '해적'을 보고난 후 어느 라디오 영화 음악 프로그램에서 '해적'에 출연한 배우들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방송에 출연한 한 PD가 배우 신정근의 유머코드가 묻힌게 너무 아쉽다고 언급하면서 (사실 필자도 영화 '해적'을 볼 때 신정근의 캐릭터가 묻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느낌이었다.) 신정근이 출연했던 영화 '거북이 달린다'를 보면 그가 얼마나 만만치 않은 유머 내공을 소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은 후 '거북이 달린다'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하게 되었다.
표정은 심각하지만 입을 열면 상상을 초월하는 유머를 발산하는 신정근의 매력은 이미 개봉한 숱한 영화들에서 많이 접한 바 있다. 왠지 엄하고 깐깐해 보이는 그의 인상에 다소 위축되어 있다가 예상치도 못한 유머를 발산하는 것이 배우 신정근이 가진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영화 '거북이 달린다'를 보면 신정근이 나오는 장면마다 웃음을 멈출 수 없다. 그냥 봐도 웃긴다. 동네에서 주인공 조필성 형사(김윤석)의 온갖 잡동사니 (도박, 양아치 동원, 심지어는 불법 안마 시술 단속까지) 해결을 봐주는 용재역을 맡았는데 가장 압권은 조필성(김윤석)과 사전에 미리 짜고 불법 안마 시술 단속작전에 투입되어 시치미 뚝 떼고 조필성에게 진술하는 장면이다. 천연덕스럽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사전에 계획한 대로 시치미 떼는 장면이 웃음을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악명높은 탈주범 송기태 역을 맡은 정경호도 살벌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전과범이지만 오직 자신의 연인 경주(선우선)만을 위한 우직한 순애보를 간직한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예상치 못한 강적의 출현, 도저히 제압할 수 없을 것 같이 보이지만 사나이의 우직한 뚝심으로 차근차근 희대의 악당과 한판승부를 펼치는 과정이 감칠맛나게 전개된다.
끈기와 뚝심으로 똘똘 뭉쳐진 조필성 캐릭터는 마치 이솝우화의 거북이를 연상하게 하고 뛰는 조필성 위에 날렵하게 날뛰는 탈주범 송기태는 이솝우화의 토끼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조필성 거북이는 늘 느릿느릿 걸어다니지 않는다. 막판 결승점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신명나게 달려주는데 그 과정이 사뭇 통쾌하게 그려진다.
상황 설정과 캐릭터를 통해 살벌하게 다뤄질 수 있는 소재를 유쾌하게 그려낸 영화 '거북이 달린다'는 영화 속에서 캐릭터와 상황 설정의 중요함을 새삼스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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