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이 오셨습니다. 한석규 in 힐링캠프

2013. 3. 5. 01:27Entertainment BB/공연 그리고 TV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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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가 나온 영화나 드라마가 TV에서 방영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대본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을 좋아한다는 배우 한석규의 이야기였습니다.

 

살다보니 TV 토크쇼에서 한석규가 나와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보게 되는구나 느끼면서 마치 반가운 옛 친구를 만난 듯한 느낌으로 브라운관을 뚫어지게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대해 어머니와의 추억을 거론하며 시작한 한석규의 토크는 그의 특유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더불어 자연스러운 흡입을 유도하였습니다. 프로 초반에는 다소 철학적인 화두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조금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지루함에 대한 걱정은 잠시였습니다.

 

데뷔 후 23년만에 처음 토크쇼에 나온 한석규씨도 처음에는 생소한 경험에 어색해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자연스레 분위기에 녹아들고 서서히 말문이 트이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왜 배우가 되었는가'라는 화두에서부터 토크의 분위기는 점점 활기를 띄기 시작합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83학번으로서 동문인 MC 이경규(79학번)와의 에피소드, 강변가요제 참가 당시의 에피소드 들을 들려주기 시작할 무렵부터 한석규씨의 토크는 마치 편한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오붓하게 수다를 나누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편안함을 안겨주었습니다.

 

또한 허리부상으로 인해 의가사제대를 하게 되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택한 성우의 길, 하지만 1년 6개월간의 성우생활 동안 한석규는 혹독한 발음훈련을 통해 배우로서의 탄탄한 기본기를 다지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본인에게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는 질문에 한석규는 1998년에 개봉한 '8월의 크리스마스'를 꼽았습니다. 그 영화의 시작은 김광석의 영정사진에서 비롯되었다는 몰랐던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한석규씨가 김광석의 노래를 정말 좋아했고,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김광석씨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였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배우 한석규와 빼놓을 수 없는 연관 검색어를 꼽는다면 역시 배우 심은하일 것입니다. 2001년도에 돌연 은퇴하여 많은 팬들을 안타깝게 했던 심은하에 대해 한석규씨도 언제가는 다시 꼭 같이 연기를 해보고 싶은 배우라고 밝히면서 심은하씨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나름 민감한 질문들도 나왔지만 한석규씨는 특유의 진중함과 재치로 극복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가장 궁금했던 2000년부터 2002년의 3년 간의 공백기에 대한 한석규씨의 생각은 어땠는지 듣고 싶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 충무로 최고의 박스오피스 메이커로서 명성을 떨치던 한석규에게 3년의 공백기는 어찌보면 그의 탄탄대로에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던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한석규씨의 대답은 그 시기를 두고 연기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고 두려움이 들었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물론 시나리오는 하루에 한 권씩 들어올 정도로 끊임없는 출연제의가 이어졌지만 한석규는 자신의 존재와 연기에 대한 고민으로 3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치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정체성에 대해 갈등을 거듭하는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의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석규씨가 배트맨같은 캐릭터를 맡아도 상당히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고민, 그리고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자기 관리를 통해 정상에 올라선 한석규씨의 모습은 사회 생활을 하는 저에게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고 평안한 모습을 유지하는 한석규씨는 자신의 내면은 언제나 들끓고 있고, 제발 평온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히기까지 했는데, 물 위에서는 미소를 잃지 않지만 물밑에서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 치열한 발장구를 치는 수중발레 선수의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숱한 고민과 노력을 거듭한 한석규씨의 연기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엿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토크쇼에 나온 한석규씨에 대해 많은 궁금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예상 외로 삶의 철학에 관한 화두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많은 시간이 그런 이야기들에 할애되다 보니 아쉽게도 더 많은 궁금증을 풀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토크쇼에서도 자신의 색깔을 놓치지 않고 편안함과 재치를 놓치지 않으면서 흐름을 이끌어간 한석규씨의 내공은 이전의 게스트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한석규씨가 자신이 좋아하는 법정스님이 저술한 책의 한 구절을 인용했는데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어버린다.' 과연 나의 녹과 쇠는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 한석규씨는 여전히 녹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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